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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02)8분 8초간의 통화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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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8,037회 작성일 2020-04-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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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02 >
 
8분 8초간의 통화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코로나19, ‘펜데믹’이라는 전혀 들어본 적 없던 단어가 이제는 창을 든 악마 떼 두목이라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섬뜩하게 재잘거리며 덤벼오는 바이러스들의 상위에서 조종하는 존재의 직위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바이러스에 따라다니며 등장하는 용어가 되었다. 전염병 확산으로 오래 칩거하며 조심하느라 어떤 때는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도 잊고 평소처럼 무장을 해제하고 행동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텔레비전을 켜면 언제나 요란한 것은 코로나19에 걸린 확진 환자의 수와 사망자의 수를 보도하는 목소리다. 아나운서의 보도를 대하고는 “아차!” 하고 마스크를 찾아 착용하면서 “아, 이거 장난이 아니로구나!” 중얼거리며 다시 경계태세를 가다듬는다.
 
어제는 한 지인이 보내준 코로나바이러스 19에 걸린 경험담을 읽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중부자바 살라띠가에서 살다 다른 나라로 이사 간 한 교민이 지난 3월에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겪은 심각한 증상을 술회한 글을 읽고서 다시 한 번 “아,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를 중얼거렸다.
 
‘코로나19’ 에 걸리면 그토록 죽을 것 같은 심각한 통증이 온다는 것을 소상히 기록해서 보내준 것이다. 일찍이 이를 경험해 보지 못한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에게 증상에 대하여 공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를 몇몇 지인들에게 공유하였다.
 
몸이 바이러스에 반응할 때 그 고통은 마치 몸의 각 곳을 순차적으로 AI 가 전략을 세우고 목표물을 집중 공격하는 것처럼 몸을 최악의 컨디션으로 자빠뜨려 항거하지 못하도록 꺾으며 쳐들어온다는 것이다. 이후 바이러스가 지정한 최종 목적지인 폐로 몸 전체에 흩어졌던 것들이 일제히 모이는 것을 느낄 정도라 한다. 이것들이 폐로 집결하여 자리를 잡는 순간 죽을 것 같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전 화력을 쏟아 부으며 일격을 가해오는 것을 경험하였다고 한다. 잠깐 다니러 간 외국인임에도 마침 교민 간호사를 만나 황망 중에 신속한 조처를 받아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산소 호흡기를 얼마나 빨리 처방받느냐 하는 것이 생사를 판가름한다고 할 정도인데 급증하는 환자로 병원마다 산소호흡기의 심각한 부족 현상이 있는 가운데서도 응급실 병상과 산소 호흡기를 신속히 배정받아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하여 주민들은 이제 자기들의 터전 안으로 이미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놀라서 더 커진 눈으로 자발적 개인위생은 물론 정부가 지침한 공중위생도 열심히 잘 지키고 있다. 뒤숭숭한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중에서 대화를 나눌 친분의 한 시인이 가까이 살고 있어 날마다 한두 번 정도 전화로 긴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있다. 시인은 무료하게 갇힌 요즘 생활을 무의미하게 흘러가게만 두지 않고 날마다 유투브에서 제과 제빵 동영상을 찾아 새로운 빵을 만들어 보고는 습작 빵과 과자를 집 근처 고아원 아이들에게 갖다 주는 보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혼란 중에서도 인생의 참 의미를 찾아 헛되이 흘러갈 법한 시간을 헛되지 않게 보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을 사람들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외지인의 출입을 막고 있는 상황이라 잠깐 방문을 한다는 것도 여의치 않아 전화로만 소통하였는데 어제는 저녁 이른 시간에 고구마를 구웠다며 가지고 내려오셨다. 물론 반가운 만남이지만 약간은 긴장이 되었다. 오시는 분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분에게 병을 옮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서로를 배려하여 보호해야하기에 대문도 안 열어주고 대문을 사이에 두고 상거 2m에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가지고 온 봉지를 감사히 받았다.
 
