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98) 반려 식물에 대한 단상 /송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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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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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98 >
반려 식물에 대한 단상
송민후 / 시인(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지난 밤 내린 비가 풀잎에 이슬처럼 매달려있다. 제법 많이 내렸는지 낮은 화분에 흙들이 베란다 바닥에 낯설은 그림을 그려놓았다. 우리 집 베란다는 하늘이 열려있어 햇빛도 바람도 빗물도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그 덕분에 화초들이 잘 자란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때론 반쯤 감은 눈을 하고서 베란다로 향한다. 얕게 가려진 커튼을 열면서 꽃 모닝! 잘 잤니? 인사를 하면 정원의 꽃과 나무, 풀잎들도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내가 씨를 심어 기른 화초들과 나무들에게 가족과 같은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
바쁜 아침시간이 지나면 나와 반려 묘 삼월이와 베란다에 있는 반려 식물들만 집에 남는다. 내가 참 좋아하는 시간이다. 꽃들 한 켠에 놓아둔 작은 테이블 위에 방금 우려낸 바질 차향이 아침 바람을 타고 내 주위를 감싼다. 아침에 듣기 좋은 명상곡 모음집에서 새소리도 들려온다. 한국에 있는 친구의 푸념 섞인 카톡 메시지가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토로하다가 우울하다는 친구, 마스크 잘 쓰고 나가 꽃구경이라도 하라고 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다시 꽃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차를 마시다 미뤄두었던 화분 분갈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빗물샤워를 한 초록아이들의 싱그러움과 얕게 구름 낀 하늘을 보니 의욕이 생긴다. 새로 나온 싹들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분에서 분리해 새집을 마련해줘야 잘 자란다. 마치 우리네 아이들도 부모를 떠나서 독립을 해야만 더 강해지고 한사람의 어른으로서 우뚝 서는 것처럼 말이다. 베란다 담을 따라 산세베리아가 꼿꼿이 울타리 치듯 자리하고 있다. 행운목, 금전수, 벤자민, 캄보자, 관음죽, 파키라는 서로 키 재기하듯 이마를 맞대고 서있다. 사랑초, 분꽃, 자주달개비는 매일 누가먼저 피나 꽃피우기 경쟁을 하듯 하루도 쉬지 않고 꽃이 핀다.
나뭇잎이 물방울 모양이고 펼쳐진 우산 같아서 우산나무라 이름 지어놓은 나무들, 알로에, 바질, 라벤더등 식용 가능한 허브들은 햇볕이 가장 오래 드는 곳 바로 테이블 위에 있다. 제일 아끼는 반려식물 1호, 오렌지 재스민은 테이블 옆 베란다 정 중앙에 있다. 1년에 두세 번 꽃이 핀다. 요즘 한창 피었는데 하얀 꽃이 많이 떨어져서 안쓰럽다. 재스민은 타국생활을 하면서 나의 향수병을 치료해주고 추억을 되새겨주는 꽃나무다. 고향집 화단에서 순백의 얼굴을 살짝 숙이고 진한 향을 품어대는 백합을 좋아했다. 오렌지 재스민의 작은 꽃은 백합을 떠올린다. 자라면서 친구들과 추억이 많은 아카시아 향을 좋아하게 됐는데 오렌지 재스민에서 그 향이 났다. 백합과 아카시아를 품고 고향과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나무다. 얕은 구름과 잔잔한 바람을 즐기다보니 어느덧 정오가 가까워졌다. 서둘러 차를 타고 나가는 기분이 설렌다. 이런 날씨에는 좀 더 걸어 다니며 꽃을 구경할 수 있다.
자카르타 시내만 해도 몇 군데 꽃가게가 있다. 처음엔 불편했다. 꽃은 꽃집에서 화초나 나무는 화원에서 샀다. 상호도 가게 구분도 없이 길거리라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즐긴다.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땅 하듯이 경계 없는 것도 욕심 없고 순박한 자바인을 닮은 듯하다. 오늘 행선지는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다. 벌써 수년 동안 방문해서인지 거리도 주인도 반기는 듯하다. 얀토 할아버지네는 거리 중간쯤 위치해 있다. 부지런해서 나름 꽃도 종류별로 나눠져 있다. 정이 많아서 꽃의 안부도 묻는다. 죽어가는 화초 때문에 상담을 하면 갖고 오라고 하셔서 어떤 때는 맡겨두고 건강해지면 찾아오기도 한다. 나의 원예 선생님이자 내 초록 아이들의 주치의다. 이곳과 인연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꽃꽂이 수업이 좀 일찍 끝나 집으로 가는 길에 꽃 거리를 들렀다. 꽃꽂이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지인들과 꽃시장을 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가끔 우울할 땐 화초 파는 거리를 천천히 돌아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하나 둘 사들인 화분들로 내 베란다는 미니정원이 되었다. 거리 초입에 들어서면 천천히 가달라고 기사에게 부탁한다.
그러다가 회색바지에 반팔 러닝셔츠를 입은 왜소한 체격의 반백인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차를 멈췄다. 할아버지가 쏟아지는 태양을 등에 업고 장미 화분들 틈에서 열심히 손질을 하고 있었다. 순간 눈물이 울컥했다.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해 전 가을, 그 날도 꽃꽂이 수업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황국을 소재로 꽃을 꽂고 오는 길에 접한 부고 소식… 꽃을 무척 좋아하시고 화단에서 일하실 땐 막내딸 앉혀놓고 이런저런 걸 일러주시던 자상한 아버지, 일하실 때 즐겨 입으셨던 하얀 러닝과 회색바지의 마른 체형이 아버지를 닮아서였다.
