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얀 들창코전현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3부]가을이 지나고, 겨울바람이 봄바람으로 자랐다가 사그라들기를 두어 번, 다시 봄이었다.“아니, 유미 씨, 이거 바꿔. 입사한 지가 언젠데 이걸 이렇게 하니? 유미 씨, 내가 한 말 이해를 못 하는 거야?”“후-.”한바탕 깨지고 나온 나는 화장실 거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식
수필산책
2024-12-22
나의 하얀 들창코전현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2부]그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이미 고모부의 질문 세례에서 벗어난 지 한참 뒤였다. 어린 시절이 지나가자 나는 고모부와 대화할 겨를도 없었다.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느라 마주칠 일도 흔치 않았다. 그런데도 왜 그런 말에 흔들렸을까?코가 예쁘다는 말에 그에게 반해 연애를 시작했다. 그가 정확히 그렇게 말한 것은
2024-12-15
나의 하얀 들창코 전현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1부속도가 잦아들고 낯익은 배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창을 조금 내리자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차가웠던 에어컨 바람 위에 육중한 바람이 이불처럼 덮여 살며시 눈을 감았다. 매미가 소란스럽게 여름을 고하고, 이름 모를 새가 ‘삑삑’ 아기 걸음마 신발 같은 소리로 울었다. 나뭇가지
2024-12-08
인도네시아의 식량과 에너지 안보는 프라보워 대통령의 손에 달렸다한상재/농업전문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누구나 인도네시아는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그것이 기적이 아니고 뭐냐?” 라는 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일부 지식인들은
2024-12-01
펜을 들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최하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설마 글을 읽고 쓰는 일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나의 중추신경계를 이토록 자극하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불혹이 넘은 나는 개인적인 삶은 잠시 내려두고 가정에 내 안의 에너지를 쏟고 있었고, 내 이름이 불린 것은 아득히도 먼 시간이 지난 후였으니까.엄마라는 이름으로 지낸 나의 시
2024-07-13
오늘도, 엄마는조은아(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전봇대처럼 서 있기만 해도 쪼르르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른다. 낮 기온 삼십이도. 체감온도 삼십구도. 도로에 뿌리 박고 있는 시멘트 기둥이 새삼 기특한 이곳은 일 년 내내 뜨거운 적도의 땅이다. 한국기업에서 받은 새해 달력에는 현지 공휴일과 한국 공휴일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설이 오 일 앞으로 다가왔다.“간단히
2024-07-07
[제6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거대한 질문우지수 (전 편에 이어서)그것이 이번 경매가 추진된 이유였다. 유사 인간종들에게는 만족 감정은 없고, 결핍과 불만족 감정만 제한적으로 입력돼 있다. 따라서 인간이 먼저 부정적 감정을 제한적이나마 입력하지 않으면 언젠가 유사 인간종 스스로 필요한 감정들을 무작위로 입력하고 학습하게
2024-06-30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작] 초상, 제주김동환1.섬 동백이 쓰리도록 붉은 이유는무자년* 바람이 건천乾川에 흐름이라.태왁*을 어깨에 인 늙은 해녀고향으로 고향으로 몸을 뻗어보지만,긴 세월 지켜선 한라의 삼백 오름은끝내 굽은 허리를 놓아주지 않고.진바다 향해 터트린 눈물 같은 꽃잎건천에 달리는 테우*는 구슬프게 만선이라.2.만선의 깃발을 잃어버린 여정에
2024-06-29
[제6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거대한 질문우지수 (전 편에 이어서)“무슨 일 있나요, 선임님?”윤영아가 서 있었다.“눈썹을 찌푸리고 계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문제는 무슨…. 긴장돼서 그러지, 경매는 처음이라서.”“걱정하지 마세요, 선임님. 잘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선임님은 잘해 오셨으니까요.”&
2024-06-22
<북 리뷰>「화씨 451」, 의미의 발생황영은(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레이 브래드비리의 소설 「화씨451」. 불의 온도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았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보면 책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고뇌하는 이들, 책과 함께 했던 지난 시대를 다시금 복구해 내려는 그들의 어떤 시도를 그려내는 내용이다. 책이란 마음의 양식이며 내면의 변화
2024-06-15
[제6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거대한 질문우지수 <경력>-수상:한인니문화연구원 <제11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2021-번역 출간도서 : 『인간 커뮤니케이션, 비서구적 관점』 김민선 저 / 범기수, 박기순, 우지수 공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8<당선 소감>이 글을 쓸 때쯤
2024-06-09
운명의 장난- 복숭아와 나한지영(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나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다. 보통 복숭아 알레르기라고 하면 복숭아 껍질에 있는 까슬까슬한 잔털에 의해서 피부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의 경우 털에 대한 알레르기에, 과육을 입술에 닿게 먹으면 입술이 붓는 특이 증상까지 더해진 경우였다. 문제는 이런 알레르기가 있음에도
2023-12-05
