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3.1절 백주년 기획특집-아베마리아(Ave Maria, Hail Mary) -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 이영미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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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44) 3.1절 백주년 기획특집-아베마리아(Ave Maria, Hail Mary) -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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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193회 작성일 2019-02-2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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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44>  
3.1절 백주년 기획특집
 
아베마리아(Ave Maria, Hail Mary)
-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
           
이영미 / 수필가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탕탕탕”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권총 세 발을 명중시키고 그 자리에서 만세를 부르다 체포된 사나이 안중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러져간 많은 민족 열사 중에 유독 안중근이라는 이름 석 자가 후세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와 주고 받은 옥중 편지 때문일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체포 직후 뤼순 감옥으로 옮겨져 재판을 받았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밸런타인데이로 알려진 날을 이제는 다른 의미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약 5주 뒤, 31살의 나이로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당했을 때 누구보다 슬퍼한 것은 그의 어머니일 것이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사형 판결을 받은 후 그의 어머니가 보낸 편지를 보면 잠시 머리가 차가워진다. 다음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의 전문이다.
 
'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안중근 의사도 사행 집행 전에 답장 겸 유서를 써 보냈다.
 
'불초한 자식은 감히 한 말씀을 어머님 전에 올리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자식의 막심한 불효와 아침저녁 문안 인사 못 드림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감정에 이기지 못하시고 이 불초자를 너무나 생각해주시니 훗날 영원의 천당에서 만나 뵈올 것을 바라오며 또 기도하옵니다. 이 현세(現世)의 일이야말로 모두 주님의 명령에 달려 있으니 마음을 편안히 하옵기를 천만번 바라올 뿐입니다.
분도(안중근 의사의 장남)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시길 희망하오며, 후일에도 잊지 마시옵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주십시오. 이상이 대요(大要)이며, 그밖에도 드릴 말씀은 허다하오나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온 뒤 누누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아래 여러분께 문안도 드리지 못하오니, 반드시 꼭 주교님을 전심으로 신앙하시어 후일 천당에서 기쁘게 만나 뵈옵겠다고 전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일은 정근과 공근에게 들어주시옵고 배려를 거두시고 마음 편안히 지내시옵소서.'
- 아들 도마(안중근 의사 천주교 세례명) 올림
 
조마리아 여사의 글 중 숨을 참게 만든 세 가지 문구가 있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라 바로 그것이다. 
다음 생애에 만나자는 한 맺힌 약속이 아닌, 당신보다 나은 어미의 자식으로 태어나라는 말을 하는 그녀의 심정이 찌릿하게 감정이입이 된 이유다. 자식이 죽어서 입을 옷을 지으며, 죽음을 부끄러워 말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말하는 어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한걸음 앞당긴 안중근 의사는 독일무이한 성인(聖人)이다. 그의 뒤에는 위대한 위인의 인생을 한 땀 한 땀 수놓은 성모(聖母)인 어머니가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도 이제 열두 살, 사춘기 초입의 딸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민족 열사도 아니고, 나 또한 대의를 위해 자식을 바치기는커녕 소소한 이득조차 포기하지 못하는 보통내기 주부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나는 어린 딸에게 저 글귀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단 말인가!

“으이구, 내가 너 때문에 죽겠다.”
“나는 다른 부모처럼 해달라는 거 다 못 해주니 금수저 부모 찾아가거라.”
“우리는 성격이 참 안 맞는다. 다음 세상에서는 선량한 엄마의 딸로 이 세상에 나오너라.”
딸애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악담을 입버릇처럼 늘어놓았다.
물론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은 조마리아 여사처럼 구곡간장(九曲肝腸)이 촌촌이 끊어지는 심정으로 한 말도 아니다. 습관적인 언어의 폭력일 뿐이다. 아이를 낳고 철이 들기는커녕 한참 어린 딸에게 비수를 꽂는 애어른에 불과했건만......
 
나도 한번 이 귀한 지면을 빌어 내 딸아이에게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으로 편지를 써보고 싶다.
 
나의 딸아, 
네가 어렸을 적부터 이 엄마가 수없이 반복한 말이 있다. 
“지금 배움에 힘쓰느라 고된 것보다 더 안쓰러운 것은 배움을 게을리 해서 뭇사람들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지금 네가 겪는 배움의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이다. 그 고통을 피해서 가거나 게을리 한 사람은 언젠가 후회하게 되어있다. 배움을 게을리 하여 후회의 삶을 사는 엄마를 보렴. 나는 서울로 학교를 보내지 못한 가난한 내 부모만 탓했지,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하여 다른 길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여러 가지 도전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학교 과제도 많은 너에게 시간을 쪼개서 글을 써보라고 권하는 엄마가 원망스럽지? 하지만 나는 믿는다. 방울방울 떨어진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을, 기억하거라, 소질은 계발하지 않으면 꺼지는 불씨와 같다. 엄마는 한때 24시간 너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 너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니 그것은 지나친 애착이었고 나의 한계에 대한 변명이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걸음이 느린 너에게 전력 질주하라고 채찍질을 해대는 모진 엄마구나. 엄마가 가진 것이 튼튼한 두 다리뿐이어서 남들보다 빨리 뛰는 것이 나의 생존법이라 믿었다. 이제 좀 천천히 가도록 노력하마. 아직 여물지 않은 다리로 헐떡이며 뛰어온 네가 대견하다.
 
사랑하는 딸아, 
너를 위해서 이 엄마는 느리게 걷는 법을 배우려 한다. 채찍을 꺾고 아삭거리는 당근을 준비하련다. 너는 어리둥절하여 불안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나는 길섶에 핀 하얀 들꽃을 꺾어 네 코에 대어줄 것이다. 네 머리 위에서 너를 내려다보며 힘들게 했으니 다음 세상에는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걷는 친구로 만나자.
 
아직 사춘기 밖에 안 된 나의 딸이지만 이 편지를 읽고 조 마리아여사처럼 엄마의 애뜻한 모정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3.1절 독립운동 백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 3월, 이 뜻깊은 해에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건재할 수 있도록 훌륭한 독립투사들을 키워낸 이 땅의 위대한 어머니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의 절을 올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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