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최우수상] 작고 어린, 곤졸 /조은아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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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제5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최우수상] 작고 어린, 곤졸 /조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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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181회 작성일 2023-06-28 16:30

본문

작고 어린, 곤졸


조은아


1.

새소리가 시끄러웠다. 

짹짹 짹 짹짹짹 짹- 유일하게 소리만 들어도 알만한 놈들이었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새끼손톱만 한 부리를 가진 갈색의 새. 밤새 목을 아낀 탓인지 아침의 참새 소리는 더 높고 짱짱했다. 유나는 잠에서 깨며 동시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막이 그 작은 부리에 쪼아지는 듯했다. 


“아 시끄러…….” 

꿈속 너머 아련했던 새소리가 실제 볼륨으로 현실화하니 따갑고 아팠다. 손으로 귀를 감싸며 일어나 앉은 유나는 눈꺼풀이 반 정도 내려앉은 얼굴로 방을 둘러보았다. 유나가 자고 있던 아랫목을 제외하고 다른 이부자리들은 다 개어져 널따란 문갑 위에 올려져 있고 방엔 덩그러니 혼자였다. 할머니네 안방은 원래 네모난 모양이었지만 옆에 붙어있던 건넌방과 벽을 트면서 ㄱ자 모양으로 넓어졌다. 마루에서 보면 안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정면에, 건넌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왼쪽 옆에 있는데, 이제 안방 안에서도 곧바로 건넌방으로 갈 수 있게 된 거다. 안방이 넓어졌고 건넌방도 똑같이 넓어진 셈이었다. 물론 부엌과 구들장으로 붙어있는 안방이 훨씬 따뜻하지만, 벽을 헐어 방 공기가 하나로 통하게 되면서 건넌방도 전보다 더 따뜻해졌다. 이제 안방은 건넌방이고 건넌방은 곧 안방이었지만 식구들은 아직도 버릇처럼 안방과 건넌방을 구분해 말하고 있었다.


방을 둘러보는 사이 따가움에 적응한 유나는 귀를 덮고 있던 손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밤에 유나가 차지했던 자리는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누룽지 색을 한 아랫목이었다. 아직 불을 많이 때지 않을 때이지만 누렇게 변한 색 때문에 아랫목은 항상 따뜻해 보이는 곳이었다. 눈 뜬 지 몇 분이 지난 그제야 유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방문 맞은편 뒷마당을 볼 수 있는 작은 창호지 창문을 열었다. 문에는 유나의 작은 손으로 잡기 적당한 동그란 쇠고리가 달려있었고 마주한 걸개에 얹혀있던 고리를 내려 문을 열자 말린 싸리나무 가지들을 듬성듬성 묶어 빼곡히 줄지어 놓은 담벼락이 보였다. 


푸드덕- 갑자기 열린 문에 놀란 참새 몇 마리가 꺅- 하고 날아올랐다가 좀 떨어진 싸리나무 가지 위에 다시 내려앉았다. 이놈들은 아침이면 항상 이곳에 집합했다. 누가 불러 모은 것도 아니고 지들을 반기는 근사한 먹이를 차려 두지도 않았건만, 참새들은 마치 의식처럼 하루의 시작을 이곳 싸리나무 가지와 담벼락에서의 수다로 시작했다. 너른 앞마당과는 달리 창호지 창문과 뒤 담벼락 사이는 어른 폭으로 두어 걸음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의 소리는 무척 가깝고도 시끄러웠고 덕분에 할머니네 안방은 도저히 늦잠을 잘 수 없는 공간이었다. 


“우리 집엔 세 마리밖에 없는데…….” 마당의 제일 큰 목련 나뭇가지에 가끔 들르는 참새를 떠올리며 유나는 시골이라 새가 참 많나 보다 생각했다. 막상 눈으로 빽빽하게 모여 앉은 모습을 확인하니 시끄러웠던 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유나는 작은 쇠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닫고 일어나 맞은편에 있는 어른 키 정도의 기다란 창호지 문고리를 잡았다. 창문에 달린 것에 비해 방문에 달린 쇠고리는 작은 주먹이 쑥 들어갈 정도로 훨씬 크고 두꺼웠다. 유나는 고사리 같은 작고 뽀얀 두 손으로 투박하게 걸려있던 고리를 잡아 힘껏 방문을 열었다. 


유나가 마루에 나왔을 때 너른 마당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선선한 아침 공기는 반만 올려져 있던 눈꺼풀을 마저 힘껏 올려주어 말똥한 유나의 눈동자가 드러났다. 유나는 마루 끝에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마당을 둘러보았다. 마루에서 어른 종아리 정도 되는 아래로 신발을 벗어두는 길고 편편한 돌이 누워있었고, 거기서 또 돌계단으로 두 칸 정도 내려가야 마당의 흙을 밟을 수 있었다. 도시에 있는 유나의 집처럼 현관은 따로 없었지만, 할머니 집 마당은 유나 집 마당보다 훨씬 넓었다. 마루에서 내다보았을 때 마당 왼쪽 끝 쪽에 소 우리가 있었다. 진한 시골의 향기는 그곳에서부터 폴폴 퍼져 나오는 것 같았다. 유나가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제집과는 다른 시골의 아침을 마주하는 사이, 마루 옆 부엌에서 허연 김이 올라오는 빠께쓰를 집어 든 할머니가 휘어진 문지방을 성큼 넘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일난겨?” 

할머니는 마루 끝에 두 발을 대롱거리고 있는 유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빠께쓰를 옆으로 비켜 오른쪽 옆구리에 얹듯 잡아들고 한발 한발 돌계단을 딛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허연 머리에 쪽진 할머니가 어쩜 자신보다 힘일 셀지도 모르겠다고 유나는 순간 생각했다. 


