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0) 웬 바늘? / 문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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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 바늘?
문인기(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매일 아침저녁 산책길에 바늘 한 쌈씩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다. 뜬금없이 갑자기 바늘을 건네는 행동에 '저 사람 참 기이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까 싶어 간단한 설명을 하며 전한다. 그랬더니 모두가 활짝 웃으며 '뜨리마 까시! (고맙습니다!)'라고 반응한다. 고국을 다녀오며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은 가져오기 힘들어 제일 작은 것으로 가져와 여행 기념품으로 드린다는 말과 함께 바느질 바늘 한 쌈씩을 전했다. 한 쌈에는 20개의 바늘이 들어있다.
사실, 이 바늘은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25년 전 선교를 하겠다며 직장에서 나와 버린 나를 보며 아내는 ‘이제 때가 되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고 조그마한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 지금부터는 자기가 가계를 책임지겠다는 선언과 함께 서울 근교 구리시 신축 상가건물 1층에다 담대하게 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여자가 하기에 쉽다고 생각하여 시작한 것이 화장품을 파는 가게다. 곳곳에 동종의 가게가 있는데 잘 될 리는 없었다.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었으니 최소한 3년은 버텨보자며 끈기있게 출근하였다.
새로 가게를 여는 곳에는 늘 똥파리들(사기꾼)이 모여들어 눈독을 들이는 시대였다. 요즘은 더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시대이지만 그때도 만만치는 않았다. 혼자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는 아내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화장품 세트 하나 팔면 몇 천 원이 남는다. 그런데 어느 날, 멀쩡하게 생긴 부부가 들어와 화장품 풀 세트를 사고 현찰로 지불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화장품에만 기대지 말고 다른 상품도 겸하여 팔거나 투자를 해 보라'고 제의하였다. 순진한 아내가 무언가 하고 호기심을 보이니 그 부부는 바늘이 가득 들어있는 박스 4개를 가방에서 꺼내어 더욱 솔깃하게 바늘에 투자하라는 말을 한 것이다.
‘웬 바늘?’
바늘은 끊임없이 봉제공장에서 소요되는 필수 부품인데 몇 달 후부터는 이 바늘 생산이 국제적으로 힘들어져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정보(?)를 작은 소리로 알려주며 바늘을 미리 매점매석 많이 사서 쌓아두면 반드시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보관에도 큰 공간이 필요 없고 매장 진열장 밑에 쌓아두어도 수천만 원어치는 능히 보관해 둘 수 있다는 그럴듯한 제의를 한 것이다.
아내는 첫 투자 금액으로 통장에 있는 백여만 원을 찾으러 은행으로 향하였다. 돈을 인출하여 들고 오면서 불현듯 ‘혹시 지금 내가 사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상가 경비를 불러 함께 가자고 부탁하고 가게로 다가가는데 그 부부는 줄행랑을 쳤다. 가게 진열장 위에 바늘 네 통을 그대로 두고 도망간 것이다.
바늘 네 통, 한 통에 200쌈, 한 쌈에 20개의 바늘이 들어있었다. 그러니까 낱개로는 16,000개의 바늘이 남겨진 것이다. 사기행각에 동원된 그럴듯한 미끼 물품으로 쓰임 받은 꺼림칙한 흔적과 증거물로서 남겨진 것이다. 이 네 통의 바늘은 17년 전 인도네시아로 오는 가방 짐 속에 같이 들어가 이곳 인도네시아까지 옮겨진 것이다. 혹 쓰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갖고 갈 짐 리스트에 포함한 것이다.
요즘도 바늘을 사용하여 옷을 수선하여 입을까? 그러나 내가 아직 구멍 난 양말을 버릴까 하다가도 ‘한 번만 꿰매면 최소 한 달은 더 신을 수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바늘과 실을 찾아 꿰매 신고 사는 것을 보면 아직도 바늘은 각 가정에서 쓰이는 물건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조금 불편할 뿐 그다지 필수품이 아닌 바늘을 2022년이 저무는 12월에 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다.
무언가 선물로 건네는 물건이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성공한 선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물건이 손가락만 한 크기에 상표로 붙어있는 빨간 라벨도 구시대의 티가 진하게 풍기고, 상표 이름도 호돌이라는 이름으로 바늘과 맞지 않는 제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역사성을 지닌 엔티크로 여기지나 않을까? 호돌이라는 상표를 보면 1988년도 서울 올림픽을 캠페인 하던 시기에 이 바늘도 만들어졌으리라 짐작한다. 그러고 보면 약 35년 전 제품이 아닐까?
내가 만나는 동네 아낙들은 노인도 있지만 대부분 적어도 바늘귀를 능히 꿸 수 있는 연령대이다. 대개 조혼을 하기 때문에 40세에 할머니가 되는 나라, 그래서 이 바늘은 이렇게 촌스러워도 그들이 태어났던 시대에 만들어진 한국제 앤티크 바늘인 것이다. 내가 ‘이 바늘은 약 30여 년 전에 만들어진 한국제 바늘입니다.’라는 말로 건네면 모두 놀라며 무슨 귀한 물건이라도 선물 받는 모습으로 공손히 받는다.
이참에 선물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선물이 얼마나 값나가는 물건, 얼마나 큰 것인가 보다도 지닌 사연이나 역사성, 그리고 전하는 자의 마음이 고이 담겼다면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귀한 보석처럼 상대가 받으며 감사로 화답하게 된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원치 않게 우리에게 안겨진 뜬금없는 바늘, 그걸 나는 공짜로 주어진 것이니 부담 없이 나누어 푼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나누면서 내가 교훈을 얻게 된 것, 내가 오히려 고귀한 깨달음을 받게 된 것이 매우 감사하다.
바늘통을 여니 속에 든 800쌈, 그 속에 든 총 16,000개의 바늘이 이역만리 외국까지 와서 흩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어떤 의미를 깨닫는가? 내가 이곳에 와서 섬기는 목적과 바늘의 흩어짐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이 바늘이 각 가정에, 각 심령에 어떤 의미와 반향을 일으키며 각 곳에서 존재하게 될까? 얼마나 더 나뉘어져 흩어지며 넓게 번져갈까?
“찌르는 날카로움은 무딘 마음을 찔러 진리를 깨닫게 하고, 수선의 기능은 찢어지고 갈라진 마음들을 기워 봉합하며 치유를 이루고, 작으나 쓰임 받는 물건이듯 누구든 자신을 쓸모없다며 자학에 빠졌다면 일으켜 다시 쓰임 받는 존재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2022. 12. 31. 오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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