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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77) 보로부두르 이야기-원조 선녀 마노하라 /하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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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331회 작성일 2019-10-24 11:47

본문

< 수필산책 77 >
 
보로부두르 이야기-원조 선녀 마노하라
 
하연수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감사)
 
 
보로부두르 석벽에 새겨져있는 조각들뿐만 아니라 박물관 구석 뜰에서 본래 자리를 찾을 때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돌조각들까지도 살아 숨을 쉬고 있다. 무엇이 이 돌 조각들을 천년 세월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 숨을 쉬게 만들어 주고 있을까? 이 모두가 숨을 쉬고 이야기를 걸어오지만 그 중에서도 이층 제일 회랑 패널 I.A.b.11이 가장 많은 말을 걸어오는 패널이다. 이 패널은 원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 선녀 마노하라(Manohara) 공주가 깊은 밤에 판짜라(Pancara) 궁전 탈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조각들은 언제 보아도 천 년 전 신의 손을 빌려 빚어낸 천재 조각가의 걸작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조각의 정수를 만나 볼 수 있어서 감동이다.
 
 
이 패널에서 보여주는 선녀 마노하라 공주의 비상(飛上) 동작 자세 섬세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의 한숨을 쉬게 만든다. 두려움 가득한 선녀 마노하라 공주의 얼굴 표정에는 죽음을 피해 궁전으로부터 도망을 해야 하는 급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어깨를 전진 방향에서 옆으로 비켜 공기저항을 피하는 유선형 자세, 구부린 오른쪽 다리 끝 발바닥을 왼쪽 허벅지 전면에 착 붙이고, 왼쪽 다리 무릎을 구부리고 종아리를 허벅지 뒤에 착 붙여 공기 접촉 부분을 최소화하는 자세, 양쪽 손바닥 수도부분을 모두 전진 방향으로 세운 자세 등에서 공기 저항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공중으로 빠르게 떠오르는 모습, 모든 동작 어느 것도 공기 저항을 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비상(飛上)자세는 인체공학적으로도 완벽함을 보여주는 신의 수준에 근접하는 조각가의 솜씨다.
 
주인공 선녀 마노하라를 받쳐주고 있는 패널 I.A.b.11 조연들의 모습 또한 거저 넘어가는 것이 없는 생동감 있고 세밀하게 표현된 명작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작은 구름, 주변 나무, 새들이 보일 정도로 밝게 해서 주인공의 동작을 낮처럼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무기를 들고 있는 궁전 수비대 병사들은 감긴 눈에서 졸고 있음이 보이고, 고개를 한 편 어깨에 떨어트리고 있는 궁녀들의 무거운 눈꺼풀에도 졸음이 가득하다. 이 정도로 세밀한 표현이라면 예술 순례 초보자라도 깊은 밤으로 가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 주고 있다.
 
 
하늘을 날아 탈출하려는 선녀 마노하라 공주의 뒤를 따라 날고 있는 새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훗날 여러 복사본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선녀가 두 아이를 안고 하늘나라로 갈 때 날개옷을 입고 비상한다. 그런데 이 보로부두르 원조 선녀 마노하라에게는 하늘을 나는 비행도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궁전 위에 떠 있는 저 구름이 원숭이 하누만 장군이나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구름 같은 탈 것이 아니다. 즉, 선녀 마노하라 공주가 타고 갈 전용 구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 고대 이 천재 조각가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맨 몸으로 하늘을 날아 탈출하게 할 리는 없다. 그런 비상식적 구도를 아무렇게나 보여 준다면 천재 조각가가 아닌 바보 조각가들이 된다. 분명히 이 돌조각 속에 수수게끼 보물을 숨겨 놓고 예술 순례자 스스로 찾아볼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를 추적해 가보면 선녀 마노하라 공주는 뜻밖에도 날개를 몸에 달고 있는 반인반조(半人半鳥)들이 사는 하늘나라에서 온 선녀다. 사실 날개를 허벅지에 붙이고 있는 반인반조(半人半鳥) 킨나라 킨나리(Kinnara Kinnari) 들은 이 보로부두르 조각 중에 여기 저기 심심찮게 등장하는 조각들 중에 하나다. 그런데 왜 선녀 마노하라 공주는 그 날개들 달고 있는 킨나리(Kinari) 선녀인데도 날개가 보이지 않느냐고? 천재 조각가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날개를 머리빗으로 상징화시켜놓고 선녀 마노하라 공주가 로봇 태권브이처럼 비상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 선녀와 나무꾼에서는 나무꾼이 날개옷을 훔치는 파렴치한 나무꾼이다, 그러나 이 보로부두르의 선녀 마노하라는 이 비상도구인 머리빗을 결혼 선물로 수다나 왕자에게 주게 만들어 놓았다. 수다나 왕자를 선녀 옷이나 훔치는 그런 날도둑으로 만들어 놓을 수가 없어서 선녀 마노하라가 비상도구 머리빗을 결혼 선물로 주게 만들었다.
 