“아적 눈곱도 안 떨어졌네. 누렁이 밥부터 줄겨. 니보다 훨 일찍 일났은께 밥도 먼저 묵어야제!” 


소 우리 앞으로 간 할머니는 앞에 놓인 진갈색 구유에 푹 끓인 여물을 조심조심 들이부었다. 아직 뜨거운지 피어오르는 김 속에 할머니 얼굴이 잠시 묻혔다 드러났다. 


“엄마 아빠는요?” 

“이? 뭐라고?” 

소여물 주느라 바쁜 할머니는 유나의 말을 단박에 알아듣지 못했다. 아침이라 유나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흠 흠. 목을 가다듬으며 유나는 늘어뜨리고 있던 다리를 들어 올려 마루 끝에 발딱 섰다. 그리고 소 우리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엄마 아빠 어디 갔어요―오?” 

“이- 어디 가긴. 집에 갔지. 아적 뜨거 이눔아……” 

할머니는 김이 나는 여물을 뒤척거리며 다가오는 소에게 기다리라고 한 번씩 손을 저으셨다. 누런 소는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다가서려다 물러서고, 또다시 다가오려고 했다. 


“누구네 집이요?” 

“됐다 이눔아, 이자 묵어라. 뜨건대 들어 댐비기는…….” 

끝까지 누런 소를 타박하며 할머니는 커다란 나무 주걱을 구유 옆에 세워두고 속이 빈 빠께쓰를 가볍게 집어 들고 돌아섰다. 이제야 비로소 할머니는 유나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누구네 집? 누구네는 니네 집이지.” 

“니네, 집…….?” 

어려운 단어도 아니었건만 유나는 할머니 말이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르게 누가 늦잠 자랴. 니가 안 인나니께 엄마랑 아빠랑 기냥 올라갔잖여” 

유나의 똘망한 두 눈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 나는요....?!” 

할머니는 보일 듯 말 듯 콧구멍을 씰룩거리며 부엌문 앞까지 걸어와 문지방에 오른발을 걸치고 유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니? 니는 인자 할미랑 여기서 살어야제” 

할머니는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부엌으로 쏘옥 몸을 감췄다. 약 3초가량, 유나는 정지화면처럼 서 있었다. 그리곤 점프하다시피 마당으로 뛰어내려 한걸음에 대문 밖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아----” 

7살 어린애 발이 어찌나 빠른지 빠께쓰를 던져두고 허둥지둥 부엌에서 나온 할머니는 어느새 냇가 위 다리로 향하고 있는 유나를 담장 너머로 확인하고 혀를 찼다. 


“으메, 바퀴를 달았나. 아야- 벌써 기차 타고 갔어어-” 

할머니는 유나를 쫓아 허둥지둥 대문을 나섰다. 돌다리 위를 건너는 유나의 짧은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그르게 누가 늦게 일나랴- 아침도 안 처먹은 게 뭔 기운이 뻗쳤어. 유나야- 유나야 이것아-” 

식전부터 할머니는 기운을 다 쓰고 있었다. 나름 있는 힘을 다해 걸음을 빨리했지만, 유나는 작아서인지 빨라서인지 이미 보이지가 않았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뜀박질을 했다. 그동안 두 다리는 쪼그려 앉고 걷는 데에만 사용하고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할머니의 다리는 뜀박질이라는 행위를 아예 잊은 것처럼 살아왔다. 그럴만한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요 조막만 한 손녀딸이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달리는 바람에 걷는 것만 할 줄 알았던 다리는 오랜만에 뛰었고 덕분에 심장도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유나는 흙길 저만치에 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놀란 심장은 할머니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거로 앙갚음하려는 듯했다. 가슴에 남은 여진을 부여잡으며 할머니는 유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흙바닥에 넘어졌는지 유나의 무릎엔 흙이 묻었고 그 틈으로 조금씩 피가 번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얼른 손에 침을 묻혀 핏물에 물들고 있는 흙을 털어내었다. 


“가서 약 발르자. 언능 인나 봐-” 

“엉.. 엉.. 엄마...” 

할머니의 애원에도 유나는 꿈쩍하지 않고 우는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꼭지라도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과 콧물이 줄줄 흘렀고, 할머니는 손바닥과 손등으로 손녀가 뿜어내는 진득한 액체를 슥슥 닦아냈다. 할머니는 호소하기를 단념하고 유나의 기운이 다하길 기다리기로 했다. 목청 좋은 유나의 울음소리는 그렇게 조용한 시골 마을을 한동안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유나에게는 두 살, 세 살 터울의 언니 오빠가 있었다. 연년생을 국민학교에 보내며 장사를 하던 유나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막내에게 소홀했다. 다행히 눈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막내는 낯도 덜 가리고 아무하고 잘 적응하는 성격이었다. 부모는 큰애들이 겨울방학을 할 때까지 몇 달 정도만 유나를 시골 할머니 집에 떼어두기로 했다. 부모가 조금 편하자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유나가 언제 시골살이 경험을 해보겠냐며 막내를 위한 결정인양 포장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제, 유나는 오랜만에 할머니네 가자는 말에 소풍 가듯 따라나섰다. 그렇게 유나네 가족은 할머니 집에 도착했고, 진짜 소풍이라도 온 것처럼 밝디 밝게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 아침, 엄마와 아빠, 오빠와 언니는 유나만 남기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유나만 두고 죄다 집으로 가버렸다. 소풍 온 줄 알았던 그곳은 아빠가 몇 십 년 전 나고 자란 곳이었다. 수도권 집에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몇 시간 걸려야 도착하는 곳. 유나네 집과 달리 주변에 건물보다는 풀과 나무,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곳. 그리고 아빠의 엄마가 아직 홀로 살고 계신 시골의 한 작은 동네. 이제 유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있는 그곳에서 할머니와의 시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마을의 이름은 곤졸이었다.


