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거대한 질문(3-2) /우지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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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단편소설] 거대한 질문(3-2) /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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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11회 작성일 2024-06-2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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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거대한 질문

우지수 


(전 편에 이어서)


“무슨 일 있나요, 선임님?”

윤영아가 서 있었다.


“눈썹을 찌푸리고 계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는 무슨…. 긴장돼서 그러지, 경매는 처음이라서.”

“걱정하지 마세요, 선임님. 잘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선임님은 잘해 오셨으니까요.” 


‘누가 이렇게 예쁜 말을 가르쳐줬을까? 아니, 입력해 줬을까? 아니, 입력을 결정했을까?’

모빈이 근무 중인 국립 감정연구소는 총 12대의 유사 인간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것들은 주로 업무 보조에 사용되는데, 6대의 로봇형 AI는 회계팀과 감사팀에서 이용 중이고 3대의 휴머노이드는 비서실에 배치되어 있다. 나머지 3대의 휴머노이드가 연구팀 소속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 그렇게 보이는 – 독립변인이자 종속변인이라 할 수 있다.


연구팀 소속의 휴머노이드는 12대의 유사 인간종 중 국제적으로 승인받은 모든 감정 데이터가 입력된 유일한 기계체들이다. 최신 감정이 승인을 받을 때마다 가장 먼저 입력이 되는 것은 물론 승인 전 최종단계에 이른 감정 데이터에 대한 입력 실험이 시행되는 국내 유일한 유사 인간종이기도 하다. 때문에 원격 셧다운과 해킹 방지 시스템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인간들의 최선의 대책인 것이다.


9대의 유사 인간종은 ‘쑤도1(Pseudo-1), 쑤도2’와 같은 시리즈 명으로 불리는 반면 연구팀 소속의 유사 인간종은 인간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업무 보조용 유사 인간종과 달리 연구팀의 유사 인간종은 다양한 감정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들이 베푼 알량한 아량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모빈은 코드명 ‘윤영아’의 책임자이다. 연구원 내 유사 인간종은 모두 한 명의 책임자와 세 명의 부책임자에 의해 관리되며, 매년 정기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책임자와 부책임자가 변경된다. 하지만 연구팀에 소속된 휴머노이드만은 책임자의 변동이 없다. 그러니까 모빈이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윤영아’에게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모빈의 책임이 된다는 뜻이다. 


윤영아가 모빈에게 배치되던 날, 선배들은 축하를 해주었다. 이제 퇴사할 때까지 단 한 건의 연구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윤영아의 행동 보고서만 잘 쓰면 하루 종일 놀고먹어도 된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눈치 빠른 후배 연구원이 유사 인간종 관리 업무를 거부할까봐 늘어놓은 미사여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겨우 사흘째 되던 날 깨달았다. 


출근과 퇴근 때마다 평균 30분이 걸리는 업데이트와 삭제 작업을 해야만 했고, 특히 삭제 작업 이전에 삭제할 데이터를 분석, 분류하는 데 만도 꼬박 두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충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그날 새롭게 생성된 데이터의 삭제는 휴머노이드의 과(過)학습을 방지하고 인간을 해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사전에 차단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만큼 삭제할 데이터를 선별하는 것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물론 이제는 ‘모빈이 반(半) 기계가 됐다’라고 할 정도로 그 시간을 눈에 띄게 단축시켰지만, 남들보다 퇴근 준비가 오래 걸리는 것만은 여전하다. 


하긴 이런 일들은 한 손으로 칫솔질하며 다른 한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는 정도의 난이도에 불과하다. 모빈이 진짜 책임져야 하는 업무는 따로 있었다. 윤영아가 인간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최대한 인간에 가깝게 되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다.


처음의 윤영아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감사의 네 가지 감정만 입력된 상태였다. 그녀는 선배들의 자질구레한 심부름에도 미소를 지었고, 사소한 일에도 감사를 표했다. 물론 자신이 왜 기쁜지, 왜 행복한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미소를 짓는 것으로 입력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쁨이나 행복을 미소로 표현하는 것과 슬픔을 눈물로 표현하는 것은 상황이 달랐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정상적인 인간답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은 눈썹을 찡그리거나, 아랫입술을 깨물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4, 5초 정도 먼 산을 바라보거나, 어색한 미소를 짓는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표현을 입력해 두었다. 


인간은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보여주는 일에는 망설이지 않지만 슬픔을 드러내는 일에는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따라서 인간이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은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보다 훨씬 다양하다. 윤영아를 비롯한 연구팀 휴머노이드들은 이러한 인간의 방식을 취하도록 입력되어 있었다. 그것은 윤영아가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모르는 타인으로 하여금 충분히 인간처럼 보이도록 해주었다. 


