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88) ‘빛’은 사랑이다 / 김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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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88 >
‘빛’은 사랑이다
김재구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사무국장)
요즘 인도네시아는 우기 철에 접어들어 비가 오는 날이 많아졌다. 방 안도 눅눅하고 하늘도 자주 구름이 끼어서 기분도 다소 우울하기까지 한다. 그래서인지 건기 때는 그렇게 반갑지 않던 태양 빛이 자주 그리울 때가 있다. 며칠 전 보고르 올레(Ole)호텔에서 아침에 빛으로 흠뻑 젖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성탄절을 기념하는 2019년 교회 수련회가 있어 자카르타 남쪽에 위치해 있는 보고르의 올레 호텔에서 이틀을 묶게 되었다. 우리 식구가 다른 교인들 보다 비와 어둠을 뚫고 하루 먼저 온 그 다음 날 24일 호텔 객실은 아침 7시가 되어도 아주 어둑했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하자는 제안을 거부하는 아내와 아들을 뒤로 하고 객실 문을 혼자 열고 한 발 밖으로 나섰을 때였다.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아침의 햇살이 하늘에서 수영장 위로 아낌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빛으로 샤워를 하며 식당으로 걸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빛은 사랑이다”라는 것이다. 우울했던 내 마음이 밝아지게 하는 빛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귀한 것을 주기만 하고 받을 생각은 안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분수처럼 넘쳐나는 빛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빛이 무한대로 쏟아지는 인도네시아는 아마도 축복의 나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 커피를 내려 받고, 소또아얌(닭고기국)으로 아침을 식당에서 홀로 먹으면서 태양 빛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특히나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한국 드라마 제목의 의미가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내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문협의 몇몇 회원들이 작년에 “아 그 드라마 아직도 못 보셨어요” 할 때, “제가 좀 일이 많아 바빠서요” 하고 머뭇거렸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나는 바쁘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잘 보지를 않는다. 지난 20여 년 동안 첨부터 끝까지 본 드라마는 겨우 하나 <제빵왕 김탁구>가 전부이다. 시간이 나면 시집이나 성경을 주로 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드라마에 대하여 회원들이 이야기 할 때 나만 끼지를 못해서 나도 꼭 봐야지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리고 국제학교에서 한국어도 가르치기 때문에 혹시 교육 자료로도 써볼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침 한 학기가 끝나고 근무하는 학교에서 3주간의 겨울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은 찬스였다. 나는 한꺼번에 몰아서 24편을 며칠 만에 일사천리로 보게 되었다.
역시 아주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미스터 션샤인>은 이응복 감독이 연출하고 <태양의 후예>, <도깨비>를 제작한 김은숙 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 제작하였다. 그리고 2018년 한국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다.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이 18%까지 올렸다고 한다. 대단히 인기리에 방영한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역사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에 대하여 찾아보니까 비평가들 사이에 칭찬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을 강제로 강탈한 일본인들의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고 마치 소수의 한인들이 먼저 나서서 일본에게 거저 갖다 바친 것처럼 묘사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 이병헌의 무르익은 연기력과 이제 신인의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 여주인공 김태리의 연기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드라마에 대하여 하고자 하는 말은 한가지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다. 이 드라마가 펼치는 대단한 러브스토리이다.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젊은이들에게 “사랑”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 드라마에도 당연히 남과 여 간의 사랑이 나온다. 하지만 여느 다른 러브스토리와 다소 다른 굵은 선을 그어 놓고 있다. 진짜 사랑은 이런 거구나! 하는 깊은 교훈을 얻게 된다. 특히 나 자신도 한 가지 깨닫고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마지막 24화를 볼 때까지 제목 <미스터 션샤인>과 드라마의 내용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 교차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처음에는 왜 “션샤인”이라고 표기 했지? “선샤인”이 맞는 표기인데 표기법도 맘에 안 들어 투덜거렸다. 그런데 그 의문은 관련 신문 기사를 읽고 풀렸다. 원래는 “선샤인”이 맞는 외국어 표기법인데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 근대 표기법 그대로 “션샤인”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최유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름도 성도 제대로 없는 노비였다. 주인이 최가라서 최씨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주인에게 매를 맞아 죽고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고 맞아 죽느니 우물에 몸을 던진다. 홀로 살아남은 유진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미군이 되어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다시 조선으로 요인 암살이라는 특수 임무를 맡고 돌아온다. 아이러니 하게도 조선의 고귀한 양반의 귀한 딸이지만 독립군으로 유진과 비슷한 일을 하는 고애신과 처음 지붕 위에서 마스크를 쓰고 달 빛 아래 서로 맞닥뜨리며 이 둘의 낭만적인 사랑은 시작된다.
