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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07) ‘찔라짭(Cilacap)’에서 생긴일 / 이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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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22,441회 작성일 2022-04-22 10:55

본문

<수필산책 207>
 
‘찔라짭(Cilacap)’에서 생긴일
 
이태복 /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평소 사람을 좋아해 한국인 현지인 가리지 않고 만나는 걸 즐겼던 내게 팬데믹이 시작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과의 거리를 멀게 해 지옥 같은 세월로 기억될 것 같다. 사산자바문화연구원을 개원해 놓고 돈벌이 보다 내가 좋아 하는 것만 하고 내 위주로 사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한량이라 했지만 그 소리가 싫지는 않았다. 영혼이 자유롭다고나 할까. 나는 이곳의 문화 탐방과 연구에 재미를 들였다. 인도네시아 한인 진출사의 살아있는 역사현장인 '고려독립청년당'의 조직 혈맹처인 수모워노 취사장 '암바라와 의거'의 세 열사가 장렬하게 죽은 기념비적 현장인 붉은 옥수수 밭, 그리고 위생 창고가 지척에 있어 인도네시아 한인 최초로 재발견하고 알리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연구와 탐방이 이어지고 인도네시아에 끌려온 조선 위안부가 23명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을 그보다 더 많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마지막 위안부를 만나는 인연까지 갖게 되어 현장을 탐방하고 애환도 세상에 알렸다. 이로 인해 솟아나는 희열은 인생 제3막에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나는 1942년에 인도네시아로 끌려온 연합군 포로 감시원의 흔적이 있는 곳과 한-인니 위안부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전역을 누비고 다녔다. 동띠무르까지 가게 됐으니 말이다. 여기에는 분명 내 한량 끼도 한몫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지난 4월 초에 그동안 숙원이었던 탐방을 재개했다. 꼭 가보고 싶었던 조선 포로원 근무지 ‘찔라짭(Cilacap)’이 첫 목적지가 됐다.
 
‘찔라짭’은 인구 194만(2020년 기준)으로 중부자바 남쪽 인도양에 있는 미항이다. 찔라짭에는 ‘쁜담성’이라는 네덜란드가 건축한 유명한 요새가 있다. 5년 전, 첫 번째 도전했다가 장기탐방으로 인한 체력 고갈로 중도 포기했던 곳이다. 이번에 설욕을 씻고 기어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곳이다. 이렇게 찾아간 찔라짭 해변에서 생긴 일이다. 서부자바 가룻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벤뗑 쁜담을 구글맵에 찍었다.
 
"목적지가 우측입니다." 오후 5시 반 구글이 찔라짭 벤뗑 쁜담이라며 안내를 마쳤다. 차 앞에 큰 성문 같은 건물이 있다. 네덜란드 식 건물이지만 성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유원지 입구 건물일 뿐이다. 관람시간도 지나 매표구에는 직원도 없고 문은 열려 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별게 없다. 입구에 서 있는 한 청년에게  물어보니 나즈막한 이 작은 언덕이 쁜담성이 맞단다.
 
 
몇 년을 계획해 달려 온 탐방인데 실망스럽다. 이것이 요새라니? 그저 평범한 바닷가 모래톱이고 자연 풍경이 살아있는 일반적인 바닷가 풍경이다. 아늑해 보였다. 앞에는 호수같이 잔잔한 넓은 쁜유만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고 옆에는 하얀 백사장에 파도 잔잔한 에메랄드빛의 인도양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해변이다. 해변에는 금요일인데도 꽤 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끼리끼리 돗자리를 펴고 라마단 금식 부까 뿌아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라기 보다 아름다운 미항이다. 먼 길 어렵게 왔다. 실망스럽지만 내일 문을 열면 자세히 살피기로 했다. 목적지에 실망하고 나니 피로가 몰려왔다. 거기다 지금은 르바란 금식기간이다. 긴 여행길에 배고프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인도마렛 슈퍼에서 간식을 잔뜩 준비해서 이동하면서 열심히 배를 채웠지만 운전수는 하루 종일 금식 중에 운전하고 녹초가 되어있다. 운전수 금식을 풀어 주어야 한다.
 
쁜유 해변은 군인들이 도열하듯 야자수들이 길게 늘어 서 있다. 다시 오고 싶은 아름다운 해변이다. 해변을 따라 건어물집과 생선요리 집이 즐비해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오롯이 펼쳐진 곳이다. 장소와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멋진 레스토랑에서 어릴 적 보았던 나자리노 영화의 야자수 실루엣이 펼쳐내는 멋진 남국의 석양을 즐기고 싶었다. 마침 그럴듯한 이층집 레스토랑이 있어 그 중 깨끗해서 마음을 끄는 집으로 들어섰다. 이층에 올라갔다.
 