이 날개가 머리빗으로 바뀐 것이 설화에 나오는지 아닌지는 S교수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한다. 만약 설화에서 비상도구가 킨나라 킨나리의 날개로만 나오는데 보로부두르에만 날개를 머리빗으로 상징해 두었다면 이 선녀 마노하라를 만들어낸 보로부두르 제작자와 조각가는 조각기술도 천재이지만 조각에 이야기를 만들어 넣는 기술 또한 천재 중의 천재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제작자와 조각가들은 원조 선녀 마노하라 공주를 조각할 때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만약 선녀 마노하라 공주의 몸에 킨나리(Kinari)들의 큰 날개를 달아 놓았다면 그렇게 유려하게 날아오르는 선녀의 세심한 비상 모습을 그려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도망의 순간과 그 세밀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원작 속 날개를 빼 버리고 빗을 등장시켜 날개를 상징하게 만들었다. 날개를 빼 버린 그 자리에 자신들이 나타내고 싶었던 선녀의 비상 모습을 마음껏 표현했다. 이들의 천재임은 여기서 확실히 드러난다. 원작 날개를 그대로 달아 놓고 날아가게 만들었다면 이 조각도 그저 흔하게 나오는 보로부두르 킨나리 킨나라 조각 중 하나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어쨌든 수다나 왕자는 날개인 그 머리빗을 어머니인 왕비에게 맡기면서 만약 마노하라 신변에 위험이 닥치면 타고 날아 갈 수 있는 빗을 전해 주라고 부탁한 후 국경 반란 진압 출전 길을 떠난다. 물론 국경 반란군 진압을 위해서 수다나 왕자를 멀리 보내 놓고 마노하라를 처단하려는 이 나라 제사장 브라만의 음모였다. 수다나 왕자는 반란군 진압 출발 전 마노하라 공주가 위급할 때 전해주라는 말과 함께 날개인 이 머리빗을 어머니인 왕비에게 맡겨 두고 간다. 이 머리빗이 바로 하늘을 나는 킨나리들의 도구인 날개를 상징한다. 마노하라를 제사의 제물로 바치려는 브라만 제사장의 음모를 눈치 챈 왕비가 마노하라에게 이 머리빗을 가지고 빨리 궁전을 탈출하라고 마노하라 공주에게 준다. 패널 번호 I.A.b.11 마노하라(Manohara), 이 부조 속 마노하라 몸 어딘가에 이 머리빗이 날개로 작동하고 있을 것인데 아직 몸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찾지 못했다.
 
 
어린이 동화나 전설로만 들어왔던 원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이곳에서 만나 볼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자카르타 시내 R호텔 로비 왼쪽 벽 한 면 가득 선녀와 나무꾼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바람에 살랑살랑 날리는 얇은 옷으로 몸매를 감추고 나무꾼을 만나 살았던 선녀 그림이다. 아마 호텔 관계자들이 보로부두르에 선녀와 나무꾼 원조인 마노하라 공주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보로부두르의 멋진 선녀 마노하라 공주 그림을 걸었을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위대한 고대 중부 자와 천재 제작자와 조각가들이 일천년의 광속(光速)으로 은하수를 넘나들며 보로부두르 석벽으로 날아와 원조 선녀 마노하라 공주에게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고 있다. 깊은 밤 판짜라 왕궁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선녀 마노하라 공주가 허공을 가르며 비상하는 소리가 내 가슴 깊은 계곡으로 쏴아 휘돌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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