내려놓음 (전편) 김형석(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원)2013년 12월 엄청 춥던 날 인천공항을 막 빠져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머릿속까지 전달된다. 연말이라 그런지 공항 터미널 주변 여행객 옷차림이 내 눈에는 다들 살찐 곰처럼 보였다. 나는 7시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 있다가 갑자기 겨울로
2023-10-11
거울 앞에서김형석(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나이가 불혹(40세)이면 자신의 얼굴과 행동에 책임질 나이라고 여러 문헌이나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된다. 한 예로 미국의 대통령 링컨은 친구 추천으로 면접 온 사람을 얼굴만 보고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렇듯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얼굴을 통해 됨됨이를 들여다본 것이다. 그래서 항상 맑고 깨끗하
2023-09-29
<적도 문학상〉시상식에서 네 이름을 적어 보라며최하진(한국문협 인도네시아지부 회원)나는 시상식에 간다. 문인들의 곁으로 간다. 로망이었던 신선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수상 결과가 나온 뒤 두 달여 동안 나는 매일이 설레었다. 설마 그 일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나의 중추신경계를 이토록 자극하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불혹이 넘
2023-09-08
한국작가회의 대구경북지부 암바라와 답사 이태복(사산자바문화연구원 원장, 시인)8월 16일부터 21일까지 대경작가회의 회원작가 13명이 암바라와 위안부 수용소와 <고려독립청년당> 창단의 현장인 수모워노와 민영학, 손양섭, 노병한 열사의 의거 현장인 일본군 제2분견소 암바라와 성요셉 성당과 민영학 열사가 의거를 일으키고 총탄을 맞
2023-08-22
기다림의 끝Bunga Shafa Aziizah그렇게 밖에 신뢰를 못 줬다고?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던지 김도권은 귀가하는 내내 핸들을 끊임없이 때렸고 또 때렸다. 자기도 그걸 아는지 불안정한 그의 운전을 멈출 생각으로 도로 한복판에 주의를 보면서 차를 근방 편의점에 세웠다.새벽 2시 23분. 그는 차에서 내려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 안에 졸고 있던 알바생이 종
2023-08-05
승리의 도시, 자야카르타최하진탁 트인 공터를 둘러싸고 새까만 대포가 눈을 거스른다. 선글라스를 끼고 발걸음이 가벼운 낯선 사람들이 지나쳐간다. 따가운 햇볕은 나의 인내심과 줄다리기를 하고, 체면 따위는 접어두고 더위를 피할 곳을 찾는다. 털그덕 털그덕 더위에 지친 말이 꼬리를 힘없이 흔든다. 터벅터벅 걷는 것인지 뛰는 것인지 모를 발걸음에 나도 모
2023-07-21
빈 상자김형석우리는 저마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인연의 연속에서 살아간다. 인연이란 인간관계 말고도 포괄적 의미에서 사물뿐 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 언급하려는 것은 살면서 어떠한 물건에 대하여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그것들은 각자의 취향이나 기호에 따라 부담 없는 것부터 값이 나가는 것까지 매우
2023-07-15
나의 아저씨, 나의 기사님, 나의 고젝양범은핸드폰의 액정이 8시 39분을 가리킨다. 로비에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며, 구글 지도앱을 켠다. 액정에 나타난 예상시간 48분, 출근시간과 겹친 도로는 마치 붉은 정맥 같은 길을 눈앞에 펼쳐 보여준다. 예상했던 시간과 무려 30여분이나 차이가 난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카르타의 교통체증 때문이다.‘오늘이 짝수 날이라
2023-07-10
에바, 애바. 황영은호텔 관리인인 듯한 사내는 호텔을 관통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산으로 향하는 문이 나온다고 안내해줬다. 하루 식비로 부족하지 않을 뒷돈을 받은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몇 주 전,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의 말에 따르면 호텔 관리인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돈을 좀 쥐어주면 호텔 입구로 출입할 수 있게 해
2023-07-06
PANDEMIC 터널을 지나온 우리한지영지난 3년간 우리는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감염병의 공포를 실감하며 살아왔습니다. 비단, 저만 느꼈던 것은 아니겠지만, 메르스나 사스가 발생했던 과거 시절에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의 공포를 실감했고 일상의 상실을 경험했던 3년간의 팬데믹이었습니다. 처음 우한 폐렴이라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던 20
2023-07-05
계절의 여왕, 5월장소연이렇게 5월이 오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을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그 결과로서 세상에 나왔을 나의 생일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봄의 계절이 어렸을 적의 나의 생일은 어린이날과 내 생일 하루 전에 있는 큰아버지의 생신 날 사이에 껴있는 덕분에 따로 생일상도 선물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어린이 날
2023-07-01
작고 어린, 곤졸조은아1.새소리가 시끄러웠다. 짹짹 짹 짹짹짹 짹- 유일하게 소리만 들어도 알만한 놈들이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새끼손톱만 한 부리를 가진 갈색의 새. 밤새 목을 아낀 탓인지 아침의 참새 소리는 더 높고 짱짱했다. 유나는 잠에서 깨며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막이 그 작은 부리에 쪼아지는 듯했다. “아 시끄러…….”&n
2023-06-28
끝이 아니었다양경실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책상 앞에 책을 펼쳐 두고는, ‘이 지긋지긋한 공부는 언제 끝나지?’ ‘얼마나 커야지 공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고민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었던 건데,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두 배는 더 살았는데, 과연 공부
2023-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