유사 인간종에 대한 슬픈 감정의 적용이 처음 논의될 때, 일부에서는 ‘크라잉 로봇(Crying Robot)’이라는 이름의 눈물 흘리는 로봇 사진이 떠돌았었다. “우느라 일할 수가 없다”라는 문구는 기쁨 감정의 상용화를 논의할 때 유행했던 “웃느라 일할 수가 없다”라는 문구보다 더 큰 조롱이었다. 그들은 감정 데이터를 입력한 유사 인간종의 개발과 출현 자체를 거부하는 집단들이었으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가 아닌 ‘노동력’임을 강조하는 이들이었다. 여론은 그들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감정을 가진 로봇은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무기에 불과할 거라는 두려움에 잠식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일차원적 수준의 로봇이 상용화될 때도 여론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이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인간들은 노동시장에서 영원히 퇴출당할 것이라고. 그러나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인간은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러셀과 같은 학자들의 주장이 팽배해지면서 여론은 다시 오래된 집의 한쪽 구석 먼짓덩어리처럼 둘둘 뭉쳐서 반대쪽으로 굴러갔다. 그 여론은 AI 로봇과 휴머노이드가 등장하자 또다시 몰려나왔다. 이제 인간은 감정을 가진 비생물체에 의해 통제당하고 말 것이라고. 그러나 의료분야에서의 제한적인 사용과 추후 단계적 상용화로 결정되자 여론은 비누 거품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후로 매번 금방 딴 콜라병의 탄산가스처럼 마구잡이로 터지다 이내 사그라들던 여론은 슬픔과 결핍, 불만족과 같은 부정적 감정의 상용화 논의에는 무감각할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다투고 고심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여론의 무관심 덕분에 윤영아는 양보와 배려 감정 데이터 외에도 슬픔과 결핍 감정 데이터를 적용할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있어요, 선임님.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배신 감정’ 말이에요. 제가 배신 감정을 입력하게 되면, 저도 선임님을 배신할 수 있게 되겠죠?”

“그건 영아 씨의 선택이겠지만, 가능해지겠지.”

“그런데 왜 배신 감정을 상용화하려는 건가요? 배신은 슬픔, 감정이나 결핍 감정과는 달라요. 인간은 기계들의 배신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나요? 유사 인간종에게 배신 감정을 입력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기계체들의 손에 레이저 건을 쥐여주는 것과 같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어색한 미소를 짓는 모빈의 표정을 윤영아는 금방 읽어냈다.


“선임님은 배신 감정의 상용화를 원하지 않으시죠?”

“응.”

“그런데 왜 끝까지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연인 사이의 배신은 사랑을, 친구 사이의 배신은 우정을, 비즈니스 관계 사이의 배신은 약속을 깨뜨리는 거야.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국 배신은 말 그대로 신뢰를 저버린다는 뜻이야.”

“그 말씀은 유사 인간종들이 ‘신뢰 감정’을 완벽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대개념인 배신 감정의 인식이 필수가 된다는 거군요.”

“그렇지. 게다가 배신은 독립된 감정이 아니야. 슬픔, 분노, 불만족, 결핍 등 후속 감정들을 반드시 수반하고 있어서 꾸준히 논의되고 있고, 언젠가 허용될 부정적 감정들과는 불가분의 관계인 거지.”

“제가 선임님을 배신할 수도 있을까요?”


두 번째 하는 질문이지만 윤영아는 뜸을 들이지 않고 말했다. 인간 윤영아였다면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몇 초의 시간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영아 씨의 선택이야. 영아 씨는 자율 감정 발현 기능이 허락된 휴머노이드니까. 다만 우리 인간들은 영아 씨의 선택을 믿을 뿐이야. 누구보다 내가 영아 씨를 믿어.”


‘기계를 믿는다니!’

저절로 튀어나온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빈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제가 새로운 감정 데이터를 얻게 된다면, 저에게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 감정의 발현이 작동할 수 있어요. 또한 불만족과 결핍 감정의 레벨이 일시적으로 낮아질 수 있고요.”

“그래, 새로운 감정을 얻는다는 것은 영아 씨를 더욱 충만하게 만드는 일이니까.”

“충만은 어떤 감정인가요?”

“채워지는 것. 결핍을 메우는 것.”

“저에게는 결핍 감정 데이터만 있어요. 만족 감정 데이터는 없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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