재미있게도, 극중에서 여주인공 애신은 영어 “LOVE”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벼슬보다 좋다는 러브가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묻는 애신에게 남주인공 최유진은 이렇게 답을 한다. “총 쏘는 것보다 더 어렵고, 그보다 더 위험하고, 그보다 더 뜨거워야 하오.” 애신은 정혼한 남자가 있음에도 이 러브의 의미를 혼동하여 한 번 같이 하자고 유진에게 제안을 한다. 유진은 애신의 정혼자 집안이 부모를 죽인 원수들이라 이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의 일환으로 애신에게 그 러브를 하자고 허락을 한다. 그리고 러브를 어떻게 하는지 묻는 애신에게 유진은 그 순서를 말하여 준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하고, 그 다음 허그를 하는 것이라고 하자 애신은 유진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야한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더는 볼 수가 없다. 요즘 어느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그 흔한 키스 장면 하나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 두 사람 간의 깊고 뜨거운 사랑으로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애신의 부모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 맞서 분연히 아기 애신을 살리며 일본군들의 총에 맞아 죽는 비운의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양반이라도 애신은 다소 어두운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여인이었다. 이 후 양부모의 사랑도 못 받고 할아버지 밑에서 슬픔과 한을 안고 자란 양반집 딸 애신은 부모님의 피를 이어 받아 은밀히 독립군으로 활동을 한다. 거의 목숨을 걸고 임한다. 그러나 그녀의 삶이 그리 순탄 하지가 않다. 할아버지의 집도 매국노 이완익에 의해서 무너져 내리고, 동지들도 하나씩 죽어 없어지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아야 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으로 완전히 기울어 갈 때 그녀의 어두운 마음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 때, 태양 빛처럼 애신의 마음에 빛으로 다가온 존재가 최유진이었다. 그는 애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걸어가는 쪽으로 걸어가 주는 것이 사랑인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애신에 대한 기도는 단 하나, 그녀가 죽지만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면 유진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는다. 애신이 미국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 사실은 자신과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일본으로 가서 비밀 첩보 일을 하기 위함을 알지만, 허락을 하고 동행을 한다. 이 후 일본에 도착한 후 자신은 미국으로 떠난다고 했지만 애신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그 마저도 못하고 다시 돌아와 그녀의 목숨을 또 구하게 된다.
그렇게 싫은 조선이었지만, 유진은 안전하고 살기 좋은 미국행을 완전히 포기하고 오직 애신을 구하기 위하여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아주 큰 폭발 속에서 애신을 발견하고 목숨을 다시 한 번 살려 낸다. 그녀가 원한다면 결혼식이 없어도, 같이 살지도 못해도, 유진은 애신을 위하여 급기야는 자신의 목숨마저 기꺼이 주고 만다. 애신을 만주로 데려가야 하는 기차 안에서 유진은 자신의 등으로 일본군의 총탄을 다 막아 내며 총탄이 한 알도 없는 권총을 손에 쥐고 있는 애신만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미소를 지으며 죽어간다. 자신의 권총에 한 알 남은 총알은 애신이 타고 있는 객차의 고리를 끊는데 사용하며 자신은 애신과 멀어진다. 이러한 유진의 사랑에 나는 아주 진한 감동을 받았다. 유진은 애신의 삶이 어두울 때마다 나타나 그녀를 밝은 빛으로 인도 하여준 ‘미스터 선샤인’ 이었던 것이다. 24화 마지막 편에서 애신은 끝까지 살아남아 만주에서 독립군들에게 빛을 주는 사격술을 밝은 얼굴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얼굴에 쏟아지고 있던 유진의 밝은 빛을 보았다. 그리고 역시 ‘빛은 사랑이다’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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