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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82) 아침에 꽃을 지고 /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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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308회 작성일 2019-11-2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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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82 >
 
아침에 꽃을 지고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금요일 아침, 주말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지만 잘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약간 긴장하고 나선 출근길이다. 집에서 출발하여 동네를 벗어나 늘 아침 시간이면 붐비는 네거리를 못 미쳐 있는 짧은 다리를 지날 때였다. 햇살이 정면에서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데 해를 등지고 초로의 한 아주머니가 등에는 바구니를 지고 양손에 무언가 들고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역광으로 인해 실루엣처럼 분명하지 않다가 가까워지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 먼저 눈에 띄는 하나는 짊어진 등 바구니에 담긴 화분에서 화사하게 웃는 꽃들이다.
햇빛이 꽃잎을 투과하여 꽃잎 색깔은 더없이 밝은 빛으로 허공에서 분사되고 있다. 그 수많은 빛의 입자들이 나에게로 달려들어 마음 스크린에서 밝게 웃는 꽃으로 완성되어 투사되었기에 건조한 마음이 햇살처럼 밝아진다.
 
등에 업힌 바구니 속에서 옹기종기 목을 내밀고 있는 것들은 만개한 국화꽃이다. 양손에 들린 것도 국화꽃 화분이다. 꽃만이 웃고 있는 것이 아니라 꽃을 지고 아침을 나서는 아주머니도 잔잔한 미소가 얼굴에서 넘쳐흐른다. 스치는 순간이 단 몇 초에 불과하였지만, 이 각각의 미소를 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 금요일 아침 조금은 긴장감이 있어 무심코 지나칠 흔히 있을 법한 아침 풍경임에도 유독 이 모든 것이 서정적으로 나에게 어필된 것은 햇빛의 파장을 따라 바람처럼 그들의 미소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색깔이, 그 향기까지도 나에게로 전해져왔기 때문이리라. 다리를 건너기 전과는 달리 나는 그 짧은 만남으로 인하여 입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고 얼굴에서는 꽃들의 미소가 스며서 마음이 꽃밭이 되어 밝게 변한 것을 느낀다.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고 있지만 나는 그 꽃 장사 아주머니처럼 꽃을 지고 아침 햇살을 등지고 하루 장사를 나서는 행복한 꽃나무 장사가 되어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다. 어깨에 지고 다닐 만큼의 화분만 등에 지고 그것도 모자라면 빈손으로 가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들고 다니며 양손에 화분 두 개씩을 들었어도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다.
 
단지 오늘도 염려되는 것은 등에 진 것은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손에 든 화분은 팔리지 않아 오래 들고 다녀야 한다면 팔이 점점 아파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꽃을 판다는 것은 다른 어떤 물건을 파는 것보다 장사로서 마음이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꽃은 팔려 가지만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행복한 상품이다. 오래 사랑을 주며 기른 화훼 농부와 헤어지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것은 꽃의 천성 때문이다. 꽃나무들은 팔려가 다른 집에 심어져도 여전히 밝은 미소를 발산하여 주위를 행복하게 만들 것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새 주인으로부터 여전히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자동차라도 가질 여유가 있다면 차에다 많이 싣고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두루 다녀 많이 팔 수도 있으리라. 그런 형편이 못되어 들고 다니더라도 오늘 들고 나온 이 꽃이라도 다 팔린다면 약간의 생필품과 손주의 해진 운동화를 새것으로 바꿔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침에 나서는 꽃나무 장사의 얼굴은 밝고 설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다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꽃들의 미소를 그대로 다시 들고 와 하루를 함께 더 지낼 수 있으니 서운치 않다. 하지만 장사를 해보면 어느 것이나 꼭 주인을 만나 제때 팔려 가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옛 장사꾼들의 말에도 어떤 물건이라도 때가 되면 다 제 주인을 찾아간다고 하였던가. 열대 건기의 태양이 한낮에는 불을 지르는 듯하다. 모든 것을 오그라들게 하는 강한 태양의 열기를 견디기 위해서는 자주 물을 마셔 줘야한다. 마실 물은 큰 병으로 바구니 화분 사이에 꽂아가지고 다니니 안심이고, 점심은 때가 되면 길가 와룽에서 한 그릇 소또 아얌으로 간단히 때우리라. 다리가 아파오고 피곤하면 사람들이 한가롭게 앉아 쉬고 있는 평상에 잠시 같이 앉아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쉬었다 가면 되리라. 어느 집이나 화분 몇 개 정도는 기르고 화단이 있다면 좋아하는 꽃나무로 채워 재배하기를 좋아하기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꽃나무를 파는 것은 큰 염려가 안된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집을 찾아가면 꽃나무를 팔 수 있는 확률은 많다. 며칠 전 이사 온 외국인 집을 오후에는 들러야겠다고 생각한다. 흔히 외국인들은 특히 오랑 꼬레아(한국인)들은 꽃나무를 무겁게 지고 다니는 것만을 보고도 측은지심으로 사주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잘 안다. 그저 꽃나무를 팔기 위해서보다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그들에게 힘내라고 격려의 말을 건네리라. 만약 내가 꽃나무 장사라면 때로는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감사하며 그 집을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는 가장 빨리 사귐으로 연결해 주는 멋진 교량이다. 물건만 사라고 외치기보다는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부터 먼저 하리라. 그들을 축복하는 말을 먼저 하리라.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현장에서 칭찬 거리를 찾아 칭찬의 말로 더욱 다가가리라. 혹, 만날 때 그때의 상황에 일을 하고 있다면 지체 없이 도움의 손길이 되어 주리라. 근심의 얼굴을 보면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건강이 안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역시 기도로 그들의 쾌유를 빌 것이다. 감사하게도 꽃나무를 사준다면 그들의 정원에 다독거려 잘 심어주리라. 꽃나무가 잘 자라서 꽃을 피우며 미소와 향기로 채우고, 꽃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꽃말 그대로 그 가정이 사랑과 웃음과 행복으로 충만하게 채우도록 축복해 주고 싶다.
 
 
올망졸망 등에 업힌 꽃들의 미소는
꽃잎을 투과하여 발산되는 빛살을 타고
꽃잎물감으로 물들여 갓 널은 비단같이
고운 결 순수한 태초의 색으로 허공에서 물결치고
 
등 바구니에서 목 내민 꽃들의 향기는
시원하게 불어오는 아침 바람을 타고
등굣길 무리 지어 가는 학생들로부터의
상큼한 비누향기같이 후각을 스치고 사라진다
 
꽃들은 등에 업혀 웃는다
꽃들은 팔려 가면서도 웃는다
꽃들은 헤어지면서도 웃는다
꽃나무는 어디에 심어져도 행복하다
 
길나서는 꽃 장사는 꽃의 마음을 닮아
인정 많은 그녀의 미소를 덤으로 건네니
꽃들도 웃고 사는 사람도 어디에나 미소
잘 팔려도 안 팔려도 행복한 꽃 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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