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끝이 아니었다 /양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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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아니었다
양경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책상 앞에 책을 펼쳐 두고는, ‘이 지긋지긋한 공부는 언제 끝나지?’ ‘얼마나 커야지 공부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고민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하지 않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되었던 건데, 그땐 그랬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보다 두 배는 더 살았는데, 과연 공부와 헤어질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선 사회에서 일괄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에서는 해방되었다. 더 이상 정규교육 과정이라는 틀 속에서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때마다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라는 획일적인 틀 안에서 한 가지 기준을 가지고 평가받는 공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정말 끝이었나?
사실은 끝이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창 시절의 공부가 편한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어른의 공부는 난이도가 더 올라갔다. 학창 시절의 공부는 교과서를 위주로 공부할 내용들이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결과표는 성적표 정도였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이후 공부의 내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무엇을 공부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하여서 원하는 삶의 방향성에 맞춰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것이 내가 경험한 어른의 공부였다.
어른의 공부는 공부해야 할 폭이 넓을 뿐 아니라 결과도 엄중하다. 사실 편안하게 살고자 마음먹으면 편하게 살 수도 있는 삶이지만, 삶을 골고루 정성껏 가꾸지 않았을 때 받아 들게 되는 결과물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도 힘들게 할 수 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하지 않았을 때 마주하게 될 최악의 결과물은 나쁜 성적과 부모님의 꾸지람 정도였지만, 세상에 나온 이후에는 엉망이 된 관계, 통제되지 않은 욕망으로 인해 구멍이 난 가계부, 건강하지 않은 몸, 준비되지 않은 노후 등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무서운 것은 상황이 심각해지고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좀처럼 ‘네가 가는 방향은 옳지 못하니 공부하면서 다른 삶을 살아봐라’라는 말을 듣기 힘들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코스에서는 놓여 났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는 본인 몫이 되는 무한 책임이 지어진 것이다.
‘이제 끝인가보다’ 하고 잠시 쉬어 갔던 나의 공부가 시작된 계기는 첫 아이의 탄생이었다. 아이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돌봐야 하는 것인지 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명하다는 카페에 가입하여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질문을 읽어 보기도 하다가 이러지 말고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육아서를 한 두 권 씩 읽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담은 가벼운 에세이부터 소아과 전문의가 쓴 책들까지 한 권 씩 읽어 나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물론 책에서 읽고 습득한 지식대로 육아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아이의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차분히 대응할 수 있었고 배운 것이 실전에 어떻게 펼쳐지는지 비교하면서 배우게 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학습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 돌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정서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읽었고 부족하지만 “부모의 삶이란 아이라는 한 그루의 묘목을 키우는 것과 같다. 묘목이 물을 필요로 하면 물을 주고, 비바람에 흔들린다면 비바람을 막아줘야지 분재로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한창 성장해야 할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을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 조부모, 교사들이다.” 이런 말들을 마음에 담으면서 육아에 힘써 왔다.
소근육 발달이 더디고 한글을 늦게 깨치는 아이들을 보며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밝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이 지금은 늦은 것 같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소신 있게 육아할 수 있었다.
부모에서 학부모가 된 초등학생의 부모가 되어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 위해 공부를 이어 나갔다. 아이들에게 시켜주고 싶은 활동도 많고 공부도 많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에 학부모의 역할에 대해 공부하면서 돈을 쓸 곳과 쓰지 않을 곳들을 나누었다. 지금 당장 돈을 들여서 아이를 가르치면 아이가 한국어도 더 잘하게 되고 영어도 유창하게 되면서 성공적으로 인생을 꾸려 나가게 될 것 같은 유혹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공부정서가 잘 유지되는 것이라는 걸 배우면서 절제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삶의 태도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특히 책임지는 자세를 내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는 자세에 대해 가르쳐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독립된 사람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확신이 생겼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사람과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지고 원하는 환경과 성과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 부모인 내가 할 과제구나 느낀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과거의 내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아이가 책임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기에, 나부터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책임지고 일을 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뒤에 숨거나, 우선 순위를 미루거나 남 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이 말을 하지는 않아도 항상 부모인 나를 관찰하고 있음을 안다.
학교 공부가 끝난 후 진짜 공부가 시작되었다. 삶 공부를 하다 보니 오히려 더 중요한 공부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공부를 하느라고 놓쳤던 부분들이 많았음을 느낀다. 늦은 감이 있지만 ‘늦었다고 할 때가 제일 이른 때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워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잘 모르는 분야라고 머리 아프다고 방치해 놓았던 분야들을 ‘천천히 알아 가보자’라는 자세로 접근하니, 앎이 없음에서 느꼈던 막연한 공포도 사라지는 걸 느낀다. 이 땅에서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쫓기듯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탐구하며 즐겨 보아야겠다.
[수상소감]
2017년 12월 5살 첫째와 10개월 된 둘째와 함께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여 맡았던 매캐한 공기가 아직도 코끝을 스치는 듯합니다. 그렇게 자카르타로 삶의 터전이 옮겨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주어 11살 7살이 되었고 20년 자카르타에서 태어난 막내는 4살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그동안 자카르타와 함께 같이 자라났습니다. 자카르타 곳곳에 전철역이 생기고, SCBD의 공터에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자카르타의 풍경이 몰라지게 달라지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와 더불어 건강히 성장했으며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고 사계절이 아닌 건기와 우기의 감각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추억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적도 문학상에 수필을 제출하였는데,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 인도네시아의 생활에 추억 하나를 더하게 된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가고 계신 모든 분들을 응원하며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약력]
-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
-세 아이와 독서기록을 담고 있는 블로그 운영자 <http://blog.naver.com/allthetim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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