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자카르타 정전에 대한 단상 / 엄재석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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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70) 자카르타 정전에 대한 단상 / 엄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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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779회 작성일 2019-09-04 10:50

본문

< 수필산책 70>
 
자카르타 정전에 대한 단상
 
엄재석 /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어느 날, 주일 예배의 마지막 축도를 드리는 순간, 갑자기 정전이 되면서 교회성전 내부에 전기가 모두 나갔다. 예배가 끝나는 시간에 전기가 나감에 감사드린다는 재치 있는 목사님의 멘트로 예배는 끝났다. 이것이 긴 정전의 시작인줄 누가 알았으랴? 점심시간에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아 땀 흘리며 식사를 어찌 어찌 마치고 성도들은 하나씩 교회를 떠난다. 이제나 저제나 불아 들어오겠지 하며 기다리던 성가대 팀도 끝내 오후 연습을 포기하고 만다. 내가 진행하는 어린이 바둑교실은 그래도 끝까지 진행하였다. 수강생들이 바둑에 열중하다 보니 정전으로 인한 더위도 잊어버렸나 보다. 교회를 나와 집으로 가는 도로에 교통신호등이 꺼져서 교차로마다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인도네시아 7년차 생활에 처음 겪어보는 대정전이다. 지방 현장에서 근무할 때는 자주 짧게 정전이 있어서 컴퓨터 작업 시 수시로 저장해야 했다.
 
 
하지만 수도 자카르타에서 이런 장시간 정전은 없었던 거 같다. 집에 오니 아파트 내에 비상발전기를 작동하고 있었다. 정전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며 자카르타 교민들이 이용하는 단체 카톡방에 들어오니 관련 소식들이 올라 왔다. 그 중에서 정전이 최대 24시간까지 갈 수 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24시간이면 비상 발전기에 공급되는 유류도 끝이 날 텐데…… 만약 그렇다면 냉장고에 음식들은 어찌되고 끼니는 무엇으로 해결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혹시 몰라서 비상식량이라도 사고자 인근에 마트로 간다. 가로등 꺼진 밤길을 걸으며 SNS를보니 인도네시아 전력공사 PLN의 공식발표가 나왔다 “수라바야 발전소에 가스터빈이 정지하면서 자카르타와 수도권에 정전이 발생했다”라고 발표가 되었다. 또 다른 뉴스를 보니 이번 정전으로 1억명 이상의 서부 자와 주민들이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달리던 자카르타 MRT 지하철이 멈추고 모든 시내 교차로 신호등이 꺼졌다. 유료도로의 톨게이트 전자 시스템이 중단되어 수동으로 바뀌고 지역에 따라 인터넷과 휴대전화도 불통이 되었다. 거기에다 카드결재와 ATM의 현금인출도 불가능하여 정전으로 전기, 교통, 통신, 금융 대란이 발생하였다.
 
 
갑자기 우리나라가 걱정이 되었다. 잘 만들어서 30년 이상 운영하던 원자력 발전이 위험하다고 하루아침에 탈 원전 정책으로 바꾸었다. 원자력 대신에 재래식 에너지인 석탄과 유류와 가스 발전을 확대한다고 한다. 발전원가의 증가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과 대기오염 문제는 어찌 해결하려는지 걱정이다.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원자력 발전 포기로 갑작스런 대 정전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밤길을 맹인처럼 걸어가며 내가 참여했던 발전소 건설의 아련한 추억들을 회상한다. 30년 전에 방글라데시 가스터빈 발전소 건설현장이 우선 떠오른다. 방글라데시는 아시아 최빈국 중에 하나로 우기 철에는 국토의 70프로 이상이 물에 잠기는 나라다. 그 가난한 나라에서도 부족한 전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국 건설회사에게 발전소 건설의 일을 맡겼다. 나는 토목 기술자로 냉각수를 취수하는 지하 Intake 구조물을, 보일러와 전기를 생산하는 터빈 기초구조물 건설을 담당하였다. 방글라데시라는 저개발국가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30대 초반에 5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준공 후 첫 발전 순간의 기쁨은 지금도 남아 있다.
 
 
석탄, 석유 등 화석 연료 발전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지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이의 대안으로 신재생 에너지인 소수력, 지열, 풍력, 태양광 발전을 주목한다. 소수력(Micro Hydro) 발전은 강을 막아 댐의 물을 배수로를 통해 평행 이동시킨 후에 낙하 시켜 전기를 얻는 방식이다. 한번 건설하면 낙차에너지로 발전하기에 에너지 소요가 전혀 필요 없는 친환경 발전이다. 대규모 수력발전 댐에 비하여 건설을 위한 환경파괴의 피해가 적고 건설이 용이하다. 좁은 계곡에 낙차가 크고 일년내내 유량이 풍부한 지형에 유리하다.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도 수마트라 메단 북단 산림지역에 수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였다. 지열 발전은 지하에서 나오는 고온의 지하수에서 나오는 증기 열로 발전하는 방식이다. 지열은 지하에 있는 고온의 물이나 암석(마그마) 등이 가진 천연에너지이다. 내가 2015년에 참여한 수마트라 북단 청정호수 토바 인근에 있는 살룰라 지열발전소는 지하 3km까지 심정을 설치하였다. 지하에서 나오는 고온의 증기로 증기 터빈을 회전시켜 전력을 생산하는데 그 규모가 세계 최대라고 한다. 현재 지열 발전은 많은 나라에서 실용화되고 있는데 인도네시아도 그중에 하나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있어 자주 화산이 활동하는 인도네시아도 지열발전소 건설에 적합한 자연적 조건을 갖추었다.

 
다음 주에는 슬라웨시 팔루에 출장 계획이 잡혀 있다. 팔루는 대지진과 쓰나미로 수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도시가 폐허화된 곳이다. 부족한 전력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민간자본에 의한 태양광 발전소가 계획되어 있다. 태양광 발전은 태양 전지를 이용하여 태양빛을 직접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사용하는 방식이다. 무한하고 청정한 빛 에너지를 사용하는 친환경 발전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건설 중에 있다. 자카르타의 정전 사태 이후에 나온 첫 번째 대책으로 모든 관공서 지붕에 태양광 발전 패널을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오늘의 정전사태가 전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준다. 이번 답사는 대상 부지에 대한 태양광 발전소 건설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첫 걸음이다. 과거 지진 발생지역에 여행이라 일말의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나의 전문기술과 인맥과 열정이 인도네시아를 밝히는데 초석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팔루에 다녀오리라 다짐한다. 정전에 대하여 깊은 상념에 젖는 동안 어느덧 주변의 가로등이 일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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