그날 이후 유나는 아침이면 대문 밖으로 쪼르르 달려 나갔다. 다음 날은 넘어진 곳보다 조금 더 가서 쪼그려 앉아 울었고, 다음 날엔 그보다 더 가서 주저앉았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나타나 유나를 업고 집으로 데려오곤 했다. 마치 업고 오기 놀이라도 하듯 유나와 할머니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며칠을 마치 할머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듯 할머니 기운을 빼고 말도 않고 심통만 부려댔다. 


“나 혼자 잘 거야! 할머니는 건넌방 가.” 

어차피 한 공간이었건만 유나는 할머니를 건넌방으로 쫓아냈다. 유나의 결론은 확실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할머니 때문에 자기만 버려진 게 맞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 시골 동네에 혼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자기만 놓고 갈 일은 없었을 거다. 7살 여자아이가 내린 나름 논리적인 결론이었다. 


유나는 할머니와 밥도 같이 먹지 않았다. 할머니 탓을 하면서 할머니가 가져오는 밥상에 털썩 앉으면 왠지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다. 꼬맹이 소녀의 자존심을 그렇게 할머니의 밥상을 멀리하는 것으로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런 유나를 위해 할머니는 여름에 남긴 옥수수며 감자며 고구마를 찌고 구워 마루 한편에 놓아두고 대문을 나섰다. 


처음엔 정말 하나도 그 수가 줄지 않아 ‘독한 년’이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정도 지나자 덮어두고 나간 밥상의 음식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한쪽만 파먹은 옥수수를 티 나지 않게 알이 박힌 쪽이 보이게 놓아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런 밥상을 치우면서도 할머니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으이구 밥을 또 한 개도 안 묵었네!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으이그 유나 무셔워라.” 

유나는 티 안 나게 먹은 걸 할머니가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왠지 할머니를 골탕 먹이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빳빳하게 곧추 세우고 있던 자존심이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는 건 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유나는 더 이상 급하게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가지 않았다. 마루에 앉아 신발을 신는 것도 평소와 달리 꾸물거렸다. 할머니가 소여물을 주고 빈 빠께쓰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폴짝 마당으로 뛰어내린 유나는 괜히 소 우리 쪽을 힐끗거렸다.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면 바로 대문이었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고 가로로 움직였다.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틀어막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소 우리를 마주한 뒤 누런 소를 빤히 쳐다보았다. 


“뭘 봐! 이게 맛있냐…….?” 

유나는 아직 온기가 남은 여물을 손으로 집어 들고 콧구멍에서 손가락을 빼 가까이 댔다가 우엑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에게 괜한 심통을 쏟아 부은 유나는 터덜터덜 대문으로 향했다. 


그날 유나는 뛰지도 않고 주저앉아 울지도 않고 가장 멀리까지 갔다. 그렇게 유나가 다다른 곳은 저수지 앞이었다. 언젠가 설날, 저수지가 꽝꽝 얼어붙어 그 위를 가로질러 온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쓱쓱 발로 밀며 미끄럼을 타다 보면 어느새 맞은편 마을 입구에 도착했었다. 유나는 이 저수지 건너편에 버스든 기차든 집으로 가는 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이 얼어붙어 있지 않은 지금은 저수지를 빙 둘러 한참을 돌아가야 했고 그 길은 잘 몰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언니 오빠도 없는 눈앞의 저수지는 배가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넓디넓은 바다처럼 보였다. 그날을 끝으로 매일 눈물 콧물을 쏟아내던 유나의 눈물 꼭지는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2.

당숙네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전화기가 있는 집이었다. 할머니는 사람이 있건 없건 전화할 일이 있으면 당숙네 들러 마루 끝에 놓인 전화기를 집어 들곤 했다. 이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할 때 와서 쓸 수 있는 그런 전화기였다. 유나가 저수지까지 걸어 나갔던 그 날 할머니는 당숙네 들러 큰아들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걱정 말어. 첨엔 만날 밖으로 뛰나가서 질질 울더니 이자 좀 괜찮여……. 장난감이 뭐 필요햐. 지천이 다 놀이턴디…….” 


“지들 때랑은 달라여. 우리 때나 들로 산으로 나가 놀았지.” 

생각해보면 육남매를 키웠지만, 할머니는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장난감을 사주거나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같이 놀아줬던 기억은 더더욱 전무했다. 애를 낳고도 며칠 지나지 않아 툭툭 털고 일어나 밭일을 나갔던 시절이었다. 채 스물도 되지 않아 큰 애를 낳았으니 어리고 젊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할머니는 생각했다. 아이들을 낳긴 했지만, 그 애들이 자라는 동안 한 일이라고는 밭에 나가 땅을 메고, 때마다 명절을 치르고, 여덟 식구 뒤치다꺼리와 끝도 없는 집안일들이었다. 봄이다 싶으면 금방 여름이 왔고 가으내 정신없이 일을 끝내면 성큼 겨울이 와 있었다. 달력에 표시해 놓은 온갖 대소사를 하나씩 치르는 사이 날짜는 세지 않아도 그렇게 일 년씩 훌쩍훌쩍 지나갔었다. 육남매는 고맙게도 밥만 차려놓고 나가면 지들끼리 먹고, 놀고, 싸우고, 자며 나름의 하루를 보냈다. 집밖이 다 놀이터였고 돌멩이가 장난감이던 때였으니까. 문득 할머니는 육남매에게 해준 거라곤 삼시 세끼 밥상이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지들끼리 자라 어느새 어른이 되어 하나둘 도시로 떠난 거였구나. 싶었다.


