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225) `요즘`이 있어 즐거운!
페이지 정보
본문
‘요즘’이 있어 즐거운!
한화경(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원)
요즘 마트에 가면 마치 산처럼 쌓여있는 선물용 과자 상자와 유리병에 색색이 담겨있는 달콤한 주스 원액들이 맛 별로 진열되어 있다. 여러 해 인도네시아에 살다 보니 이제는 이 광경이 뭔지 안다. 이슬람 명절인 르바란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고, 한국에서 말하는 명절 대목의 모습이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 큰 명절은 무슬림이라면 한 달간의 라마단 금식을 마치고 맞이하는 새해이다 보니 긴장과 걱정, 그리고 기대감이 교체되는 시기일 것이다. 금식이 끝나가고 명절 직전에 사람들의 표정이 가장 인상적이다. 긴 금식으로 지쳐가던 사람들의 얼굴에 윤기가 돌아오고 웃음이 끊이지 않은 밝은 표정으로 변한다.
남의 명절이고 언어마저 통하지 않아도 표정만큼은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이 나라 명절이 다가오는 이 시기, 작년부터 3년 만에 코로나 규정이 조금씩 풀리면서 못 갔던 고향에도 다녀오고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부터 코로나 규정이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격리도 해제되고 지금까지 일상을 거의 회복하듯 지내오고 있다.
한때, 이국 땅에서 한발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숨죽이며 조용히 지냈던 세월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로나 시대 적응 기간과 같았던 거리두기 초기, 그때 화제가 되었던 달고나 커피를 기억하실까?
시간을 투자해 미세한 거품을 정성껏 내어 지금까지와 색다른 커피가 한국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매료시켰었다. 궁금해서 나도 몇 번 따라 해봤는데 집에 있는 재료로 시간이라는 정성을 들여 성취감과 우아함, 그리고 맛이 맞아떨어진 마음을 위로해주는 황금 레시피였다. 종이컵에 스틱커피를 타는 바쁜 일상에 맞았던 그 커피와 달랐다.
그 시기 종일 집에서 원격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있어 밥 때가 자주 돌아왔다. 외출과 외식이 어려운 환경에서 가족들 입이라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안 해본 요리까지도 도전한 시기였다. 당연히 생기는 실패작은 웃으면서 먹어보기도 여러 번, 그 끝에 성공한 요리도 있었다. 사람은 오고 가지 못한 대신 음식이 오고 갔고, 이웃들의 음식 교류가 나에게는 즐거움과 원동력이 되었다.
이제 꼭 찾아오는 금식 기간 라마단과 르바란 연휴 모두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자유로워진 만큼 모두가 즐거운 명절 보냈으면 좋겠다. 마트에 수많은 선물 속에 나도 걸라 금식 끝나고 고향에 돌아가는 지인들에게 전달할 생각이다. 올해도 명절 전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기대해본다.
나의 연구실이자 작업실과 같았던 부엌에서 태어난 요리 이야기
<인도네시아식 오븐>
나를 부엌에 묶어놓게 했던 인도네시아식 오븐 이야기로 시작해본다. 이웃 언니가 이사 가면서 창고 깊숙한 곳에서 꺼내 나에게 주고 간 친구인데 난생처음 보는 냄비처럼 가스레인지에 얹어 사용하는 가스 오븐이었다. 오븐을 가지고 싶었던 나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시간도 있겠다, 그날부터 레시피를 찾아 오븐에 여러 가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푹 쉬었던 놈이 날마다 뜨거워야 하니 놀랐을 것이다. 계란, 밀가루, 설탕, 기름 등의 분량 조절에 따라 모습을 바꿔 카스텔라, 빵, 슈크림, 쿠키, 컵케이크가 만들어지는 게 너무 흥미로웠다.
한 번 만에 성공한 일은 거의 없어서 될 때까지 도전하다 보니 모양이 나올 때쯤엔 아이들이 거들어보지도 않은 경우도 있었다. 가끔 도가 넘치긴 했지만 고소한 향기와 함께 기대감과 행복을 구워주는 행복 오븐이 정말 고마웠다.
<따후 이시>
두 번째는 따후 이시이다. 일찍 사러 가지 않으면 매진되는 가게가 아쉽게도 문을 닫아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문을 열 것 같지 않아 레시피와 먹어본 기억을 찾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따후 이시는 튀긴 만두와 유사해서 그런지 대부분의 한국인 입맛에 맞는 매력적인 인도네시아 요리이다. 감을 잡을 때까지는 10개 정도 소량으로 여러 번 만들어 보다가 나름 모양이 만들어졌을 때부터는 화젯거리로 여기저기 나눠 먹게 되었다. 엄마표 유일 만들 수 있는 인도네시아 요리가 생겼다.
<여주 장아찌>
세 번째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기 몸에 좋다고 하는 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년 여름인 이곳에는 1년 내내 있는 채소이지만 익숙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먹지 않을 것으로 한 번도 요리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은 설탕으로 담가보기도 하고 여러 시도한 후 여주 장아찌를 만들게 되었다. 오래 보관도 가능하니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고기와 함께 먹으면 쓴맛이 오히려 상쾌했다. 대파와 마늘 볶은 기름에 볶아 만든 여주 나물도 별미이다. 이렇게 건강을 생각하다 쓰디쓴 여주와도 진해졌다.
<LA떡>
마지막으로 LA떡이다. 미국에 건너간 한국 이민자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있는 재료 섞고 오븐에 구워 만들어 먹었다는 LA떡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그 시기 LA떡 정신을 충분히 느낄만한 환경이어서 미국 땅에서 구웠다던 떡을 이곳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구워 나눠 먹으며 힘겨운 시기 서로 격려한 추억이 생겼다.
*후기 - 요리를 나누며
달고나 커피와 닮아 시간을 투자해 간단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이다. 간혹 컵케이크나 슈크림 LA떡을 지인에게 보내면 좋아해 주시고, 모임에 도시락 통 가득 튀겨간 따후 이시는 어느새 “언니 따후 이시”가 되어 앵콜까지 받는 일도 생겼다. 여주 장아찌를 당뇨로 고생하는 분께 드렸더니 혈당이 많이 안 올라간다며 좋아해 주셨다.
상대를 생각하며 만들어 드리는 음식은 말과 또 다른 말을 전달해주고 마음을 이어주는 것 같아! 2년을 넘은 긴 시간 동안에 만들어진 요리가 이렇게 마음이 즐거운 요즘을 만들어줄 줄이야!
- 이전글[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끝이 아니었다 /양경실 23.06.19
- 다음글(224) 친구 ‘랄’할아버지/Sahabat Pak lal 23.03.23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