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20) 소(牛)에 대한 단상 / 김준규
페이지 정보
수필산책
본문
< 수필산책 120 >
소(牛)에 대한 단상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동물 중에서 소처럼 사람과 친숙하고 고마운 동물이 또 있을까? 소는 힘이 세고 온순하여 길들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인류의 조상들은 일찍이 소의 이러한 장점을 터득하고 농사일에 필수적인 밭갈이와 각종의 이동수단에 적극 활용하여 식량 생산을 도모하였다.
요즘의 농촌에는 기계화의 보급으로 소가 하는 일이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농사일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꾼이었다. 소는 집안 대대로 물려받는 재산의 일부분으로 대 소 사에 불려 다니며 우리 생활에 보탬을 주는 고마운 동물이었다. 이른 봄 새벽 녘 부터 해질녘까지 논밭에 나가 쟁기를 끌기도 하고 가을이 되어 추수한 볕 단을 마차에 싣고 들녘을 가로 질러 마을을 오가는 부지런한 수레꾼이기도 했다. 옛날 농가의 집안 구조를 살펴보면 대개 사랑채의 바로 옆에는 외양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때 안채에서 내려다보이는 외양간에는 의례 암소 한마리가 한가로이 앉아서 먹은 음식을 되새김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넙죽한콧잔등은 늘 입김이 서려 빛이 나고 긴 혀는 양쪽 콧구멍을 연신 이동하며 침을 바른다. 우리에게 소중한 만큼이나 소는 집안 가까이 두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믿음직한 동물이었다. 크고 굼뜬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 먹어야 하고 배 속에 저장된 음식은 다시 꺼내어 어금니를 갈아 되새김을 한다. 봄여름에는 들녘에 지천으로 자라는 잡풀을 먹고 겨울에는 집안에서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와 구정물 (쌀뜨물)에 볕 짚을 썰어 넣고 끓인 소죽을 먹으며 농한기를 나기도 한다.
소의 고마움이 가난한 시대에 누리던 생활의 일개 도구로만 그치겠는가. 자녀들이 시집 장가를 가기 위해 혹은 학교 진학을 위한 목돈이 필요할 때는 기꺼이 이 한 몸 팔려 주인님의 큰일에 보탬이 되었다. 그뿐이랴 경사 난 잔치집의 제물이 되어 목숨을 바치기도 하고 장마당 어느 쇠전에서 새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 비운의 순간에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발 닫는 곳마다 무거운 몸을 내려놓고 살아야하는 운명이고 장소를 마다 않고 만나는 사람이 새 주인 이었다. 몸집이 크고 우둔하다 하여 말 귀에 아둔한 사람을 "쇠귀에 경 읽기" 라 비유하고 미련한자를 쇠 대가리라 폄화한다. 착하게 태어난 운명이 때로는 모멸의 상징으로 불러져도 슬퍼하지 않는다. 녀석의 달걀노른자처럼 맑고 커다란 눈을 보라! 살벌한 채찍이 몰아치는 순간에 도 악의에 찬 눈을 흘겨 본적 있는가? 뙤약볕 긴 밭이랑을 갈면서도 목마르고 배고프다 푸념하지 않는다.
힘겨운 하루 일을 끝내고 촉촉한 눈 속에 석양빛이 잠길 때 논두렁에 어미 소를 기다리던 송아지가 음매하고 울면 눈가에 기쁨의 이슬이 맺히는 순진무구한 동물이다. 소는 인간에게 노동력으로 이로움을 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매일매일 애써 만든 젓은 어린 아이들의 발육을 돕는데 사용하고 죽어서도 갈기갈기 부위별로 분해된 후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제공하여 건강과 행복을 지켜준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하지만 소는 죽어 세계적인 명품 백을 만드는데 사용되며 롤스로이와 벤스자동차의 시트가 되어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또한 인간과 함께 오랜 세월동안 자연의 순화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녀석이 배설하는 똥과 오줌조차도 버릴 것이 없다. 먹고 남은 풀잎과 볕짚 위에 겹겹이 쌓인 똥과 오줌은 훌륭한 퇴비가 되어 논과 밭에 뿌려져 곡물이 자랄 수 있도록 재생산의 밑거름이 된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소의 오줌으로 샤워를 하고 똥을 온몸에 발라 해충의 접근을 막는다고 한다. 또한 중앙아시아의 고원에는 소똥을 말려 집안에 수북이 쌓아 놓고 음식을 지을 때 와 겨울의 난방용 땔감으로 요긴하게 쓰인다고 한다.
그뿐인가 초원에 내 갈긴 한 무더기 질퍽한 쇠똥은 작은 벌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남김없이 분해된다. 개미와 파리, 지렁이의 먹이가 되고 부지런한 쇠똥구리는 제 몸집보다 큰 똥 덩이를 거꾸로 서서 뒤 발로 굴리며 땅속에 파놓은 굴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키우며 살아간다.
소는 큰 몸집과 왕성한 식사량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지만 어떤 혹독한 환경에서도 뛰어난 적응력으로 사람들과 오래 공생 하며 무한한 순종으로 봉사하고 죽어서도 우리에게 양식을 제공하는 참으로 고마운 녀석이다.
- 이전글(121) 머라삐산 화산석 /하연수 20.08.27
- 다음글(119) 편안함에 대하여 /이태복 20.08.1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