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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127) 안동산 정상에서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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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117회 작성일 2020-10-0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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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127 >
 
안동산 정상에서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때다. 어려울 때 일수록 사건도 더 생기고 사람 관계에서 실망하는 일도 많다.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이성과 감정을 공유한 인간은 진실을 밝힌다고 대화를 하다가 끝장토론이 되어 이기적 속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감정은 악감정으로 치우칠 수 있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실수도 할 수 있다. 한 방향으로 쏠릴 때 그렇다. 일을 하기 위해 수레를 끄는 말들에게 좌우시선을 가리는 안대를 씌운다. 한곳을 보고 수레 끄는 일에만 집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람들도 자신의 세계에서만 열심히 살다가 보면 세상에 또 다른 세계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편향된 시각으로 살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게 하고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푸쉬킨의 '삶'이라는 시에서 생활이 자신을 속일 때라도 참으라고 한다. 참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요즈음 같을 땐 참기보다 훌쩍 어디론가 떠나 새로운 시각을 찾는 것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에게만 매달리다가 보면 스스로에 대해 화날 때가 있다. 자신에 대해 노여움을 걷고 또 다른 세상도 보면 어떨까? 그 길 중에 하나가 여행이다. 요즈음 사람들이 코로나로 위기를 겪으면서 산골에 사는 내가 부럽다며 자신의 집을 훌쩍 떠나 멀리 이곳까지 찾아와 힐링하고 가는 분들이 있다. 어떤 이는 전화통을 잡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민을 토로한다. 고민을 한다는 건 살아 있다는 반증이다. 다만 고민이 있을 때 집 콕으로 영혼이 고인 물처럼 썩을까봐 야외로 나가 신선한 공기도 쐬고 아름다운 자연과 대화하면서 힐링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나는 종종 거처에서 훌쩍 여행을 떠나 자연을 찾는 버릇이 있다. 이렇게 사는 것을 어떤 이는 한량이라고 하지만 거짓되지 않는 자연은 영혼을 소생시켜 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떠나는 것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불편하지는 않다. 일 년 전만해도 이 지역에 근무하는 한국 친구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르던 산행이었지만 친구가 귀국하고부터 중단한 것이 꽤 오랫동안 쉬는 핑계가 됐다. 요즈음 코로나로 집 콕만 하다 보니 그나마 체력유지에 도움이 되던 산행마저 중단했었다. 3년 전 어렵지 않게 올랐던 신도르산(해발3.150)을 작년 르바란 때 두 번째 오를 때는 산행 중 몸살을 하는 등 체력고갈로 고생을 한적이 있어 낮은 산을 시작으로 체력단련을 하겠다는 의지로 동지가 없었지만 혼자 올랐다.
 
 
 
다행히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새로운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마음 통하면 친구가 되는 성격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친구가 됐다. 정상에서 만난 학생들이 좋아해 젊은 동지가 많다.
가난한 시골 학생들은 차가 없어 베이스캠프까지 오는데도 오토바이에 두 세 명씩 타고 왔다. 오토바이가 없는 친구들은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차를 가진 내가 운전수가 되어 이들을 픽업 하면서 학생들은 몸만 따라 나서면 되는 산행이 되다 보니 발가락에 끼는 즈삣 슬리퍼를 신은 친구, 티셔츠만 입은 친구 등 너도 나도 따라 나섰다. 어쨌든 동지가 많은 산행이 이루어졌다.
 
정상에는 50개 정도의 텐트만 쳐도 설 곳이 없을 정도로 좁지만 다른 산에 비해 많은 사람이 찾는 산이다. 이곳에는 다른 산에 없는 것이 매력이다. 사람들이 안동산을 찾는 건 내가 붙인 한자 이름처럼 힘들지 않고 편안하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한다. 오르기만 편한 게 아니라 정상에 서면 360도 트여 장애물이 없어 시야도 편한 곳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전망대 같이 탁 트인 안동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자바의 고산들만도 8개다. 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간단히 안내한다. 첫째 산으로 정상 앞에 떡 버틴 남동쪽 머르바부산 왼쪽 어깨 뒤에 정답게 빼꼼이 마주한 산이 머라삐 활화산이다. 자바동네에 피어 오르는 굴뚝연기 같고 석기시대 원시인으로 돌아가 돌도끼를 차고 모락모락 불이 피어오르는 분화구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고 보로부두루와 쁘람빠난 사원의 이야기를 몽실몽실 피워내고 있다.
 
 
머리삐산의 누님이라 일컫는 코앞 머르바부산의 오지랍은 넓고 품이 넉넉해 고랭지 채소와 먹거리로 자바를 풍요롭게 하고 많은 문화와 전설을 품고 있는 부자 산이다. 셋째, 동쪽 저 멀리 등대 같은 라우산(3.200)이 멋진 일출을 연출해 낸다. 라우산에는 지하 지상 천상의 세계를 형상화한 거대하고 화려한 쩨또와 수꾸 등 수많은 힌두 사원과 문화 그리고 역사, 녹차밭 등 보고를 가지고 있다. 넷째. 북동쪽에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할 만큼 지근에 높이가 비슷한 뗄레모요(1910)산이 있다. 안동산을 사이에 두고 우리네 나무 꾼과 선녀의 전설을 품고 있는 스까르 랑잇(Sekar langit:하늘의 꽃)이라는 폭포가 있다. 한국의 전설과 스토리가 같지만 설정된 남자 주인공은 나무꾼이 아니라 사냥꾼이고 선녀 또한 쌀 한 톨로 밥을 지으면 가족이 먹고도 남는 매직선녀다. 카메라 앵글을 좌로 돌려 다섯 째, 북쪽 스마랑 방향의 웅아랑산(2,050)을 잡아 줌으로 당기면 웅아랑산 가슴에는 수많은 사연들이 잉태해 있다. 그것도 조선인들의 사연이다. 태평양 전쟁으로 끌려온 13명의 조선 위안부 소녀들이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짓밟히고 처참히 버려진 암바라와 수용소가 있다. 그 중턱에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온 이억관 총령이 수모워노 보병훈련장 취사장에서 항일조직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했던 위대한 역사의 현장이 그것이다.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킨 세열사가 일본군 13명을 사살하고 진압군에 쫓기면서 좌측 대퇴부에 총탄을 맞아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겨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민영학 열사의 수수밭과 의거 동지 손양섭, 노병한 열사 또한 은신의 한계에 다다르자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최후를 맞이한 위생 창고가 자리해 있다. 웅아랑산은 가슴 아린 한인들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일본이 네덜란드요새를 장악했던 거대한 암바라와 성이 있는 곳이다.
 