당숙네 막내 용이 아재는 자식 대부분이 다 도시로 떠난 이 마을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젊은이 중 하나였다. 큰애네가 왜 막둥이를 놓고 갔는지, 지만 떨어뜨려 놓고 간 걸 알고 유나가 며칠째 어쩌고 있는지, 할머니는 고해성사하듯 줄줄 그간의 일들을 풀어놓았고, 용이 아재로부터 한 번씩 꼬맹이와 놀아주겠노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녀였지만 요즘 애들은 다르다는데, 육남매 때처럼 그냥 둔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한 살이라도 젊은 용이 아재가 한 번씩 놀아준다니 지고 있던 어깨의 짐이 반쯤 덜어진 것 같았다. 


곤졸에는 유적지처럼 취급되는 곳이 있었다. 할머니 집 앞길에서 당숙네로 이어지는 냇가 다리 반대편에, 논과 밭이 모여 있는 땅으로 찔러 갈 수 있는 작은 길이 있었다. 원래 길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자주 다니면서 사람 하나 지나갈 정도로 풀이 자라지 않고 흙이 드러나 길처럼 되어버린 곳이었다. 양옆으로 온갖 잡초와 돌보지 않은 풀들로 무성한 그 길 한편에 생뚱맞게도 정자 같기도 하고 사당 같기도 한 옛 건물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 주변은 어른 키 정도 되는 높이의 돌담으로 네모나게 둘러싸여 있었고 빛바랜 붉은빛의 작은 대문도 있었지만 잠겨있는 건지, 잠겼다고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은 건지, 누구 하나 그곳을 들어가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귀신이 사는 집이라고도 하고, 예전에 유배당한 정승이 내려와 지냈던 곳이라는 소문도 있다는데 정확하게 누가 살았는지, 왜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옛 건물에 대한 용이 아재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유나와 아재는 정자가 보이는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아재는 길게 자란 잡초로 둘러싸인 그곳이 잘 보이도록 유나를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워주었다. 어린 유나의 눈에도 그곳은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곳 같아 보였다. 아무렇게나 막 자라 있는 풀들은 마치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경계의 손사래를 치는 듯했다. 


“어 뱀이다!” 

살아있는 건 벌레조차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발견 한 건 유나였다. 알록달록한 돌담 사이에서 발견한 뱀은 티브이에서 봤던 것들보다 훨씬 작아 보였다. 아주 어린 새끼이거나 원래 크기가 작은 종류 같았다. 전반적으로 붉은빛이었고 뱀 특유의 거뭇거뭇한 무늬들도 있었다. 유나는 꽤 가까이에서 뱀과 마주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른인 용이 아재만 잔뜩 긴장한 채였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생명체가 신기한지 뱀도 빤히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유나는 문득 뱀이 참 예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똑똑해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 그렇게 두 인간을 주시하던 뱀은 작은 혀를 날름거리더니 스르르 돌과 돌 사이 작은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녁을 먹고 아랫목에 배를 깔고 누운 유나는 노트를 펴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알록달록 칠한 뱀의 눈엔 공주의 눈에 붙여주었던 휘어지는 눈썹도 그려주었고 동글동글한 담장도 그렸다. 그림을 다 그린 유나는 입으로 말하며 글씨를 써 내려갔다. 옆에서 바느질하던 할머니는 작은 손으로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 내려가는 유나를 대견하게 바라보았다. 


“아이고, 우리 유나가 엄청 똑똑허네에- 글씨도 잘 쓰고. 이게 뭐여…….?” 

유나의 노트를 들여다보며 쓱 다가온 할머니는 주름진 손가락으로 맨 앞 글자를 가리켰다. 


“이거?” 

“나는” 

“이.. 그럼 이건?” 

“오늘, 할머니 글씨 몰라요?” 

“이. 할미는 글씨 몰러. 유나가 좀 갈켜줄려?” 

“나도 혼자 깨쳤는데 할머니는 왜 공부를 안 했어요?” 

유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였다. 


“그르게 말여. 할미는 게을러서 글씨를 한 개도 못 깨쳤으. 할미 좀 갈켜 줄텨?” 

“에효, 잠깐만요. 이거부터 다 쓰고요” 

유나는 턱을 쭉 빼고 눈을 내리깐 채 대단한 일이라도 하듯 마저 글씨를 써나갔다. 어린 스승을 내려다보는 제자가 된 할머니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기대에 차서이기도 했고 대견해 보여서이기도 했다. 


3.

어느새 냇가엔 살얼음이 얼었다. 할머니는 개울가 돌이 미끄러우니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지금껏 지켜본 할머니는 글씨만 빼고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고 언젠가부터 유나는 할머니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날 유나는 용이 아재와 우시장에 갔다. 추운 날씨 때문에 큰 천막을 친 곳에 장이 섰는데, 유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소가 모여 있는 걸 처음 봤다. 천막 안에는 반이 소였고 나머지 반이 사람이었다. 옛날엔 우시장에 아낙들이 들어오지 못했다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개개인들이 사고팔던 거래도 경매로 바뀌어 한쪽에서는 시끄러운 경매가 진행 중이었다. 소들은 큰 소, 중간 소, 송아지로 구역이 나뉘어 있었고 유나와 용이 아재는 사람들이 덜 붐비는 곳 위주로 돌아보고 있었다. 


“이짝 놈들은 인자 도살장으로 가는 겨!” 

“도살장이 뭐예요?” 

“니 고기 좋아허지? 그 고기가 야들이잖여!” 

유나는 곧바로 용이 아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홀로 남겨진 첫날 할머니가 말한 ‘니네 집’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과 비슷했다. 내가 먹은 고기가 야들이라고? 


“생일날 엄마가 불고기 해줬지? 그리구 명절에 먹은 산적, 갸들이 다 야들이여. 야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믄 글케 고기가 되는 겨” 

유나는 그동안 소를 떠올리며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맛있게 먹었던 그 불고기랑 산적이 이 착하게 생긴 누렁이들이었다니.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나 별로 안 먹었어요! 이제 안 먹을 거야!” 

