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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49) ‘마유목’ 이야기 /한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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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8,421회 작성일 2021-03-12 00:37

본문

< 수필산책 149 >
 
‘마유목’ 이야기
 
한화경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강원도 평창군’ 이라고 하면 동계 올림픽이 떠오르는 동시에 적도 나라에서는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재작년 겨울, 시누이 가족의 배려로 그곳에 1박 2일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입김이 보이는 영하권 추위가 특별했고 마음 같아서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눈 덮인 겨울 풍경이 너무나 좋았다. 해발고도 1,458m로 우리나라에서 12번째 높은 “발왕산”이 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 보자 하여 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더운 나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내다보이는 설경을 몽땅 가슴에 저장하느라 눈이 바빴다.

도착해보니’ 겨울연가’, ‘도깨비’와 같은 기억에 남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포토 존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높은 그곳에서 스키나 스노보드 타고 멋있게 내려갔다. 겨울만의 짜릿한 매력이다. 우리처럼 경치를 즐기는 사람들은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하늘공원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는 아직 공사 중이었지만 지금은 8층 높이나 되는 스카이워크가 완공되어 정상의 경치를 더욱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눈이 쌓여 있어서 준비도 안 된 운동화로 간 나는 바닥이 미끄러워 손잡이 잡고 비틀비틀 겨우 걸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나는 즐겁게 느껴졌다. 공원 주변에 볼거리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신기한 나무인 ‘마유목’을 소개하고 싶다.
 
 
안내판을 따라 눈길 위를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걸어가다 도착한 곳에는 ‘마유목(媽唯木)’ 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특별한 나무가 조용히 서 있었다. 겨울이라 잎 하나 없는 고목과 같은 나무 기둥은 마치 꽈배기처럼 꼬여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길래 그리 유명한지 궁금해서 준비되어 있는 안내판의 설명을 읽어보았다. 야광나무와 마가나무 라는 두 가지 나무가 한 몸이 되어 기나긴 세월 동안 함께 자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연리목(連理木)이라 소개가 되어 있었다.
 
‘마유목’이란 이름을 가지고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이 나무는 사랑의 드라마와 같은 스토리를 가진 특별한 나무였다. 과연 어떤 스토리가 얽혀 있을지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았다. 한 세기도 전, 발왕산 정상 이 자리에 야광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강풍을 친구 삼아 낮에는 해님을 바라보고 밤에는 달빛과 별들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자랐다. 고독한 겨울의 강추위도 수없이 이겨 내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봄마다 부드러운 싹을 틔웠다.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 파릇파릇한 잎을 바람에 흔들면서 하늘을 향해 쭉 기지개 켜듯이 성장했으며, 봄부터 함께 지내온 정든 잎을 늦가을 되면 고마움의 표시로 아름답고 멋지게 화장해 주고 바람에 날려 보내는 이별도 수없이 겪어 왔다. 이렇게 어른 나무가 되어 70년 즈음 살아왔는데 주변에 있는 친구 나무들이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요즘 들어 겨울 강풍이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은 해마다 속이 텅 비워간 자신의 몸도 겨울바람 시려서 고생하고 있던 참이라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발왕산 정상에 사정없이 부는 강풍에 쿵 소리를 내며 친구 나무들이 하나씩 쓰러져 가버렸다. 다음은 내 차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느 때보다 슬픈 늦가을을 보내고 있는데, 나뭇가지에 놀러 온 새가 비워져 가고 있는 나무의 품속을 채우기라도 하듯이 “뚝”하고 하나의 씨앗을 떨어드리고 날아갔다. “땅 위에 떨어졌어야 하는데 난 어떻게?” 야광나무 품속에 떨어진 씨앗은 소리를 내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들리는 울음소리에 문득 오래전, 이 자리에 씨앗으로 떨어졌던 어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기를 재우듯이 어린 씨앗을 품에 안고 그동안 살아온 수많은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면서 길고 긴 겨울을 함께 보내주었다. 함께 보내는 겨울은 외롭지 않았고 마음의 포근함을 남겼다. 눈이 녹고 조금씩 봄기운을 느끼게 된 어느 봄날, 몸이 간질간질한 씨앗에서부터 어여쁜 싹이 나왔다. 새 생명의 시작이 너무나 반가웠던 야광나무는 “아가야! 참 잘했다. 이젠 뿌리를 내려야지. 나에게 조금씩 뿌리를 내려보렴.” 이렇게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당신의 몸인데 뿌리내리면 아프지 않으실까요? 제가 땅 위에 떨어졌어야 했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말고 힘껏 뿌리를 내려보렴.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야광나무는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이 아기 나무에 자신의 몸속 영양분을 몽땅 공급해주었다. 그 덕에 뿌리는 땅을 향해, 싹은 하늘을 향해 아기 나무는 해마다 성장해갔다.
 
아기 나무가 자신의 몸을 뚫고 땅을 향해 뿌리 내리는 동안, 나뭇가지가 자신의 몸을 감아 올라타면서 하늘 향해 크는 동안, 비명을 지를 만큼의 성장 통을 겪으면서도 야광나무는 꿋꿋하게 버티며 아기나무에 잘 크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 몸이 이상해질망정 거의 죽기를 각오한 마음으로 반복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아기 나무와 한 몸이 되다시피 보냈다.

어느 해인가 야광나무는 차가운 겨울바람에 시리던 몸속이 꽉 차서 온기가 돌고, 혼자의 힘이 아닌 강한 힘이 자신을 안아주고 쓰러지려야 쓰러질 수 없는 튼튼한 몸이 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봄이면 가지에 반은 야광나무 잎사귀 반은 마가나무 잎사귀가 부드럽게 싹을 뜨고, 한 나무인데 두 가지 꽃이 피고 두 가지 열매를 맺은 일이 이젠 자연스러워졌다. 한때 씨앗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울던 마가나무도 이젠 30년 세월이 지나 야광나무의 버팀목이 되어준 튼튼한 청년 나무가 되어 있었다. 완전히 공생하는 모습으로 주변에 어떤 나무보다 튼튼하고 외롭지 않은 특별한 나무로 함께 성장한 것이다. 침목의 나무지만 찾아오는 사람마다 부모의 사랑이라고도, 부부의 사랑이라고도, 자식의 효성이라고도 하면서 감동과 교훈을 주는 나무가 되었다.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그려보며 그 나무를 뒤로했다.
 
 
강원도 그것도 산꼭대기의 자연조건은 얼마나 혹독했을까? 그 환경에서 강해지며 살아남은 나무의 이야기.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마유목’이 마음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 속에 살아오면서 나에게 그 나무가 “안고 함께 가는 거야”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준 듯했다. 우리는 방역과 거리 두기로 1년 이상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고, 이제는 백신으로 쓰러지지 않은 몸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안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걱정으로 뜨거워지는 마음이 열과 더위에 지친 마음을 겨울에 만났던 그 나무가 냉각장치라도 된 듯 시원하게 진정시켜 주며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어려운 지금의 시기에 마유목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며 강한의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마유목, 나도 너처럼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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