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거대한 질문(3-1) /우지수 > 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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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단편소설 ] 거대한 질문(3-1) /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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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365회 작성일 2024-06-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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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적도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거대한 질문

우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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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수상:한인니문화연구원 <제11회 인도네시아 이야기> 문학상, 단편소설 우수상 2021

-번역 출간도서 : 『인간 커뮤니케이션, 비서구적 관점』 김민선 저 / 범기수, 박기순, 우지수 공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8


<당선 소감>

이 글을 쓸 때쯤, 살면서 처음으로 ‘배신’이라는 것을 당해보았습니다. 처음엔 화가 나서 ‘처음부터 이럴 의도였을까? 상대방은 내가 속상하다는 것을 알기는 할까?’라는 질문을 반복했고, 결국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며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배신당했다고 느낀 내가 문제인지, 배신감을 안겨준 그가 문제인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래,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는 거겠죠, 상대방도 저도.


흥분이 가라앉자 뒤이어 드는 의문이 바로 ‘만약 기계도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래서 배신을 하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면, 그래도 그것은 여전히 기계에 불과할까 아니면 우리는 그것을 인간으로 대해야 할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고와 학습뿐만 아니라 창작의 능력까지 가진 인공지능이 이미 사회 전반에서 작동하는 시대에 철학과 윤리를 배우고 감정까지 가진 기계의 등장은 머지않은 미래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피부조직은 물론이고 신경 한 줄까지 그대로 인간을 복제한 기계들은 어디까지가 기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일까요.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인간이란, 인간됨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흐름이 서툰 문체로 한 편의 글을 만들어 냈습니다. 재독할 때마다 손댈 곳이 보여 부족하기 그지없는 글을 기한이 임박한 탓에 서둘러 보낸 뒤에는 마음을 졸였습니다. 그런 제 글에 칭찬과 격려를 보내주신 한국문인협회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릴 따름입니다. 


큰아이의 이름을 따서 주인공 이름을 지은 터라 이름값을 치르기 위해 큰아이에게만 글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이의 “재밌다”라는 한 마디가 당선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큰 힘이 되었죠. 거친 글감들을 다듬고 맥락 없는 생각들을 이어 누군가에게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그래서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글 쓰는 일에 소질도, 욕심도 없었지만,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읽어준다면 써볼 만하겠다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평범한 주부가 어느 날 ‘작가’라는 이름을 달게 되는 ‘소설’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꿈도 난생 처음 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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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질문 


아침부터 연구소는 경매 준비로 분주했다. 벌써 입사 8년 차이지만 경매에는 처음 참여하는 모빈은 누구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모빈이 소속된 지식정보상용 2팀이 이번 경매의 책임부서가 되면서 그녀는 약 4개월 전부터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 된 생활을 했었다. 사내 인권관리팀의 경고가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매를 위한 물리적인 준비보다 이번 경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그녀를 열의로 가득 차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매 시작은 오전 11시였고, 어제 퇴근 전에 경매장 세팅을 모두 끝낸 터라 행사장 관리는 한주에게 맡겨두고 사무실로 돌아와 최근에 발표된 보고서 한 편을 읽기 시작했다. 


「… 인간의 감정에 대한 연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끊임없이 이뤄졌고, 기쁨, 슬픔, 행복, 분노, 만족, 결핍, 증오, 양보, 그리움 등 이미 다수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감정의 작동에 대한 연구는 꾸준히 진행 중에 있다. 수치적 계량화에 상당수 도달한 감정은 다시 세분화되어 관련 감정과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 공식적으로 승인된 감정들은 유사 인간종에 대한 감정 기능 탑재 및 이들의 감정처리 능력에 사용이 허용되어… 」


모빈은 대학에서 휴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감정처리 공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국립 감정연구소의 부설 기관인 감정연구원에서 감정분류학으로 최종 학위를 받았다. 휴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감정, 나아가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휴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전공 역시 커뮤니케이션학의 한 분류로서 그저 화자와 청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사이에 작동하는 노이즈와 매체의 원리를 파악하고, 노이즈를 최소화하는 매체를 개발하는 데에 집중하는 학문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퇴임을 앞둔 지도교수는 ‘커뮤니케이션’보다 ‘휴먼’에 더욱 집중했고, 그는 사석에서도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학위 논문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이르렀을 때, 그 말은 그녀의 모든 것의 시작이자 중심이 되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한창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모빈은 자신도 모르게 읊조렸다. 마침 사무실로 올라온 한주가 그 말을 들었다.