유나는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왠지 나쁜 일을 한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소고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소고기’의 ‘소’가 바로 이 소들이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편 뭔가 억울하기도 한 기분이었다. 사뭇 심각해진 유나의 표정을 살피던 용이 아재는 슬그머니 유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좀 더 작은 몸집의 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아재는 여기나 저짝에 송아지 하나 살라고 온 겨!”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유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재는 주로 중간 소나 송아지들 사이를 서성거렸다. 유나는 아재를 따라다니면서도 한 번씩 마이크를 잡은 경매사 쪽으로 시선이 갔다. 좋은 소를 싸게 사려고 눈에 불을 켜고 경매 중인 사람들 가운데 이 상황이 뭔지 모를 소들은 그 크고 순박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소들과 달리 경매사는 매서운 눈초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일 초도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유나는 그 큰 소들이 애처롭고 불쌍해 보였다. 어떤 소는 마치 눈물이 고여 있는 것처럼 슬퍼 보이기도 했다. 송아지들은 어려서 그런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한 번씩 벌떡벌떡 놀라기도 했다. 송아지라고 해도 유나보다 훨씬 컸지만, 유나 눈에 그곳에 있는 송아지들은 강아지처럼 작고 어린 아기들 같았다. 


“아재, 나 눈 매워요” 

천막에 들어와 언젠가부터 유나는 자꾸 눈을 비비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는데 마치 그 안의 공기에 고춧가루가 섞인 것처럼 매콤함이 느껴지더니 점점 눈을 똑바로 뜨기 힘들 정도로 따갑고 시렸다. 용이 아재는 유나를 번쩍 안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맑고 싸한 바깥 공기를 쐬자 매운 기가 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아재가 공기 안 좋은 데를 괜히 델꼬 왔네. 아적 애긴 디.” 

자책하던 용이 아재가 자전거를 가지러 뛰어간 사이 유나는 맑은 공기에 눈물 샤워를 하고 있었다. 막상 나와 보니 천막 밖도 시끄럽고 정신없긴 마찬가지였다. 경매가 끝난 소를 차에 싣고 가려는 사람들과 타지 않으려는 소들이 한바탕 씨름을 하기도 했고, 군데군데 모여 앉아 허연 김이 올라오는 국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시장은, 우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슬픈 장소는 아니었지만 우는 소들이 있는 걸 보면 그닥 신나는 장소도 아닌 것 같았다. 용이 아재는 유나를 뒷자리에 앉히고 그곳을 벗어나 울퉁불퉁한 흙길을 따라 달렸다. 우시장에서 멀어진 후 매운 기는 사라졌지만, 그곳의 풍경은 유나의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고 있었다. 


“유나야. 소도 유나처럼 눈물 난다.” 

담담하게 내뱉은 용이 아재의 말에 유나는 천막 안에서 언뜻 지나친 눈물 고인 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재 어렸을 때 아부지 따라 우시장 갔는디 새끼랑 안 떨어질라고 눈물 뚝뚝 흘리는 어미 소가 있었으.” 

아까 눈물이 났던 게 눈이 매워서였는지 소들이 불쌍해서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유나는 다시는 그런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우시장에 다녀온 후로 유나는 할머니 집에 있는 누렁이와 더 친해졌다. 누렁이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유나의 마음은 확실히 전과 달랐다. 더는 누렁이 앞에 오면서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지도 않았고 여물을 다 먹은 누렁이에게 제가 먹던 과자나 곶감을 던져주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더는 돼지라고 놀려대지 않았다.


어느새 밤은 점점 더 빨리 찾아왔다. 날짜를 세고 있지 않았지만 6시도 안 돼서 마을은 캄캄해지고 있었다. 누렇게 잘 구워진 아랫목은 이제 온종일 더운 기를 품고 있었다. 자기 전에는 얼마나 절절 끓는지 시커멓게 타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나가 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아재네서 가져온 어린이 잡지를 읽고 있으면 할머니는 구운 가래떡이나 고구마 같은 걸 들고 오셨다. 그리고 화로에 미리 올려둔 쇠 그릇에 물그스름하게 녹은 조청을 듬뿍 찍어 유나 입에 넣어주셨다. 


“할미 숙제 검사 안 혀?” 

화로 옆에 놓인 탁자를 앞으로 옮겨 놓고 할머니가 자랑스럽게 노트를 펼치면, 유나는 어느새 깐깐한 선생님 모드의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업무를 보듯 빨간 색연필 끄트머리를 손가락 세 개로 다소 건방지게 잡는 자세를 취했다. 펼쳐놓은 노트에는 가, 나, 다부터 아버지, 어머니, 누렁이 같은 간단한 단어를 몇 번씩 따라 쓴 글씨가 보였다. 유나는 눈을 내리깔고 한눈에 봐도 정성스레 눌러 쓴 할머니 글씨에 어른들이 하듯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고 휘갈기듯 별표를 그려주었다. 빨간 별표를 받은 할머니 얼굴엔 함박웃음이 절로 피었다. 


“홍, 홍, 할미가 그랴도 공부 머리가 있는가 벼. 오늘도 감사합니다 유나 선상니임……” 

유나는 조청 그릇 안에 걸쳐놓았던 가래떡을 마저 집어 먹었다. 


“선상님. 할미 글씨 하나 좀 갈켜 줘.” 

“뭐요?” 

유나는 뜨거운 조청에 입이 데지 않게 한참이나 입으로 불고 한입 베어 물었다. 


“고. 봉. 례.” 

“그게 뭐에요?” 

“할미 이름.” 

뜨거운 아랫목의 열기 때문인지 할머니의 얼굴이 발그레했다. 들고 있던 가래떡을 입에 다 넣은 유나는 노트를 넘겨 빈 장 제일 위에 글씨를 썼다. 


