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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21) 머라삐산 화산석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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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348회 작성일 2020-08-27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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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21>
 
머라삐산 화산석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인도네시아 중부 자와 땅에는 수많은 석탑과 사원들이 기러기 떼처럼 점점이 내려와 앉아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짠디’라고 부르는 사원, 석탑 돌에 경전, 문화, 풍습 등 온갖 내용들을 조각해서 담아 놓은 것들이 장엄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보로부두르와 힌두교 프람바난 돌조각들은 정말 정교하고 섬세하다. 돌조각 속에는 흔들리는 나무 잎들이 있고, 바람 같은 숨결이 있고, 천 년의 돌 향기들이 아직도 돌 틈 사이로 흐르고 있다, 어떻게 천 년을 넘나드는 세월 동안 꺼지지 않는 생명을 돌에 불어 넣을 수 있었을까. 물론 고대 자와 조각가들의 천재적 기술이 있어서 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해답은 돌에도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고대 자와 조각가들이 머라삐 산에서 온 속이 부드러운 화산석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명의 숨결을 돌에 불어 넣을 수는 없었으리라.
 
 
이 나라 어디를 가도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돌이다, 그러나 돌이라고 모든 돌에 조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디 남산 돌이라고 다 옥돌이더냐 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 케두분지 화산석이라 해서 다 조각에 적합한 돌은 아니다. 보로부두르 서북쪽 화산 신 도로산에서 프로고강을 타고 보로부두르로 흘러 온 화산석들, 이 잘난 돌은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도 별 상처도 받지 않고 내려왔다. 그러나 조각가들은 너무 매끄럽고 속이 꽉 차서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을 틈이 없다고 했다. 보로부두르 동북쪽 머라삐산에서 빠베란강을 타고 내려 온 화산석은 홍수에 떠내려 오면서 많은 상처를 입고 내려왔다. 겉은 투박하지만 속이 부드러워 조각가들이 불어 넣는 생명의 입김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잘 받아들이는 돌이라고 했다. 그래서 보로부두르, 프람바난 그리고 중부 자와 수많은 짠디사원, 석탑을 건축하고 조각했던 사람들은 머라삐에서 온 돌을 가장 우수한 돌로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중부 자와 대부분 조각들은 매끄럽고 속이 꽉 찬 신도로산 돌도 아니고, 단단한 숨빙산 돌도 아닌 속이 부드러운 머라삐 출신 돌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 해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는데 아무리 조각하기에 가장 우수한 돌이라고 해도 보로부두르 작업장 근처에 있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될 뿐이다. 저렇게 멀리 있는 머라삐 돌을 어떻게 보로부두르까지 끌고 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돌 운송에 대한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불가사의란 말을 쉽게 붙인다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이다. 그 사람들이 붙인 칠대 불가사의가 고대 불가사의인지, 중세 불가사의인지 현대 불가사의인지 구분도 없다. 아니 시대별 구분 자체가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시대 구분 없이 보로부두르를 그냥 칠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모양이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세계 칠대 불가사의 중에 보로부두르와 견줄 만한 것이 별로 없는 듯보였다. 불가사의를 선정한 사람이 보로부두르를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또한 머라삐 화산석이 어떻게 보도부두르 근처까지 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쉽게 풀리지 않겠는가.
 
