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묏버들 /권대근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본문 바로가기

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사이트 내 전체검색

ae7a633ecc5aba50dda8fe8871ff253a_1671380259_2972.jpg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08) 묏버들 /권대근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605회 작성일 2020-05-28 15:32

본문

< 수필산책 108 : 한국문단 특별 기고 >
 
묏버들
 
권대근 /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당신을 움직인 한 편의 시조를 뽑으라고 하면, 나는 숨도 안 쉬고 홍랑의 ‘묏버들’로 시작하는 시조 한 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이 진정한 사랑을 한 번 해 보는 데 있다면, 한 번쯤은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을 놓아 보아야 하리라. 홍랑의 시조야말로 사랑과 인생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해주는 시조가 아닐까. 진정성이란 삶의 곡진함에 더하여 절절함이 묻어나야 생기는 것이 아닌가. 중국의 시론에도 ‘시궁이후공’이라 하였다. 좋은 시란 어떤 결핍, 궁(窮)의 상황에서 피어나는 것이리라.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난 창밧긔 심거두고 보쇼
밤비에 새닙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셔
 
 
산버들의 가지를 꺾어 님이 계신 곳에 보내니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아 달란다. 혹시 밤에 비가 내려 심어둔 버드나무가지에 새 잎이 돋아나거든 나인 줄로 여겨달라는 것이다. 벗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비유를 통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연정가다. 임에게 바치는 지순한 사랑을 묏버들로 구상화시켜, 비록 몸은 서로 천 리를 격한 먼 거리로 떨어져 있지만, 임에게 바치는 순정은 저 묏버들처럼 항상 임의 곁에 있겠다는, 그러면서도 임은 나 이외의 여인에게 한 눈을 팔지 말라는 부탁이 깃들어 있어 더욱 애련함을 느끼게 한다. 오랑캐와 살벌하게 대치하던 국경지대인 경성에 있던 기생 홍랑이 어떻게 천리 길 파주 땅에 와서 묻히게 되었을까.
 
때는 조선 선조 6년, 송강 정철과 친분이 깊은 시인이었던 고죽 최경창이 북도평사를 제수 받고 함경도 경성에 부임하게 된다. 가족을 데리고 갈 수 없는 당시 형편에 최경창이 천릿길인 서울과 경성의 중간지점인 홍원 땅을 지나다 시문에 능한 기생 홍랑을 만나게 되고 경성으로 데려가 함께 군막 생활을 한 것은 당시로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1년간 경성의 군막에서 함께 지낸다. 그리고 이듬해 봄, 최경창이 서울로 전근이 되어 돌아오게 되자 그녀도 함경도 끝 쌍성까지 따라나선다. 하지만 나라 법에 함경도 기생은 함경도를 한 발짝도 떠날 수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하는 길, 임을 보내고 돌아서 걷기를 얼마나 했을까. 함관령에 이르자 어느덧 날은 저물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홍랑은 암담하고 참담한 심경을 마침 길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를 꺾음으로써 위안받고자 한다. 그러나 꺾인 버드나무는 또 무슨 죄가 있으랴. 그것은 마치 신분과 제도에 의해 꺾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기생 신분인 그녀는 버드나무 가지를 내려다본다. 그 순간 그녀는 그 꺾인 버드나무 가지에 파랗게 움트는 생명의 실체를 본다. 어디서나 땅에 꽂기만 하면 싹을 내고 살아가는 버드나무가 아닌가. 그녀는 그 꺾인 버드나무 가지가 자신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분신을 보내듯 아니 전부를 보내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꺾인 버드나무를 승화시킨 한 편의 시를 써 천리 길, 저 피안의 최경창에게 보낸다.
 
그리고 또 1년이 지난 1575년, 최경창이 병이 들어 봄부터 겨울까지 병상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홍랑은 그날로 길을 떠나 7일간 밤낮 없이 걸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의 병 수발을 들게 되는데 이들의 일이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다. 그래서 최경창은 결국 당쟁에 휘말려 그 일로 벼슬을 내어놓게 되고 이듬해 여름 홍랑도 서울을 떠나 쓸쓸히 고향 홍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고죽이 홍랑에게 2편의 시를 지어준다. 그리고 그녀가 보냈던 이별의 시도 <번방곡>이란 한시로 번안하여 함께 건네준다. 그녀가 쓴 시에 다시 자기의 마음을 담아 건네주는 것이다. 정말 가슴 저리고 감동적인 이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 시에서 소망한 대로 최경창은 바로 1년 뒤 홍랑과 재회했으나 안타깝게도 서울로 떠나던 중 45세를 일기로 경성 객관에서 병사한다. 연인이 죽자 홍랑은 상여를 따라 서울 인근인 파주로 올라와 뭇 사내들이 탐내지 못하도록 자신의 고운 얼굴을 험하게 상처내고 최경창의 무덤 옆에서 삼 년 동안 험한 시묘살이를 하였다니, 그 지극한 사랑 앞에 가슴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홍랑의 시조가 위대한 것은 한 생을 이어가던 삶의 곡진함을 문학적으로 절묘하게 풀어낸 데 있는 것이다. 어느 시조에서도 볼 수 없는 사랑의 지극함이 담겨 있다. 홍랑의 시조가 속삭임처럼 다가오는 이유는 그 은근한 사랑의 정서를 대변한 것뿐만 아니라 그 시조에 담긴 신선한 미적 충격에 있다. 묏버들 가지를 꺾어 임이 계신 곳에 보내려는 구절에서 인생의 싱싱함과 약동하는 봄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버들은 물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 버들을 보낸다는 것은 사랑의 생명을 흘러 보낸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멋들어지고 간절한 마음의 표상인가. 신분의 차이와 죽음의 이별을 극복하고 후세 사람을 감동시킨 이보다 더 멋들어지고 낭만적인 표현의 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인생사, 힘들어도 그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산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곡진함이 묻어 있는 것이 아닐까. 홍랑의 시조 앞에서 다시 사랑과 인생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미는 것은 삶의 곡진함만은 아니다. 지독하고 지극한 사랑 때문만도 아니다. 첫사랑에 속고, 절망시를 읊으며, 다시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산다’는 ‘사생 사사’의 신조로 사랑을 찾아 나섰던 방황의 시기에, 홍랑의 이 시조는 사랑의 나침판이 되었고, 미완의 사랑에 담긴 아름다운 비극미와 그 이면에 깔린 생명의 환희로 내 어두운 가슴을 환히 밝혀 주었기 때문이리라.
 
 
** 권대근 /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 경남 남해 출신
- 88년 월간 『동양문학』 수필 등단, <경북신문>,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회장, 한국문학세계화위원회 위원장
- 제1회 정과정문학상 대상 수상 등 다수
- 현)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 저서 『현대수필문예창작론』등 15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PT. Inko Sinar Medi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