“그렇죠. 인간이기 때문에 배신감을 느끼는 거겠죠.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그 배신감이 독이 되고 화살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퍼뜩 정신을 차린 모빈이 한 주를 돌아봤다.


“언제 왔어?”

“행사장은 ‘이상무’이고요, 경매사님께 최종 대본 전달하려고 올라왔어요. 그런데, 선배! 선배는 오늘 경매 최고가를 얼마로 예상하세요?”

“글쎄…. 배신감은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1등급 감정에 비해선 비교적 최근에 논의가 이뤄진 거니까….”

“그러면 생각보다 낮은 금액으로 낙찰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 경매는 소분류 단계 경매가 아니라 대분류 단계 경매라서….”

“그래서 낙찰가가 높을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아, 뭐예요, 담당자가 이렇게 확신이 없어요!”


사실 이번 경매에 대해 모빈은 끝까지 반대했었다. 세부 단계 분류도 이뤄지지 않은 감정의 경매를 서두르는 이유는 단 하나, 상용화뿐이다. 현재 생산되는 기계체 중 로봇형 AI와 휴머노이드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분노, 만족과 결핍 등의 감정에 대한 인지능력 즉, 상대방 인간이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인식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중 기쁨과 슬픔의 감정 데이터는 제한적인 적용이 허용되어 로봇형 AI와 휴머노이드는 기쁘고 슬픈 감정의 일부분은 자의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보다 더 제한적으로 행복과 결핍의 감정 데이터 탑재도 허용되었지만, 분노와 만족의 감정은 아직 적용되지 않는다. 


분노 감정 데이터 적용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로봇형 AI와 휴머노이드의 돌발 행동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이다. 조금 다른 이유에서 만족 대신 결핍 감정 데이터만 적용하는 이유는 만족을 모르고, 결핍만을 알아야 기계체가 계속된 자기 진화를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꽤 오랜 시간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동의했다. 


감정 데이터를 탑재한 기계체들을 공식적으로는 ‘유사 인간종(Pseudohuman)’이라고 부른다. 현재까지 유사 인간종의 감정 데이터 탑재에 대해 제한 규정은 있지만 의무 규정은 없다. 다시 말해 같은 외형의 유사 인간종이라도 행복 감정 데이터와 같은 한두 가지 감정 데이터만 탑재된 것부터 허용된 모든 감정 데이터가 탑재된 것까지 감정 관련 기능은 생산자나 주문자의 선택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오늘 경매가 이뤄지는 배신 감정 역시 유사 인간종에게 데이터 입력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분노, 불안, 두려움, 배신 등의 감정은 <부정적 감정에 대한 제한 규정>에 따라 감정 인식 능력만 부여할 뿐 자의적 발현 기능은 금지된다. 


“공 연구원은 배신당해 본 적 있어?”

“글쎄요. 저를 배신할 수 있는 건 토비 밖에 없을걸요. 츄르 하나를 다 먹고는 배를 뒤집고 누워서 애교를 부리기는커녕 휙-하고 돌아설 때면 진짜 배신당한 기분이거든요. 하지만, 토비한테는 배신 감정 데이터가 탑재돼 있지 않으니, 그건 저만의 기분일 뿐 실제로 배신당한 건 아니겠죠. 그렇게 따지면 누구나 살면서 상대방이 의도하지 않은 배신을 한두 번은 당해보지 않을까요?”

“그럴듯하네.”

“상대방이 배신할 의도가 없었다면 그건 배신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래도 배신일까요?

“글쎄…. 상대방이 배신할 의도가 없었는데, 배신을 당했다….”

“그렇죠! 지난번에 ‘슬픔, 감정’ 세미나에서 말이에요, 상대방이 슬프게 할 의도가 없었는데, 이쪽에서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순수한 슬픔인가, 관계적 슬픔인가 하는 주제로 발제가 있지 않았었나요?”

“맞아, 있었어. 그런데 그때는 결론이 좀 흐지부지했어. 요약하자면,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다. 감정은 유기적 관계의 산물이니까. 이것이 곧 그걸 증명해 주고 있다.’ 뭐 그런 성의 없는 발제였지. <텍앤이모 랩(Tec&Emo Lab)>에서 나오는 논문들은 다 그런 식이야.”

“그렇죠. 겉보기만 연구기관인 장사꾼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연구원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고, 행사 전 팀 회의와 최종 점검이 예정돼 있어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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