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52)창공에서 느끼는 ‘푸에르토프린세사’ /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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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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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152>
창공에서 느끼는 ‘푸에르토프린세사’
강인수 /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나의 비행기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도착지인 자카르타까지 2시간 50분이 남은 시점에 있다. 현재 지도상 자카르타까지 거리는 2402km 지점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내에서 글을 쓰는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지는 불과 몇 년이 안되었다. 20여년을 서울과 자카르타를 오가면서 비행기를 잘 못 타는 일들이 많았다. 자주 겪는 난기류의 공포와 인도네시아 땅에서의 지진피해 공포였는지 모르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느라 마음대로 여행도 못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많은 기회와 좋은 추억을 남겨 주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옷가지와 컴퓨터만 들고 자카르타 수카르노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 반 도착이었고. 하늘아래서 내려다본 붉은 지붕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새댁이 남편을 따라 자바 섬에 왔을 때는 기대도 많았고 적도의 아름다움에 마음도 한껏 빼앗겼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지금도 진저리 날 정도의 악몽으로 남았다. 저녁 식사 후 찾아온 7.3이던가 하여튼 그날의 지진은 33층 고층 아파트 건물을 눈물로 기어 나오게 한 기억밖에 없다. 그 이유인지 몰라도 흔들림에 대한 공포와 갇힌다는 것에 공포로 비행을 못 탄 세월이 많았다. 가까운 발리도 밥 먹듯 들락날락 하는 친구들이 부러울 뿐 비행기는 내게 큰 골칫덩어리 마음의 짐이었다. 불가피하게 다녀야 할 시점에는 이 년에 한 번 혹은 칠 년에 한 번씩 안정제를 먹고 다니는 계획을 잡았고 그런 비행길은 큰 곤욕이었다.
폐쇄공포와 공황장애로 힘들게 지내던 십여 년의 세월을 어찌 보냈는지 생각해 보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삶을 후회하게 된다. 탑승일 몇일 전 약국에 들릴 일이 있어서 한 무더기 약을 구매하자 약사가 물었다. “어디 가세요?” “네, 해외 가져갈 거예요” “어머, 좋으시겠다. 이런 시대에 해외 나가시다니, 비행기 너무 타고 싶어요.” 꽃 같은 젊은 약사는 빙긋이 웃으며 이것저것을 챙겨주었다. 몇일 후 나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비행길에 드디어 오른 것이다. 인천을 떠나 제주도를 찍고 망망대해를 날아 3시간 남짓 지나서 창 밖에 양떼구름이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필리핀 근방이다. 자카르타까지 남은 거리 2402km, 몇 년 전부터 자카르타와 인천을 오가는 노선 길에 나는 이상하게 ‘푸에르토프린세사’에 꽂혀 그 섬만 지나면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비행길도 ‘푸에르토프린세사’가 지도상에 나오기를 고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내 근방에 도착하자 불안감도 어느새 안정감을 찾아 다리도 펴고 주전부리도 좀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 “도대체 저 기다란 섬은 뭘까? 겨울왕국에 공주가 있다면 여름왕국에 공주가 사는 곳일까?” 정말이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비행에서는 작정을 하고 창가에 앉아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창공의 구름아래를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았다.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풍경을 찾아 볼 수 없었는데 오늘에야 운이 좋게도 구름아래 길게 늘어선 필리핀 령의 ‘푸에르토프렌세사’를 보게 된 것이다. 비행기는 시속 887km의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날아가고 있다. 해안가를 따라 긴 바닷길이 보인다. 해안선을 감싸고 길게 꼬리를 빼고 누운 짐승의 형상을 따라 태고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더니 지형을 따라 듬성듬성 사람이 사는 듯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온갖 상상 속에 저 이국땅의 모습을 그리며 언젠가 한번 들려 볼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우리 아이의 학부모인 필리핀 친구가 우리나라는 정말 아름답고 좋다고 자랑하던 생각이 났다. 나는 속으로 치안도 불안한데 무슨 자랑거리가 있을라고? 생각을 하며 가보지 못한 남의 나라에 관심도 안 가졌다. 동생이 가끔 세부에 놀러 갔다 오면서 사진 몇 장을 전송해주면 위험하다며 그쪽은 가지 말라고 걱정 섞인 충고를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 나는 ‘푸에르토프린세사’에 이렇게 빠져든 걸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더해 그 동안 못 돌아 다녔던 여행에 대한 보상심리 인가? 하여튼 그 섬에 가고 싶다.
이 섬 이름의 유래는 스페인 공주의 이름이라는 설과 방랑했던 여성의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스페인 사람의 이름이 거론 됐다 하니 “유럽 사람들 그 옛날에 참 멀리도 왔었네.” 라고 생각했다. 어찌됐던 여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섬에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비가 주룩주룩 와도 좋을 것이고 산안개와 물안개가 어우러져도 행복할 거 같은 섬은 공주든 방랑자든 매력 있는 이름을 역사로 품은 곳이다. 문명이 파고들지 못한 서툰 시골 땅이 빨리 와보라며 나를 부르는 듯 느껴졌다. 어서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 져서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을 뒤로 하고 과감히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푸른 하늘 아래 옥색 바다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산책도 하고 싶다. ‘푸에르토프린세사’는 필리핀의 팔라완주의 주도로 인구 9만명 정도의 삶의 터전이 있는 곳으로 마닐라에서 정기 항공편도 있다고 하니 여행지로 가 볼만 한 곳인가 보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지하 강 국립공원이 있다고 한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눈에 담고 음미할 날이 올 것이다. 맹그로브 숲의 반딧불이도 만나볼 것이고 쏟아지는 별도 가슴으로 받아볼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비행기 안에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니 어느새 바깥은 짙은 어둠으로 덮였다. 사람들은 잠을 청하느라 누웠고 답답한 마스크는 꼭 닫혀 지지 못하고 콧잔등을 살살 간지럽혔다. 손등으로 쓱쓱 긁어 마스크를 동여 메고 나의 프린세사가 사라진 바깥 어둠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 눈앞에 있던 기다란 꼬리 섬이 마치 사막 속 신기루같이 눈앞에서 반짝 나타났다 사라진 듯 아쉬움은 크고 섭섭했다. 오래 마음이 머문다는 것은 행복을 만난 것이다. 그 행복이 순간 짧게 왔다가 갔을지라도 사라지기 직전의 존재와의 대화, 이 감동이 파도가 되어 밀려온다.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항로를 이렇게 열심히 보다가 마음 닿는 땅에 그리움의 깃발을 꽂고 그 알 수 없는 세계에 매료된 그런 사람들. 유난히 맑았던 비행길에 난기류도 없었고 그립고 반가웠던 ‘푸에르토프린세사’의 자태도 고스란히 보았고 손에 잡힐 듯 한 구름 떼를 양껏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으니 이제 자카르타 집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기를 기도해 본다. 반가운 이웃이 기다리고 코로나로 지친 적도 땅 저 아래 또 다른 ‘푸에르토프린세사’를 닮은 섬 인도네시아. 그 곳을 향해 이 밤 비행기는 깊고 푸른 어둠을 뚫고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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