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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97) 지붕 위의 파라볼라 /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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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469회 작성일 2020-03-12 13:11

본문

< 수필산책 97>
 
지붕 위의 파라볼라
 
문인기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아침 산책길에서 나의 시선은 대개 하늘을 향한다. 주택 지붕이 만드는 스카이라인 위 여백에서 하루 중 가장 밝고 깨끗한 눈을 통해 들어오는 생명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밤 동안 온갖 불순물들이 가라앉아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과 햇빛이 가장 맑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침이다.
 
동네 이웃집 지붕마다 큰 원형 파라볼라 안테나가 하늘을 향해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며 서있다. 무언가를 호기심으로 일제히 쳐다보는 듯, 사모하는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얼굴처럼 보인다. 그 얼굴은 기다림으로 애가 타 점점 커져서 저렇게까지 넓어졌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녹슬어 앙상해질 때까지 쳐다보는 하늘 끝 방향에는 결코 흐트러짐이 없다. 애초 파라볼라 안테나를 설치할 때 오죽이나 튼튼히 기둥을 세우고 볼트 너트로 곳곳을 조여 요동하지 않도록 야무지게 고정했을까. 그러니 수명이 다하는 연한까지 안테나는 부여된 사명을 따라 바라보라는 한 방향을 졸지도 않고 한눈팔지 않고 지붕 위에서 파수를 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으로 말하면 우직하게 요령을 피우지 않고 주어진 사명의 선상에서 지극히 충성스러운 일꾼인 것이다.
 
 
뾰족한 지붕 위 빨간 기와들은 하늘과의 경계에서 파라볼라 안테나를 받쳐 들고 있다. 파라볼라는 높은 위치에 우뚝 서 호령하는 키가 장대한 장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같이 주택들이 삼각지붕으로 하늘을 찌르는 가운데서 원만한 모습으로 기하학적 조화를 이루어 주변을 순화하며 하늘을 향해 팔을 펼치고 있는 자세다. 자세히 보면 모두 하늘을 앙모하고 있어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 간혹 있다.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 산골마을에서도 대부분의 접시 안테나는 하늘 정 중앙을 향해 설치되어 있는데 어떤 것은 45도 비스듬히 서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있다. 내 집 지붕 안테나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서쪽을 보고 있는 파라볼라이다. 주의 깊게 보는 사람들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대부분 안테나는 곧바로 하늘 정 중앙을 쳐다보고 있는데 왜 빡 문집의 것은 비스듬히 서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바람에 방향이 틀어졌나? 물론 누구나 아는바 그 이유는 시청하고자 하는 전파에 따라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45도 서쪽 하늘을 바라보게 안테나를 설치한 것은 특정 방송전파를 송신하는 위성이 그 방향에 있기 때문이며, 직각으로 하늘 정 중앙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그 방향에 특정의 정지위성이 우주궤도에 떠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안테나는 다른 집과 달리 유독 한국방송 전파를 받기 위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고 대다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방송을 보기 위해 하늘 정 중앙을 지나가는 인도네시아 통신위성을 향해 파라볼라를 고정해 둔 것이다. 접시 안테나 하나로 모든 위성 전파를 다 수용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받고자 하는 전파를 위해서 반드시 특정 위성의 방향으로 고정시켜야 한다. 다른 위성의 전파를 취하려면 또 다른 안테나를 설치하든지 아니면 달려있는 파라볼라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안테나마다 받아들이는 전파가 다르고 시청할 수 있는 채널이 다르다는 의미이다. 달리 표현하면 안테나마다 역할과 커버하는 범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각자의 다른 점을 서로 인정하고 다양성 가운데서 서로의 장점을 발휘하면서 상호 간에 약한 점을 보완하며 살아가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생각해 본다. 사회는 다양성을 가지고 섞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다양한 종족과 피부색, 서로 다른 기후와 토양, 다양한 산업과 생산품, 수많은 언어와 문화, 상이한 민족성과 종교 등이다.
 
이런 다양하고 상의한 것들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여 포용하며 어우러져 살아간다면 이 지상에 머무는 동안도 천국처럼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소수지만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관용의 마음이 바로 이웃 사랑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오늘날 흔히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 편 남의 편을 갈라 생각하며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벽을 쌓다 보니 개인 간에는 갈등, 나라와 민족 간에는 전쟁, 정치적으로는 협치를 못 하고 국회에서 늘 다투는 추태를 보이기도 한다. 나라 간에 무역을 하면서도 지나친 자국 산업 보호 정책 때문에 무역전쟁을 불사하며 첨예한 날을 세우고 대치하는 바람에 쌍방이 막대한 손실을 자초하는 것이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수많은 위성안테나 파라볼라, 비록 바라보는 방향은 다르지만 각기 지향하고 있는 방향성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꿋꿋한 모습에서 교훈을 얻는다. 복잡다기한 현대를 살아가며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고 저마다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하는 삶의 자세를 배운다. 지붕 위 높은 망루에서 녹슬어 허물어질 때까지 위치와 직무를 지키는 충성된 모습을 보며 배운다. 나는 비록 서쪽으로 고정된 파라볼라를 통해 한국방송을 시청하고 살아도 하늘 정 중앙으로 고정된 안테나로 인도네시아 방송을 보며 사는 이 나라의 주인인 인도네시아 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만나면 웃는 얼굴로 서로를 축복하고 소통하며 살아가는 이웃이 된 지금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오늘도 나의 위치에서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며 성실하게 이웃을 축복하며 살아가리라. Tuhan memberkati Anda sem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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