운전수는 생선구이를 나는 꽃게 양념요리를 시키고 조금 전 분위기를 지우려고 낭만 모드로 전환시켰다. 저 멀리 구름 한 점 없는 수평선에 시선이 닿는다. 커다란 무역선이 조각배만하다. 아직 낭만은 내 마음속에 있나 보다. 무역선이 돛단배로 보여 수평선에 마음을 띄운다.
 
냉장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이 생소한곳에 그것도 금식기간에 냉장 쇼케이스에는 한국소주가 있었고 맥주와 와인 보드카도 있다. 술을 못해 맥주 한 병 주량이지만 그래도 멋진 이국풍경을 파스텔톤으로 보려면 알콜이 필요하다. 고즈넉한 분위기다. 한량 끼가 본성을 깨운다. 저 멀리 수평선 아래의 바다는 깊을 것이다. 인도양은 깊다고 들었다. 이제까지 숱하게 드나들었던 자바 섬 북부의 태평양은 대륙붕이 넓고 바다가 얕다. 얕은 이야기만 쓰다가 인도양을 명상하니 뭔가 내 마음도 더 심오해져 깊은 이야기가 나 올듯하다. 시원한 맥주 한 병을 용감하게 꺼내 수평선을 향해 나팔을 불듯 쭈욱 들이켰다. 피로 때문인가? 탐방에 대한 갈증 때문인가? 알콜이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스며진다. 인도양을 배경으로 일렬로 늘어선 야자수가 스크럼을 짜고 손을 흔들어 나를 응원하는듯하다. 나는 어느새 무대에 선 스타처럼 야자수 관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몸이 좌우로 일렁인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버라볼 수 있다면 물안개 피는 강가에 서서 ...." 거기다가 한국노래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까지 흘러나온다. 마음이 노래까지 흡수한다. 주인장이 한류 팬인가보다 생각하며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데. "아! 한국분이세요?" 꽤 괜찮은 발음으로 주인장이 나와 배꼽인사를 한다. "네 사장님 볼륨 높여 드릴까요? 사장님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저희 집에 한국 사장님까지 오셔서 노래까지 부르니 제가 기분이 다 좋네요"
 
헉? 주인장이 한국의 식당 종업원처럼 손님에게 제법 장단을 잘 맞춘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사장님 한국말을 어찌 그리 잘 하세요?" 목소리와 자세를 낮춰 수습의 반전에 들어갔다. 나는 주인장을 옆에 앉히고 변명하듯 긴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인니말이 편하고 주인장은 한국말을 하고 싶어 해 우리는 자유롭게 두 언어로 꽤 오래도록 얘기를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주인장 대니씨는 한국에서 10년간 노동자(TKI)로 돈을 벌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오래전에 한국 안산에서 최초로 ‘와룽인도네시아’라는 인니 식당을 할 때 고객이었음을 확인했다. 수많은 고객들을 다 기억 못하기에 괜히 하는 말이려니 했더니 와룽 위치 메뉴 식당 인테리어등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23년 전 ‘와룽인도네시아’의 추억까지 더듬다가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됐다.
 
 
대니씨의 생선 요리 재료도 참기름 고추장을 쓰고 있었고 생선요리에 필수적인 청주대신 인니술 찌유를 쓰고 있는게 아닌가? 생선구이는 한국식 고등어구이 맛이었는데 어종이 콩참치(tuna kacangan)라고 했다. 콩참치 생선요리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운전수가 주문한 생선구이 반절을 내가 먹고 꽃게를 운전수에게 주어 반반씩 먹는 갑질을 해야만 했다.
 
결국 콩참치 7kg을 사서 아이스박스에 넣어오고 레시피를 배워와 이틀 후 연구원에서 구워봤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콩 참치는 도루묵이 됐다. 찔라짭의 콩참치구이는 평생 못 잊을 추억의 맛이 됐다. 다음날 아침 한국사랑 대니씨가 적극 요새 탐방까지 도와주었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매표구도 무료 통과했다. 관리자가 첫 한국인 취재에 고무되어 자신의 지식을 모두 동원 할 테세다.
 
입구에 들어서자 콘크리트로 잘 정비된 작은 강이 있고 강을 건너니 낮은 담 높이의 언덕이다. 이 언덕이 요새란다. "이게 요새라고?" 안내자의 열의와 달리 필자는 내심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도네시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유원지에 있는 하나의 동산일 뿐이었다. 작은 언덕을 넘어 섰다. 베토밴의 운명교향곡이 다큐맨타리 오프닝로고 음악처럼 끝나고 장면이 바뀌었다. 입이 쫘악 벌어졌다. 갑자기 무시시한 군 요새가 내 눈을 위협한다. 훗날 관관명소로 개방했다는 이 요새는 관람자들을 두 번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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