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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53)그 낮선 느낌들의 정체 /김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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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105회 작성일 2019-05-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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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53 >
                                 그 낮선 느낌들의 정체                                          
                   
김준규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운영위원
 
 
가경을 꿈꾸던 설렘은 오만이었다. 후끈하고 밀치는 열기와 솜사탕 엉기듯 온몸을 끈적하게 에워싸며 다가오는 낮선 느낌들! 후각을 자극하는 누릿하고 음산한 기운의 정체는 무엇일까? 불현듯 영화의 기억이 떠오른다. 영혼에 오색 분칠을 해대는 인도의 홀리 축제, 시신을 태워 영혼을 날려 보낸다는 갠지스 강가의 뿌연 연기의 모습도 떠오른다. 놀라움에 참새의 가슴처럼 작아진 낮선 자의 입경, 거대한 섬나라 적도의 텃세는 그렇게 부라리는 사천왕의 눈빛처럼 처음부터 두려움으로 다가 왔다. 
 
80년대 문명이 소외된 서부 순다 지방의 어느 시골 마을 이었다. 살벌한 태양 빛에 뭇 매를 맞아 숨을 할딱이는 숲 속에 사람들의 체구는 왜소하며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깡마르고 구리 빛에 질퍽대는 시골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다운 씽콩에 삼발 뜨라시(일종의 마른 젓갈)를 반찬삼아 푸실 푸실한 밥알을 세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입안으로 몰아넣으면서도 환하게 웃는다. 꿈은 전제되지 않고 생명 유지는 소박한 사랑과 생식을 위한 작은 도구 일뿐 욕심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원시의 모습으로 열대의 일상은 머물러 있었다.
 
대낮의 살을 찌르는 더위를 피하여 망고 나무 그늘과 바나나 밭을 돌아다니며 띄엄띄엄 숨어있는 그들의 삶과 조우한다. 낮은 지붕은 엉성한 기왓장으로 겨우 비를 피할 정도이고 담벼락은 대나무를 쪼개어 발을 엮듯이 막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안쪽을 차단할 정도이고 부엌은 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익히느라 그을림으로 침침하다. 씩 웃으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는 촌민들,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절 내 어릴 적 모습이 거기 서 있었다.
 
온종일 허름한 와룽(구멍가게)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하고 숲속에 어둠이 잦아들면 벌레처럼 기어 나와 불빛의 유혹에 이끌려 유흥장을 찾아 나선다. 차이퐁안 공연이 열린다고 온 동네가 야단법석이다. 바나나 밭에서 불을 본 날 개미들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고 공연장으로 가는 길가엔 페트로막(석유등)을 환 하게 밝힌 행상들이 줄지어 서서 모여드는 군중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밤이란 그들에게 소낙비 같은 천국 이었다. 활동을 옥죄는 더위의 사슬에서 끙끙 앓다가 도망쳐 나온 무리들이 산처럼 무대를 에워싸고 공연장엔 누릿한 담배 연기와 땀 냄새가 진동한다. 
 
 
숲속의 적막함을 지키던 별빛은 애당초 혼비백산하여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우뢰와 같은 타악기의 전주곡이 질풍처럼 조용하던 숲 속의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간 뒤 절두된 듯 한 까만 얼굴이 무더기로 쌓이고 동공들은 어군처럼 가로 세로 움직이며 반짝인다. 악사가 막대기를 번쩍 쳐들자 봉고의(장고의 일종)입이 열리고 둔탁하게 부르짖는 소리!

뚜루루루 뚝딱  쿵딱딱 쿵딱딱 쿵쿵딱딱 쿵딱딱!
 
누군가의 출연을 예감하는 징소리가 울리자 전통복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무희들이 하나, 둘, 손을 합장하며 등장한다. 어떤 흠결도 블랙 홀처럼 삼켜 버릴 듯이 유효한  젊은 것들의 질리지 않는 몸짓! 얼굴이 작게 보이는 왕비 머리, 반쯤 열린 가슴에 터질듯한 초록빛 저고리 바틱 천을 둘둘 말아 인어처럼 잘룩한 허리, 휘젓는 양팔의 끝에서 하얀 손가락은 해파리처럼 하늘거리고 풍만한 엉덩이는 실룩실룩, 앞으로 뒤로 옆으로 격렬하게 떨며 원초적 본능을 흉내 내다가 얼굴은 갸우뚱 지우뚱 이쪽, 저쪽을 번갈아 바라본다. 휘익! 암 컷이 흘린 시그널에 안달이 난 수컷들이 내 지르는 괴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축제의 불길은 무대에서 객석으로 옮겨 붙어 모닥불처럼 타 오른다. 담배를 입에 물고 꼬깃 돈을 꺼내든 사내들이 다짜고짜 무희에게 달려들어 배배 꼬는 허리에 들이 댄다.

중년의 사내부터 어린 아이들 까지 모두 어우러지는 춤의 도가니, 목이 터지라고 흥을 부추기는 악사들의 추임새, 흥건히 젖은 땀과 누릿한 담배 냄새의 향연, 캄캄한 숲속의 적막을 가르며 봉고 소리는 동이 트는 새벽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그칠 줄 모르는 열대의 낭만과 정체를 알 수 없던 누릿하고 음산한 적도의 정체모를 향기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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