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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인니 지부 (78) 가을은 우리 삶의 정원사 / 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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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산책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942회 작성일 2019-10-31 14:45

본문

< 수필산책 78 >
 
가을은 우리 삶의 정원사
 
서미숙 / 수필가,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회장)
 
 
고국에는 나무가 잎을 버리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봄과 여름 그 푸르고 무성했던 흔적을 다 내려놓고 미련 없이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한때 간절히 지니고 있던 가득한 꿈과 영화가 그 아름다움이 바람결에 떨어져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이 즈음이면 한번쯤은 자연의 이별과 마주서서 자신의 삶과 자존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진정으로 잎을 버리는 나무가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잎과 잎으로 남긴 수많은 상처를 딛고 또 다시 일어서는 나무에게 의지를 배운다. 인간의 수많은 욕심과 부질없는 욕망들이 이 계절엔 다소 고개를 숙이게 해달라는 나무들의 말없는 메시지를 전달 받는 것만 같다.
 
 
모처럼 모임에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퇴근시간과 맞물려 거리 곳곳이 정체되어 차가 꼼짝을 않는다. 운전기사는 막히는 거리를 뚫고 지름길을 택하여 어느 골목길 주택가 정원을 서서히 지나고 있었다. 주택은 꽤나 고풍스러웠고 나무들이 울창한 정원 안에는 정원사가 열심히 가지를 치고 있었다. 정원사라는 직업은 나무의 가지를 치는 일일 것이다. 나무의 자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고 분수없이 뻗어나는 잎새와 가지를 막는 일이며 나무가 꽃을 피우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하여 곁가지를 잘라내기도 할 것이다. 잎이 무성했던 나무들은 어느새 정원사의 손길에 의하여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무심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 동안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며 달리고 있었다. 나는 잠깐 동안이지만 정원사의 마법 같은 손길에서 조각가의 손끝으로 빚어낸 비너스를 감상하듯 나무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희열을 맛보았다.
 
 
어쩌면 무언가를 다듬고 창조해 낸다는 의미는 새로움을 탄생시키는 창작의 작업과도 일치한다. 어떠한 아름다움의 완성품 뒤에는 고통의 흔적이 따르는 것처럼 가지를 치고 난 나무의 둘레에는 가지 끝에서 잘려나간 작은 생명의 아픔과도 만나게 된다. 정교한 아름다움 뒤에는 말없는 작은 희생이 따르는 이치와도 같다. 나무들은 정원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며 새로운 성장을 위하여 가지가 잘려나가는 희생과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마디마다 도려내는 가지치기는 인간 삶에서 불필요한 인연 끓기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원사가 가지를 잘라내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나무의 성장을 위해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떠올리게 된다. 정원사의 손길을 통하여 새롭게 탄생하는 나무를 보며 인간의 내면에 자라는 나무를 돌아본다. 마음이라는 정원에서 크는 나무는 덜 생긴 모습을 다듬어 준다거나 분수없이 자라는 욕심을 잘라내어 올바른 꿈을 위하여 가지를 쳐주는 정원사가 없다. 사람의 나무는 정직한 사고와 진실 된 자아를 통해서 오직 제 스스로 무작정 자라는 욕심을 자르는 자성을 갖추어야 한다. 정원사의 역할을 통하지 않아도 스스로 잎을 버리는 계절, 가을은 우리에게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 삶이 진정으로 어떤 가치를 세울 수 있을 때 소중한 잎을 버리는 나무의 슬픔처럼 진실은 반드시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우리의 양심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이 가을은 어쩌면 우리 삶의 정원사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한해의 흔적을 돌아보며 삶에 불필요한 욕심가지를 과감히 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진실한 마음 밭을 소중히 가꾸고 다듬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를 듣는다. 문학인들에게는 좋은 글쓰기와 따뜻한 마음으로 주변과 이웃에 대한 사랑 나누기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 밭을 새롭게 경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녁 안개 자욱한 열대의 텁텁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에게 과연 절제절명의 ‘문학’이라는 구원의 손길이 존재하는 한 어떤 아픔도 어떤 슬픔도 치유의 명약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시간은 늘 그 자리에서 무지개 빛 내일을 꿈꾸는 갈망 속에서 존재했다. 우리의 삶에서 채워지지 않은 갈망과 지나온 시간의 흔적은 소중하다. 하나의 일이 시작되고 또 마무리되는 반복의 연속이 일상이 된다.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위하여 수많은 날들을 묵묵히 살아낸다. 이 가을에 던져진 우리 삶의 빛깔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 지나친 열정도 독이 되고 지나친 사랑과 미움도 삶에 독소가 된다.
그 독소야말로 자신의 삶을 무너뜨리는 욕심이라는 것을 우리는 잎을 버리는 가을 앞에서 대자연의 숭고한 이치 앞에서 소중하게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가을날,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 한편을 소개해 본다.
 
 
욕심 / 공광규
 
뒤 곁 대추나무가
약한 바람에 허리가 뚝 꺾였다
 
사람들이 지나며 아깝다고 혀를 찼다
 
가지에 벌레 먹은 자국이 있었나?
과거에 남모를 깊은 상처 있었나?
아니면 바람이 너무 드셌나?
 
그러나 나무 허리에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나무는
너무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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