얀토 할아버지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귀찮고 서투른 말솜씨로 해대는 질문에 자상하게 답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꽃길을 걷고 구경할 용기가 생겼다. 게다가 현지인들과의 대화도 덜 두려워졌다. 또 하나의 좋은 인연이 된 것이다. 가로수 잎들이 진한 초록빛을 뽐내며 흔들거린다. 반겨주는 사람도 있고 사랑스런 꽃과 나무들이 있는 곳이다.
나의 꽃 거리에는 우기가 되면 꽃들이 한층 더 자라고 꽃 색도 진해진다. 거리입구에 내려 걸어간다. 꽃을 사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나 외엔 걷는 이가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인가 보다. 나 또한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씁쓸함도 잠시, 꽃구경 삼매경에 빠진다. 저만치 할아버지의 유니폼, 흰색 러닝 티가 보인다. 손을 흔들자 꾸벅 인사와 손 인사를 한꺼번에 보여주신다.
몇 해 전 여름, 직원들 선물로 도톰한 흰색 면 반팔티를 여러 장 사면서 할아버지 것도 사다드렸다. 무척 고마워하시더니 볼 때마다 입고 계신다. 분갈이 용품을 사고 꽃 거리를 더 걸을 참이다. 계산을 하려는데 잠깐 기다리라고 하시더니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신다. 익숙한 뒷모습, 늘어지고 헤진 자국이 슬프다. 다음엔 여러 장 사다드려야겠다. 화분하나를 들고 나오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 몬스테라다. 소리를 질렀다. 오래전부터 부탁해두고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구하셨는지 내가 오면 주려고 안쪽에 뒀다는 그 말에 너무도 감사했다. 새 식구를 늘릴 생각은 없었는데 얼른 사서 들고 왔다. 베란다 한켠에 커다란 비닐을 깔아두고 새로 사온 흙을 쏟아 부어서 잘 펼쳐 두었다. 그 위로 모기약 스프레이를 뿌린다. 이렇게 하면 화분에서 벌레가 나오질 않아서다. 한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바나나 껍질과 달걀 껍질 원두커피 찌꺼기를 믹서에 갈아 천연 영양제를 만들었다.
펼쳐둔 흙에 혹 벌레가 있는 지 확인 한 후에 차례차례 분갈이를 마쳤다. 베란다 구석진 곳에 또 한번 모기약을 뿌리고 바닥은 세제로 잘 닦은 다음에 화분들을 배치하면 끝이다. 따뜻한 커피 잔을 들고 오후 산책을 하듯 하나하나 꽃들을 보고 잘 적응해서 잘 커달라고 당부한다. 가끔 분갈이 후에 죽기도 하는데 무척 마음이 아프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함께 살면 이미 가족인 것이다. 말 못하는 식물, 그저 피고 지는 것 같지만 소중한 생명이다. 많은 시간과 애정과 땀을 필요로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거에 비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기에 행복한 일이다.
새로운 씨앗을 심어두고 새싹을 기다리는 사람의 간절함을 안다. 꽃봉오리에 맺힌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설렘에 응대해 준다. 죽은 것처럼 메말라가던 고목에게 영양주사를 주고 잘 보살피면 그 정성도 알아준다. 가지 틈에서 작은 잎이 볼록 잎을 내미는 순간은 강한 의지와 생명력이 경이롭다. 내 마음대로 자리를 바꿔도 탓하지 않고 질 때 지고 필 때 피는 지고지순함이 좋다.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이 없어 편안하다. 꽃과 식물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떤 날 17층까지 날아와 꽃에 쉬었다가는 나비를 볼 때면 비온 뒤 떠오른 무지개를 만난 것처럼 기쁘다. 꽃 한 송이 풀잎에 맺힌 빗방울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내 주변의 공기를 얼마나 쾌적하게 하는지 모른다.
리서치 기업 ‘마크로밀 엄브레인’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58%가 현재 직접 키우는 식물이 있고, 27%는 현재는 아니지만 과거에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주로 공기정화 식물이며 그 중 74.1%가 주변사람들에게 식물 키우기를 추천한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지금 우리는 1인가구가 500만을 훌쩍 넘은 시대에 살고 있다. 집 안에서 기르는 식물에 정서적 애착을 갖는 인구가 늘면서 식물에도 반려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다고 한다.
반려식물, 꽃이 나에게 주는 기쁨과 식물이 주는 쾌적한 공기도 좋다. 그 무엇보다 감성을 닮은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연일 세상을 뒤흔드는 바이러스 공포 속에 불안감을 안고 산다. 거리엔 사람들이 줄고 마스크로 온통 가려야만 외출을 할 수 있는 삭막한 현실이다. 고국에 있는 친구는 ‘창살 없는 감옥’ 이라하고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봄이잖아, 시간되면 꽃구경도 하고 화분이라도 하나 사서 길러봐” 라고 말했다.
이곳 자카르타는 꽃피는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늘 가까이 꽃이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우울하고 마음이 시릴 땐 초록의 작은 식물 하나라도 정성을 들이다보면 잠시라도 힐링이 되지 않을까.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세상사람 모두 웃는 얼굴로 서로를 대하고 마음껏 꽃구경을 다닐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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