“고..봉..레..” 

입으로 소리를 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글씨를 쓰는 유나 옆에서 할머니도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되뇌었다. 고. 봉. 레. 

한글을 다 깨쳤다고 큰소리쳤지만, 사실 유나는 ‘ㅔ’와 ‘ㅖ“를 구별해 쓸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할머니 이름이 고봉레에요?” 

“이 이게 내 이름이여?” 할머니는 손녀가 써준 자신의 이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유나가 쓴 글씨를 보며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듯 자신의 이름을 따라 적었다. 다른 어떤 글씨를 쓸 때보다 조심스럽고 느릿했다. 유나는 치켜 올라간 할머니의 입 꼬리가 바르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보았지만 모른 척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고개를 숙인 할머니의 뒤통수가 보였다. 당숙 할머니만큼 새하얗지는 않은 회색의 할머니 머리는 항상 짱짱하게 빗겨져 단정하게 비녀가 꽂혀있었다. 유나는 매일 아침 할머니가 처음 보는 빗으로 정성스레 머리를 빗고 긴 끈을 입에 문 채 열심히 머리를 땋은 후 솜씨 좋게 감아 비녀를 꽂는 모습을 목격했다. 언젠가부터 유나는 할머니의 단정한 머리가 예뻐 보였다. 당숙 할머니는 머리가 짧은데도 부스스하고 지저분해 보였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잔머리 하나 내려오지 않게 깔끔했다. 유나는 할머니 뒤통수 아래에 꽂혀있는 비녀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이거 하고 싶다” “쪽지고 싶어? 우리 선생님이 하고 싶다는 디, 할미가 해줘야지……” 

할머니는 연필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건넌방으로 꺾어지는 벽 아래 놓인 오래된 문갑에서 실로 뜬 알록달록한 소쿠리를 꺼냈다. 그 안에는 금처럼 번쩍거리지는 않지만, 할머니 집에서 본 가장 화려한 색들의 것들이 들어있었다. 유나는 할머니 옆에 앉아 우와- 소리를 내며 안에 든 신기한 것들을 이것저것 들춰보았다. 할머니는 제일 좋은 걸로 해줘야겠다며 초록색 옥비녀를 집어 들었다. 아끼느라 잘 쓰지 않은 탓에 손때가 묻지 않아 매끈하고 맑았다. 유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유나를 뒤로 돌려 앉히고 소쿠리에 들어있던 참빗을 꺼내 머리를 빗겨주었다. 쪽을 지기에 유나의 머리는 짧았다. 간신히 어깨에 닿을 정도라 머리가 잘 땋아지지도 않았지만, 할머니는 야무지게 유나의 머리를 땋고 돌려 결국 비녀를 꽂아주었다. 처음 해보는 헤어스타일에 유나도 입이 찢어져서 벽에 걸어둔 거울로 가 고개를 돌려가며 아슬아슬하게 달린 비녀를 비춰보았다. 


“아이고 우리 유나 새색시겄네!” 

“와 진짜 이쁘다!” 

유나는 거울 속 제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꼭 어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유나를 보며 할머니는 계속해서 칭찬을 늘어놓았고 유나는 그 말에 기분 좋게 취해갔다. 유나와 할머니가 그렇게 아옹다옹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느새 엄마 아빠가 도착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유나는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아침을 먹자마자 저수지가 보이는 곳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오고 누렁이한테 간식을 던져주고는 또 돌다리를 건너 당숙네를 지나 마을 입구까지 갔다 돌아왔다. 할머니는 점심때나 돼야 온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유나는 오전 내 대문을 들락거렸다. 그 사이 점심 준비를 마친 할머니는 같이 저수지까지 가보자며 유나 손을 잡고 대문을 나섰고 돌다리를 건널 즈음 드디어 유나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족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나는 혼자 남겨진 걸 알아챈 날 그랬듯 짧은 두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가족의 손을 잡아끌고 집으로 올 때까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설명해줄 것도 들려줄 얘기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특히 언니 오빠한테는 가르쳐 줄 것들 투성이었다.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선 가족은 입을 떡 벌렸다. 그동안 유나가 그린 그림과 썼던 글씨들, 별표 받은 할머니의 숙제와 크게 써 놓은 할머니 이름까지, 방은 그런 것들로 새롭게 도배가 된 것 같았다. 


“이게 그 뱀이야. 이뿌지? 그리고 이건 냇가에 사는 송사리. 그리고.” 

“고 봉 레?” 

크게 써진 이름을 발견한 언니가 유나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이름! 언니도 오빠도 몰랐지롱?” 

“알았거든! 갑자기 생각 안 났거든!” 

오빠는 머쓱해 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유나에게 소리쳤다. 옆에서 언니도 ‘나도 나도’ 하며 기억이 안 났다고 변명했지만 의기양양해진 유나의 목소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아빠는 가져온 짐을 건넌방에 정리하며 놀란 눈빛이었다. 


“이게 다 니가 써서 붙인 거야?” 

“여기 빨간 별 받은 건 할머니가 쓴 거. 내가 숙제 검사한 거야” 

“할머니가? 어떤 게?” 할머니가 썼다는 말에 아빠가 고개를 돌렸다. 유나는 할머니가 똑똑한데 글씨만 모른다며 할머니가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혼자 쓴 이름을 가리켰다. 


“인제 혼자서도 이름 잘 쓰지?” 

“그러게. 잘 쓰셨네.” 아빠는 할머니가 썼다는 글씨를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점심 식사 준비를 마쳤는지 엄마가 방문을 열고 식구들을 불렀다. 아빠는 방을 나서면서도 할머니가 썼다는 글씨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유나는 언니 오빠와 함께 곤졸 투어를 시작했다. 저보다 나이만 많았지 언니와 오빠는 시골에 대해 당최 아는 게 없었다. 유나는 먼저 집 앞 냇가로 향했다. 


