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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55) 자바어린이들의 난장(亂場)판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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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598회 작성일 2019-05-16 13:55

본문

< 수필산책 55 >
 
자바어린이들의 난장(亂場)판
 
이태복/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부회장
 
 
자바의 살라띠가 사산자바문화연구원에는 종종 동네 개구장이들이 놀러와서 원장 몰래 메기와 비단 잉어를 키우는 조그마한 연못에 물고기 서리를 한다. 발동이 걸리면 아예 홀라당 벗고 멱까지 감으며 구정물을 만든다. 연못인지 수영장인지 아수라장일 때가 있다. 공연장 악기들을 멋대로 두들겨 고장 내기도 하고 정원을 뛰어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어린시절 추억이 그리워 방관하며 대리 만족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녀석들의 장난기는 귀가 시간도 잊어 해가 지면 부모님이 찾으러 와 데려가기 일쑤다. 자바의 엄마들은 매라는 것이 없어서 다행이지 우리네 어린시절 같았으면 팬티가 벗겨지고 원숭이 궁뎅이처럼 빨갛게 실컷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이번 5월 5일 어린이날은 주일이었다. 교회에서는 어린이 주일로 보내고 선물도 준비했다. 어린이가 좋아하는 건 역시 선물이었다. 목사님의 넓은 마음으로 어린이 주일에는 선물만 나눠주고 주일학교 행사도 없었다. 어린이에게 중요한 건 선물과 함께 자유다. 어린이를 위해 잔치를 열어 행사를 하는건 어린이에게 오히려 자유의 시간을 뺏는 것이다.
 
선물과 자유를 세상에 누가 싫어하는 이가 있을까? 우리네 어린시절에는 어린이날이라 해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어린이날 노래만 목청껏 불렀지 그시절엔 ‘우리들 세상’이라는 그 한 소절로도 만족했다. 목사님은 하늘 나라를 어린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예수의 어린이 사랑 설교가 협박성 같아 조금 거부감이 있었다. 전에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간다 했는데 또 조건이 더 붙는구나 부담이 느는 것 같지만 아이들에 대한 귀한 깨달음에 소생되는 영혼의 기쁨이 더 크다. 어른과 어린이는 무엇이 다를까? 어린이와 어른이 다른 것은 어른들은 일에 몰두하지만 어린이는 장난을 좋아한다.장난의 원어는 작난(作亂)이다. 난(亂)을 만드는 아이들 생각해 볼만한 묵상이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어른들의 일과 아이들의 장난이었다. 어른들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모태 교육으로 태어나서 가정교육, 학교교육, 학원교육 등 평생 살아가며 교육을 받고 그 교육의 지식과 경험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일을 하고 그 댓가로 다시 가정과 사회 국가를 위하여 어른들은 일을 한다.
역학적으로 일은 힘 곱하기 거리다. 즉 "일=힘×거리"다. 세상은 때로 역학적 일을 하므로 대가가 지불되어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행복을 얻고자 한다. 블루칼라의 노동 뿐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일도 그렇다. 이렇게 우리는 가정과 사회를 위해 에너지를 써서 일의 경쟁에 몰두하고 더 잘되기 위해 시기하고 이겨야하는 어른들을 보고 예수께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했다.
 
 
어릴때 우리 친구들은 참외 서리 벼 낟가리에 불지르기, 심지어 선생님 가슴 만지기 닭 훔쳐 구워먹기 등 그시절 나쁜 짓이라고 한 것이 지금 돌아보면 장난기였다. 어린시절 일찍 어른노릇 해 본다고 담배를 피우다가 걸려 정학을 당한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어릴때 학교 옆에 자취하는 여선생님이 퇴근전 저녁 준비를 위해 쌀을 물에 불리도록 시키면 떡이 먹고 싶어 필요 이상 쌀을 불려 난감해 할땐 떡을 하라고 킬킬대며 알려주고 함께 먹으며 사랑도 받았고 그 외에 숱한 장난을 했다. 친구들은 교실문 입구에 백묵 지우개를 끼워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 오시다 분필가루 세례를 받게 하는 등 짓궂은 장난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면서 우리들은 자랐고 유독 장난 많고 개구졌던 친구들이 어른이 되어 기업의 회장이 되고 박사가 되는 등 여러 분야에 성공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그때 추억을 더듬으며 은혜를 알고 추억으로 회포를 풀며 은사들을 잘 모셨다. 직업은 교육으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에 일로 인한 스트레스 상처 등 지옥같은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얽매인 일에 자유를 뺏기기도 했다. 나는 20대 중반 바보같다는 얘기를 들으며 포스코를 뛰쳐나와 구두닦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자유업을 택하며 건축업도 하고 인니 top 가수를 초청해 공연도 하다가 실패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지만 영혼이 누구보다 자유를 누렸기에 남들은 미쳤다고 해도 나는 후회없는 삶이었고 행복했다.
 