 
머라삐 화산석이 빠베란 강을 타고 보로부두르까지 내려오는 경로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인 소마 교수와 함께 직접 현장으로 확인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역사학자도 아니고 고고학자도 아닌 외국인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고 깜작 놀랐다. 이 위대한 유산을 받은 이나라 사람들조차도 보로부두르 의문에 대한 현장 탐사 연구를 게을리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문화유산에 외국인이 관심을 가져 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안내해 줄 값어치가 충분하다며 기꺼이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들은 머라삐산 아래에서 출발해서 빠베란강을 따라 차를 타고 내려와 프로고강과 합류하는 지점까지 왔다. 물론 내려오는 중간 중간에 차를 세우고 강바닥으로 내려가서 확인하는 작업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먼 거리였다. 이렇게 힘이 드니 직접 확인하러 다니기보다는 그저 남들이 적어 놓은 그 글들을 한 번도 의심해 보지도 않고 베껴오니 불가사의라는 말이 진실처럼 퍼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마 교수는 이 케두분지 지역은 대홍수가 많고 그때마다 머라삐 화산돌들은 빠베란강을 따라 서남쪽으로 내려가서 보로부두르 근처에 쌓였다고 했다. 그곳이 바로 신도로산에서 내려오는 포로고강과 빠베란강이 합류하는 강바닥이라고 했다. 반면 머라삐 화산에서 동남쪽으로 오빡(Opak)강을 타고 내려 간 화산석들은 프람바난 근처에서 쌓였다고 했다. 아무리 머라삐 머르바브 신도로 숨빙산 등 해발 삼천 미터나 되는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케두분지 대홍수가 그렇게 무섭다고 소문나 있고, 대홍수 넘치는 수량이 엄청나고 유속이 빠르다 해도 그 큰 돌들을 어떻게 보로부두르나 쁘람바난 지역까지 굴려올 수가 있었단 말인가. 내가 이곳 보르부두르, 프람바난을 여러 번 다녀가면서도 오늘만큼 가슴이 두근거려 본 적은 없었다. 이 두 강이 서로 만나 끌고 온 돌을 보로부두르 근처 합류 지점 강바닥에 남겨 놓고 프라고강이 되어 물은 인도양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아무리 케두분지의 대홍수가 크고 잦았다한들 어떻게 저 많은 돌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궁금했던 일들이 실제로 빠베란 강과 쁘로고강 합류 지점 현장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해를 하게 되었다.
 
좁은 강폭, 낮은 강바닥, 십수 미터 높이의 양쪽 벽이 병풍처럼 강을 따라 이어져 있다. 해발 삼천 미터 산으로부터 내려온 물들이 모두 이 통로 같은 공간으로 홍수가 쏟아져 내려온다. 순간 머리 위로 십수 미터 높이의 집채보다 큰 홍수 물이 화산석들을 굴리며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서남으로 흐르는 빠베란강을 타고 내려온 머라삐 화산석들은 보로부두르 불탑 조각에 사용되었고, 작업 후 남은 큰돌 부스러기들은 프로고강에 실려 인도양으로 깊은 바다로 사라졌다고 했다. 깊은 강 속의 돌들을 어떻게 들어가서 물가로 끌어 낼 수가 있었을까하는 의문도 현장을 보니 이해가 된다. 강물은 평상시에는 얕은 깊이였다. 대홍수 때만 갑자기 불어난 물이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지만 홍수가 지나고 나면 강물은 다시 평상시처럼 얕은 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또는 바닥에서 돌 고르기는 무척 쉬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로부두르 근처는 거대한 불탑 만드는 데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결국 빠베란강을 타고 서남쪽으로 내려 간 머라삐화산석들은 불탑 보로부두르의 주인이 되었고, 오빠(Opak)강을 타고 동남쪽으로 내려간 머라삐화산석들은 힌두사원 프람바난 석탑 조각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화산 신도로산에서 프로고강을 타고 보로부두르로 내려온 화산석들이 젊은 강남 신사풍이라면, 머라삐산에서 빠베란강을 타고 내려 온 화산석은 투박한 강원도 명주, 학산 시골 농부풍이다. 머라삐의 투박해도 속이 부드러운 돌이 8,9세기 중부 자와 짠디 석탑 예술의 꽃이 되어 천수백 년 동안 숨을 쉬고 있다. 지금도 이곳에 와서 돌의 숨소리를 듣고 돌 향기에 취할 수 있게 해 준 고대 자와 조각가들과 뛰어난 머라삐산 위대한 돌 앞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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