“조심해. 돌 미끄러워” 

할머니가 제게 했던 말을 그대로 써먹으며 유나는 아재와 물고기 잡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진짜 잡았어? 나도 잡고 싶다.” 

할머니가 만든 그물을 손에 쥔 채 오빠는 아쉬운 표정으로 냇물을 들여다보았다. 


“엄-청. 매운탕 끓일 만큼. 매운탕 진짜 맛있는데. 근데 지금은 추워서 못 잡아. 가자 인제” 

유나는 다음 행선지를 향해 바쁘게 또 앞장섰다. 못 믿겠다는 얼굴로 쳐다보던 언니와 오빠는 냇물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유나가 대장 같았다. 알려 줄 게 너무 많은 유나는 제가 뻥을 치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보여줄 곳들, 들려줄 얘기들이 너무 많을 뿐이었다. 


“쩌기 저수지 있자나. 거기는. 괴물 산대!” 

“진짜?! 괴물이 있다고?!” 

“쉿! 비밀이야!” 

유나는 꾸짖듯 언니 오빠를 쳐다보며 비밀스러운 말투로 얘기를 이어갔다. 목을 자라처럼 잔뜩 움츠려 모은 모습으로 유나가 들려주는 저수지의 비밀 얘기를 들으며 삼 남매가 얼굴을 맞대고 걸어갔다. 대문을 나서던 용이 아재는 그런 유나의 일행을 발견했다. 오늘 온다더니 도착했구나 생각하며 유나를 불렀지만,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삼 남매 누구도 아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이 난 유나의 표정이 멀리서도 보이는 듯했다. 


“쩌기가 뱀 사는 데야” 

저수지로 가던 중 멀리 보이는 정자를 가리키며 유나가 말했다. 언니와 오빠의 고개가 동시에 유나의 그쪽으로 돌아갔다. 


“저기는 위험한 데니까 조심해야 돼. 풀이 이만큼 높아서 나는 아재가. 맞다. 언니 오빠 아재 알아?” 

“아재. 가 뭐야?” 

“당숙 할먼네 용이 아재. 당숙 할머니도 모르지? 에효 모르는 거 천지네. 당숙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보다 훨-씬 더 할머닌데 허리가 이렇게 꼬부라져서.”


언니는 슬쩍 오빠 눈치를 보았다. 오빠는 아느냐는 듯, 혹은 오빠도 나처럼 모르냐는 듯. 오빠가 이제 생각났다며 늦게나마 말했지만, 유나는 믿을 마음이 없는 건지 신경 쓰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숙 할머니와 용이 아재 얘기는 삼 남매가 저수지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까지 이어졌다. 다음날에도 삼남매의 곤졸 투어는 계속되었고 아빠는 선산에 올라 할아버지 산소를 둘러본 후 겨우내 쓸 마른 나뭇가지들을 날라 오셨다. 


이틀째, 시골집 방안은 여섯 식구로 가득해 오랜만에 아랫목부터 건넌방 앞까지 요를 깔아야 했다. 내일이면 유나네 식구가 떠날 시간이었다. 제일 윗목에 자리를 잡은 아빠는 옆자리에 누운 할머니의 다리를 주무르며 더 머물지 못하고 올라가는 걸 죄송해했다. 그 마음을 손아귀에 담아 메마른 할머니의 다리를 꾹꾹 눌러주었다. 아랫목은 언니와 오빠가 차지했다. 장판의 누런색이 진할수록 더 따뜻한 곳이었기에 둘은 티격태격하며 더 누런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유나는 아랫목보다 엄마 옆자리를 택했다.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 인제 묶어줘요” 

유나의 말에 할머니는 몸을 일으켜 반짇고리 안에 있던 긴 천을 꺼내왔다.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는 아빠가 유나와 할머니를 휘둥그레 쳐다보았다. 


“엄마 손!” 

유나 곁으로 다가온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유나의 오른손과 엄마의 왼손을 끈으로 묶기 시작했다. 


“니들이 또 버리고 갈까 봐 머리 쓰잖여. 을마나 고민을 했다고. 엄마가 못 떼 놓게!”

할머니는 손녀딸의 지시대로 엄마와 유나의 손을 잘 묶어주었다. 황당하게 쳐다보던 엄마와 아빠도 못 말리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야, 풀고 가면 되지!” 

“그럼 내가 일어날 거 거든! 할머니 더 꽉- 꽉 묶어요.” 

오빠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나는 단단히 묶인 끈을 보며 만족해했다. 그제야 유나는 마음 편히 잠자리에 누웠고 시골 방의 불도 꺼졌다. 불 꺼진 시골의 겨울밤은 유난히 더 칠흑 같았다. 그렇게 곤졸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4.

짹짹짹- 짹짹짹- 날이 추워져서인지 참새들 수가 적어졌다. 하지만 잠을 깨우는 짱짱함은 여전했다. 유나는 눈을 뜨자마자 휙 고개를 쳐들고 옆자리를 확인했다. 엄마가 옆에 있었다. 손목에 묶은 천도 그대로였다. 아빠도 윗목에서 아직 자고 있었고, 아랫목을 차지한 언니와 오빠도 아직 꿈나라였다. 언제 나가셨는지 할머니 요만 비어 있었다. 유나는 그제서야 씩 웃으며 다시 자리에 누워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할머니와 엄마는 내내 부엌에서 보따리를 싸느라 바빴다. 아빠는 아침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뒷산에 가서 마지막으로 마른 나뭇가지들을 잔뜩 지고 와 부엌 뒷문 밖에 쌓아 두었다. 언니 오빠는 소 여물통 앞에 쪼르르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누렁이를 보고 있었다. 질겅질겅 풀떼기를 먹는 모습이 재밌는지 둘은 손으로 먹이를 주기도 하며 재밌어했다. 느긋하게 갈 준비를 하는 식구들과는 달리 유나의 마음은 이미 기차역에 가 있었다. 어디 한 군데 가만있지 못하고 부엌도 들여다봤다 아빠한테도 가봤다 하며 다했냐고 열 번도 넘게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 다 했어? 인제 가?” 