우리가 더 어릴 때는 소꿉놀이를 했다. 사금파리와 기왓장 조각의 식기에 꽃잎과 풀을 뜯어 가상 음식과 술을 만들고 너는 엄마, 나는 아빠 성장한 어른이 되어 행복한 엄마 아빠를 연기하는 소꿉장난을 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어린 우리들에게 비친 엄마 아빠의 가정이야기를 그려냈고 이루고 싶은 가정을 소꿉장난을 통해 연기해 냈다.오히려 어른이 되어 엄마 아빠가 되어서는 지지고 볶고 싸워도 어린시절 소꿉장난의 시뮬레이션은 행복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 시절 소꿉장난은 들에 나갔다 돌아온 아빠에게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이며 용기를 주었고 때론 빈 소주병을 들고 흥청거리며 취한 아빠가 되어 주정도 부리고 낙심하면 아내는 별거 아니라고 다독여도 주며 위로해 주었다. 소꿉장난은 불행이 없었고 서로 걱정하며 사랑만 할줄 아는 내용들 뿐이었다. 15년 전인가 땅그랑에서 본 우리네 조카뻘의 소꿉장난은 달랐다. 행복은 같았지만 세대차이로 품격이 달랐다. 민욱이라는 한 남자 아이가 아빠였다. "나는 커서 내 아내 주영이에게 벤츠차를 사줄거야 맞지? "당찬 사내 아이가 엄마역의 여자아이에게 말하자. "응 고마워. 자기 사랑해!" 우리 자식들의 세대를 대변하는 아이들의 꿈을 소꿉장난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자식들의 아이들 그다음 세대들의 꿈을 보는 것이다.
 
 
요즈음 어린이들의 소꿉장난을 상상해 본다. 바비 인형집과 토이점에서 현대판 주방기구와 장난감 스마트폰, 가짜 돈 등의 소꿉놀이 기구를 사다가 엄마는 햄버거와 피자를 사다 놓고 골프내기에서 돈 잃고 오는 아빠를 위로하는 핸드폰 문자를 날리고 그도 안되면 전화하는 대역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아름다운 가정을 꿈꾸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이렇듯 아이들이 희망하는 행복은 소꿉장난이라는 장난을 통해 바라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 내지만 싸움으로 파탄 내는 비극의 소꿉장난을 본 적이 없다.
 
어린아이 비유는 어른들이 직장과 사회에서 일을 하면서도 권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에게 줄서서 아부하고 경쟁하는 속물들을 깨워주고 꼬집어 주는 교훈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었다. 예수께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여행 중​에 사도​들​이 서로 다투었던 것을 알았기에 예수​께서는 여행​이 끝난 후 그​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다투었냐?’고 물었다. 사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무슨 문제​로 다투었는지 알고 있었다. 사도​들​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길​에서 자기​들 중​에 누가 가장 큰가 하는 문제​로 다투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도​들​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예수께서 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깨우쳐 주기 위해 어린아이를 불러서 그​들 앞​에 세웠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르쳤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를 사랑하셨다. 어린이는 순수한 꿈이 있다.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 아이들은 선물을 받고 좋아했다. 설교에는 관심없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저희 좋아하는 장난교회가 난장판이었다. 20대 초반 철없던 내가 애를 낳았으니 애가 애를 키운 것이다. 그때 같았으면 연구원 장난꾸러기들을 한바탕 혼냈을 거라 생각하니 내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반성하게 된다. 설교 말씀에 감동받고 보니 아이들의 난장판은 지극히 정상적이었고 창조적이다.

인도네시아어의 소꿉장난은 빠사란(pasaran)이라는 시장놀이의 뜻이므로 어린이들의 놀이는 단어적 의미도 시장같이 다양한 난장(亂場)판이다. 어린이날을 맞이하 여교육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교과서적 어른들의 일과 자신들이 즐거워 자유분방하게 노는 아이들의 시뮬레이션 장난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 더 크게 보면 아이들의 장난(作亂)의 작(作)이라는 뜻에는 자유로운 생각 속에 창작(創作)의 의미인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판을 벌인다는 뜻도 내재해 있음을 알수있다. 어린이는 미래이며 꿈이다. 그러기에 어린이들이 순수하게 자라야 하고 때묻지 말아야 한다.
 
 
순수의 상징인 어린이들에게 가공된 사상과 이념이 섞여도 안된다. 문득 5월의 어린이날을 맞이해 앵무새처럼 길들여진 북한 어린이가 생각남은 왜일까?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어린이는 약함이 아니고 창조와 자유다. 어린이의 마음을 배우기를 원했다. 어린아이​들​은 큰 사람​이 되는데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이익보다 소꿉장난처럼 창조적 질서의 자유 분방을 좋아한다. 대통령과 재벌과 자기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들 중 아이들은 누구에게 갈까?오늘의 세상은 큰 것과 높은 것에 관심이 많고 대우받고 평가받는 것에 줄 서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린이날을 맞이해 어린이가 순수하게 자라고 장난을 통해 자유로운 아이들에게 배우며 우리의 어린이들이 경쟁보다 서로 협력하여 꿈을 키워 가는 장을 열어 주고 혼탁한 이 시대에 어른들은 교과서적 관념을 내려 놓고 한발 뒤로 물러서 또 다른 창작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영혼이 자유롭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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