봉지 속에는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아시는지 ‘부아 마르키사’가 20개 정도 들어 있었고, 오븐에서 잘 구워진 고구마 외에도 손수 마르키사 주스로 반죽하여 만들었다는 찰떡이 별도로 상자 속에 정하게 담겨있었다. 이 통제 속에서도 윗동네에서 갑자기 아랫동네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나도 집 구석구석을 바삐 수색하여 미역, 김, 깻잎장아찌, 부채, 칫솔, 주먹밥 재료 등등 외로운 시인이 좋아할 만한 음식과 생활필수품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비닐봉지에 담아 준비하여 답례로 건네 드리고 작별하였다.
 
문학을 하는 시인의 손으로 빚은 음식은 어떤 맛을 낼까? 호기심과 함께 하나하나 꺼내서 먹어 보았는데 떡에서는 씹을수록 신맛 단맛 등 갖가지 맛이 나는 것이 어쩌면 그 맛은 시를 읽을 때 독자마다 다양하게 느끼는 감흥처럼 시적인 맛을 느꼈다. 윗동네로 돌아간 이후 자작시를 하나 보내주었는데 평소처럼 시를 읽은 나의 소감으로 답장을 드리고 나도 아침에 촬영한 사진에다 글을 담아 보내드렸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단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는 이미 버릇이 되어버린 그대로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어제 그 시인에게 보낸 나의 카톡 메시지가 이상하게 읽히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의아하게 생각하며 아침을 먹고 다시 봐도 그대로여서 이제는 확인해보는 인터벌이 점점 짧아지면서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갓 60이 된 시인이라 후년에 접어들었기에 “밤새 안녕!”인 것이다. 혼자서 자다 혹시 잠자리에서 못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를 쓴다, 동영상을 편집한다, 전화를 한다, 늘 핸드폰을 끼고 사는 분이 무려 13시간을 메시지를 열어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슨 심각한 상황에 부닥친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였다.
아침 9시가 되어서는 더 이상 못 기다려 전화를 하였다. 신호음이 대여섯 번 울려도 받지를 않자 전화기를 든 손이 조금 떨리기 시작하였다. “빨리 받아요!” 혼자 중얼거리며 신호음의 횟수를 나도 모르게 세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 시인은 쉰 아침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도하는 나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여보세요!”를 외쳤으나 전파상태가 늘 안 좋은 지역이라 곧 끊어졌다. 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이번에는 서로 상대의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지 몇 번 “여보세요!” 를 각자 외치다가 잠시 후 정상적으로 연결이 되었다.
 
“이제 들리네요, 사산 시인님! 무고하시지요?” “네, 그럼요, 잘 지냅니다. 어제 저녁엔 황송하게 여러 가지를 그렇게 많이 담아 주셨어요” “저는 무슨 변고가 있나 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아뇨, 어제저녁엔 평소보다 일찍 자고 새벽 두 시에 눈이 떠져 아침에 동네 한 바퀴 돌고 와서 ‘꼴람 렐레’에서 두꺼비를 잡아내느라 씨름을 좀 했습니다.”
“어제 보낸 메시지를 안 읽어 보길래 놀랐죠, 이렇게 오래 스마트폰을 멀리하실 리가 없는데” “아! 그러셨습니까? 정말 고맙습니다.” “렐레는 좀 자랐습니까?” “팔뚝만 하게 컷어요!
그런데 넘 크면 맛이 없다네요” “맛없어도 저는 잘 먹으니 언제 한 마리 주세요.”
 
 
두꺼비가 메기 양어장(꼴람 렐레)에 들어가 올챙이를 무수히 까놓았다는 이야기, 그러면 메기 먹잇감이 좋아 더 빨리 자라겠다고 하니, 두꺼비 올챙이는 독이 있는지 메기가 안 먹는다는 둥 아침 전화를 한참 통하고는 “아침 맛있게 잘 드시라”하고 끊었다.
“그나마 건강하시다니 감사하네!” 나는 안도하며 전화기를 살펴보니 잠시 나눈 대화가 어느새 ‘8분 8초’ 간의 통화였다고 핸드폰이 알려준다. 통화한 시간의 숫자 그대로 팔팔한 그를 확인했으니 오늘도 그는 빵을 만들 것이고,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오늘을 보낼까 궁리하며 다시 또 책상에 앉아 새로운 하루를 설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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