 
서쪽에는 아름다운 디엥 공원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활화산, 신도르산(3.136)이 지금도 다이너마이트 심지에 불은 붙인 듯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있고 그 좌측에는 해발3,300 거대한 숨빙산이 있다. 디엥 국립공원은 가끔 얼음이 얼정도로 시원하고 사철 꽃이 피고 지며계절과일이 풍족해 살기 좋은 곳이다. 디엥공원과 신도르산 사이에는 고대에 보로부두루의 열배가 넘는 사원과 거대한 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전설의 도시는 불교와 힌두문화가 융성해서 그 시절 바다 건너 세계 각국에서 유생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러 왔을 정도로 유명한 큰 대학이 있었으나 고대 로마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해 명품도시 폼페이가 최후를 맞은 것처럼 신도르 화산의 폭발로 인해 이 도시가 매몰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역사를 인도네시아 공중파 뉴스에서 심심찮게 다루고 있다. 머라삐 화산 폭발로 매몰된 보로부두루 사원이 발굴되었듯 이 역사의 현장도 발견되었고 정부차원에서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족자로 알고 있는 머라삐산도 보요랄리군, 마글랑군, 족자군 등 세군에 걸쳐있고 보로부두루는 족자에서 2시간 거리이며 오히려 살라띠가에서 한 시간 반 거리다. 위키백과에도 소재지는 마글랑 군으로 올바로 표기되어 있다. 마글랑은 지세가 좋은 천혜의 도시이며 보로부두르 사원을 탄생시킨 왕조도 사실은 마글랑의 뚝마스라는 큰 샘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을 필자는 여러 번 탐방했지만 한인들은 거기까지 들어 갈 필요를 아직 못 느낄 뿐이다.
 
참고로 족자의 술탄이나 솔로의 끄라똔 왕조를 탄생시킨 왕의 시조 조꼬 띵끼르도 살라띠가의 순 조요라는 큰 샘에서 태어났다. 자바의 왕조는 대부분 큰샘에서 시작된다. 쉽게 말해 보로부두루 사원의 시작이 뚝마스 큰샘 자리에 있는 왕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발리에서 목격하듯 힌두 종교 의식에는 성수를 뿌리는 의식이 많은데 지금도 힌두교 신년의 큰 절기 녀삐절에는 뚝마스에서 성수를 가져다 인니 전국에 성수로 종교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살라띠가의 순조요 샘이나 뚝마스의 샘 물구멍은 손가락만한 물구멍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직경이 1M를 넘어 큰샘에서 바로 강이 형성된다면 우리의 상식으로 믿지 않겠지만 사실인 걸 어쩌랴. 뚝마스는 현재 마글랑 시 전체의 상수원이고 순조요 살라띠가 전체의 상수원이다. 그것도 40퍼센트 밖에 못 사용한다.
 
두 곳의 시민들은 정수 없이 생수를 마신다. 처음 뚝마스에서 시작한 종교의식이 번창하면서 예배장소를 넓혀 옮긴 것이 보로부두루로 사일렌드 왕국이 건설한 왕궁터와 흔적이 아직도 뚝마스에 있고 갠지스 강의 봄을 노래한 그때의 비문이 산스크리트어의 대형 돌비석으로 아직도 뚝마스에 있다. 마글랑은 자바의 주요한 고도 중 하나로 자바 문화의 중심지이기에 네덜란드의 요새로 사용됐다.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이 접수했고 조선 포로감시원이 문띨란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상당수가 배속되어 한인들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는 곳이다. 안동산 정상에서 보이는 자바 안내를 짧게 말한다는 것이 길어졌다.
 
 
안동산 자체는 작지만 망대처럼 자바의 고산들과 역사를 폭넓게 생각 할 수 있고 자바의 역사를 바로 알아가는 안내소 같은 곳이다. 안동산은 낮고 품이 작아 품은 것도 없어 왜소해 보이지만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한눈에 보여주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작은 거산이다.
 
안동산의 정상은 뭇사람의 정상과 같다. 뭇사람이 정상에 선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삶에 요긴하게 쓰여지는 이런 것이리라. 세상은 높아야 유명해지고 많아야 우상이 되지만 안동산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충실한 뭇사람들이다. 세상이 말하는 높은 정상에 선자들, 잘 나고 많이 가진 자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 가려 못보는 것을 안동산의 초라한 정상이 넓게 보라한다. 확 트인 안동산이 좋다. 안동산에 다시 오르길 잘 했다. 집 콕의 퇴로 없는 번민보다 작지만 탁 트인 안동산이 주는 말없는 교훈에 감사한다.
 
열 번 이상 오른 안동산에서 힐링과 아울러 인생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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