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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56) 한국인의 김치이야기 /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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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10,296회 작성일 2019-05-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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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56 >
 
한국인의 김치이야기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열대나라인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아온 탓인지 입맛이 없을 때면 한국에서 먹던 김장독에서 갓 꺼낸 차가운 겨울의 김장김치가 생각난다. 요즘에는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오가며 번갈아 생활하다보니 김장철이 되면 친정언니는 의례히 내 몫의 김장김치까지 담아놓는다. 특히 작년 겨울은 다른 어느 해 보다 김장김치로 인해 따뜻하고 풍성한 겨울을 보냈다. 동창인 세 명의 단짝친구들이 저마다 각자의 맛을 자랑하는 김장김치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일산에 사는 40년지기 친구의 보쌈김치는 짠맛도 전혀 없고 각종 견과류와 과일로 김치속이 꽉 차 있어 먹을 때마다 보양식 김치를 먹는 느낌이었다. 오랜 친구의 진한 우정이 김치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또 한 친구는 아예 김치냉장고 안에 들어가는 김치 통째로 제대로 숙성이 되어 한창 맛이든 김치를 가득 담아 가져왔다. 한국에 있는 동안 김치 걱정 말고 김치찌개며 김치전도 실컷 부쳐 먹으라는 친구의 속 깊은 마음이 잘 익은 김치 맛처럼 정겹기 그지없다.
 
이처럼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음식인 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 살아도 한국인들에게는 진한 고향의 맛과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어떤 반찬이 많아도 김치가 없으면 허전해서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 김치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임을 뼈 속까지 숨길 수가 없는가보다.
 
김치는 한국 사람들이 사시사철 즐겨먹는 발효식품이기에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하다. 한국과 계절이 다른 적도지방인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어도 질병예방에 도움이 되고 건강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저칼로리 음식이면서 갖은 양념이 들어있기에 비타민 및 영양소도 풍부한 것은 물론이다. 김치의 종류를 알아보자면 보통김치와 김장김치로 나뉘며 보통김치는 오래 저장하지 않고 비교적 손쉽게 담아먹는 것으로 배추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갓김치, 파김치, 굴을 넣은 깍두기, 겉절이 등이 있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김장김치는 겨울동안의 채소공급원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오랫동안 저장해 두고 먹는 김치를 일컫는 말이다. 김장김치의 종류로는 통배추김치, 보쌈김치,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섞박지 등 다양하다. 김장을 담그는 일은 한국인만의 오랜 풍습이기에 지방마다 풍습과 기호, 계절의 차이에 따라 김치의 재료와 양념 담그는 방법과 시기등도 달라 여러 가지 맛을 자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삼 김치 이야기를 꺼내놓자니 어느덧 20여년도 훨씬 지난 따뜻한 기억이 떠오른다. 90년도 초반에 나는 처음으로 싱가포르에서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김치가 세계적인 먹거리로 글로벌화 되지는 않았기에 싱가포르 한국슈퍼에서 작게 포장된 일본식 김치만을 팔고 있었다. 맛도 느끼하고 그것으로는 해외에서 김치를 먹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질 않아서 나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식 배추가 싱가포르 현지슈퍼에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가까스로 로칼 시장에서 배추와 비슷한 양배추를 찾아서 그것을 사서 소금에 간간히 절여 놓았다. 그때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었고 김치도 친정엄마가 담그는 걸 어깨너머로 본 것이 전부였다. 오직 한국식 김치를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기억을 더듬어 열심히 양배추 김치를 담가 보았다. 더운 나라라 그런지 양배추가 금방 숙성이 되어 그런대로 배추김치 못지않은 김치 맛을 내주었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내가 담가본 김치를 남편과 아이가 맛있게 먹어주니 그렇게 마음이 흐뭇할 수가 없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에서 삭막했던 삶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 시절 김치로 인한 따뜻한 인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이웃에 새로 이사 온 주재원 가족이었던 종훈이 엄마의 잊지 못할 김치 맛 때문이기도 하다. 타국생활의 특성상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빈번하게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삶이란 늘 그런 것이라 여기면서도 새로 이사 온 사람보다는 떠나보냈던 친한 이웃을 잊지 못해 마음이 뒤숭숭하던 어느 날이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현관문 앞에는 고향집 친정언니를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인상의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저, 옆집에 새로 이사 온 훈이 엄마예요, 인사도 드릴 겸 가져온 것이니 한번 드셔 보세요.” 그녀가 가져온 것은 먹음직스러운 김치 한포기가 맛깔스럽게 담긴 커다란 접시였다. 참기름 한 방울, 김치 한보시기도 한국음식이 귀하던 시절이라 그녀가 가져온 고춧가루로 벌겋게 버무린 전라도식 김치쟁반은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 입맛을 현혹시킨 그 남도김치의 매력은 배려심 많은 따뜻한 이웃을 만났다는 행복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김치로 인한 인연으로 해외에서 돈독하게 다져진 그녀와의 우정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두 번째 해외생활인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식 배추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배추김치를 비롯해 다양한 김치를 담가먹을 수 있기에 한인들의 먹거리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김치 이야기를 하자면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한국을 비행기로 자주 왕래하다보니 주로 국적항공사 비행기를 애용하는 편인데 기내식에 우리의 김치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장시간 앉아만 있기에 개운한 한국식 김치가 먹고 싶을 때가 많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나 글로벌 먹거리인 한류로 떠오르는 우리 한국식 김치가 국적항공사 기내식에는 왜 제공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을 가져본다. 김치와 더불어 우리 전통음식인 고추장은 튜브 형으로 제공되는 반면 김치는 주 메뉴에 빠져있는 것 같다. 아마도 동남아 국가의 두리안처럼 김치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외국인들에게 김치가 너무 짜거나 맵다는 인식이 있다면 우리의 김치 맛은 살리고 냄새를 최소화 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염분농도를 측정해서 짜지 않는 김치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류바람이 불면서 한식이 각광받고 특히 김치가 세계화 되고 있다는 것은 김치를 사랑하는 한국인으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에서 재외동포로 살아온 긴 세월동안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맛있게 숙성되어 식탁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김치가 너무나 자랑스럽다. 김치를 먹을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기에 내안에 있는 나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한국의 대표 음식이며 한국인만의 자존심인 김치가 있기에 우리의 역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 살아도 새롭게 그려지고 우리의 것을 소중히 지키며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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