“다 혔으. 이자 이놈만 싸믄 되어.” 

할머니는 안달하는 유나를 보면서도 하나라도 더 싸 보내려 계속 뭔가를 보따리에 집어넣었다. 용이 아재가 기웃거리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소 우리 앞에 지게를 벗어놓은 아빠는 유나 등을 떠밀며 아재에게 다가갔다. 


“아재한테 인사드려야지.” 

“아재 감사합니다! 물고기도 잡아주고 목말도 태워주고 자전거도 태워주고 노트도 주고. 헥헥헥, 다 감사합니다!” 

장난기 넘치는 유나 말에 용이 아재는 웃음을 터뜨리며 유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인자 핵교 가믄 애기 아니고 국민학생이니께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아재네 전화번호 잘 외웠제?” 

“삼십이 국에 사. 육. 삼. 칠!” 

“으이그 똑똑허네. 전화 혀. 할미랑 통화 혀야지!”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고 부엌에서 나오며 할머니가 말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보따리를 다 싸고 나오는 모습을 보자 유나는 알겠다고 소리치며 잽싸게 대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섬주섬 짐을 들고 인사를 나누며 온 식구가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유나는 이미 다리까지 뛰어가고 있었다. 


“야 너 할머니한테 인사 안 해-!” 

오빠의 목소리에 유나는 가던 발을 멈추고 그대로 뒤돌아 단숨에 대문 앞까지 뛰어왔다. 그리곤 할머니 치마폭에 화악- 달려들었다.


“누렁이 도살장 보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세용!” 

여전히 장난스러운 유나 모습에 할머니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랴, 그랴하며 주름 잡힌 손으로 유나 등을 문질러 주셨다. 인사를 마친 삼남매는 다시 뒤돌아 경주하듯 달려나갔다. 


“고생하셨어요. 즈이 갈게여. 아, 틀린 글씨는 지가 고쳐 놨어여!” 

아빠는 씩 웃으며 바스락 소리가 날 정도로 메마른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가 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두세 걸음에 한 번씩 돌아보며 그만 들어가라고 손짓했지만, 할머니는 알았으니 어여 가라고 그 손짓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렇게 막 돌다리를 건너려는데 유나가 갑자기 할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고! 봉! 례! 할머니! 숙제 검사하러 또 올께요!” 

유나는 노트에 휘갈기듯 그렸던 별을 허공에 달아주었다. 지금까지 받은 것 중 가장 큰 별이었다. 작은 스승이 던진 칭찬에 할머니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간신히 가둬놓고 있던 눈물도 툭- 함께 떨어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알겠다고 들리지 않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용이 아재가 조용히 할머니 등을 문질러 주었다. 그렇게 다섯 식구는 할머니와 용이 아재 시선에서 조금씩 멀어지다 결국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나의 높고 밝은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할머니 귀에 머물고 있었다. 아들네를 보내고 방에 들어온 할머니는 텅 빈 방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작은 꼬맹이 하나가 집안 분위기를 싹 바꿔놓고 가버렸다. 할머니가 썼던 이름의 ‘레’ 자에는 줄이 하나 더해져 있었고 노트엔 새로운 글씨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지유나 성생님’ ‘할머니’ ‘에쁘다’ 코를 훌쩍이고 여전히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할머니는 주책이라고 자신을 연신 타박했다. 


해가 바뀌었다. 딱딱하게 얼었던 땅들이 녹아 부드러워지고 겨울잠을 끝낸 어린 싹들이 그 틈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한결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할머니는 당숙네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용이 아재도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걸터앉아 귀를 열고 있었다. 


“인자 담주부텀 핵교 가는 겨?” 

“입학식 때 우는 애도 있었대요. 난 코도 안 흘렸는데.” 

“갸들은 아마 글씨도 몰를 걸. 우리 유나가 젤로 똑똑 허겄네!” 

“에효, 내가 또 가르쳐줘야겠네.” 


유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한바탕 수다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할머니는 용이 아재와 유나의 입학 얘기를 복기하며 즐거워했다. 어느새 문지방까지 엉덩이를 밀고와 앉은 당숙 할머니도 뭔진 모르겠지만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얹고 겨우내 걸어뒀던 고무 다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둔 채 흥얼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언제나 그랬듯 조용하고 평화로운 곤졸에는 파릇파릇 봄이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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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사십여 년 만에 찾아간 곤졸은 당황스러우리만큼 작고 왜소한 모습이었습니다.

바다처럼 넓어 보였던 저수지는 한눈에 담고도 남을 정도로 아담했고, 물고기를 잡고 멱도 감았던 냇가는 물이 말라 온통 잡초 고랑이 되어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뱀을 만나게 해준 돌담은 무너졌는지 쇠로 된 둘레로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아빠가 나고 자랐던 시골집은 폐가처럼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초라하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소재로 한 이 소설입니다. 그러다 최근 아빠를 흙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큰일을 겪은 후 아빠를 기억하는 글을 적고 싶었고, 발인을 위해 사십여 년 만에 곤졸을 다녀온 후 최종적으로 제목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수정하는 내내 나의 옛 모습에 어렸을 아빠를 투영하며 글을 적어나갔습니다. 꽤 자주 울컥하였고 나와 합쳐진 작고 어린 아빠를 상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빠, 감사합니다.

막내딸의 그리움을 좋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약력]

결혼 전 영화 시나리오 작업. <초승달과 밤배> <쇼쇼쇼> 등.

다음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 활동명 ‘타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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