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헤리티지 박물관 공부를 시작하며 - 이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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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공부를 시작하며
이수진 (한국외대 신방과 85학번)
인도네시아에 1992년 정착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활동 중
연락처 : 0816 1300 210
얼떨결에 인도네시아에 와서 언어를 배우고 익히며 이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부터 이 나라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종교와 더불어 사람들의 생긴 모습이나 생활 방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고 독특한 데가 많기 때문에 늘 어색하다고 느꼈다. 오랫동안 살면서도 배울 것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가까운 이웃 나라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찬란하고 오랜 역사를 찾아보기 힘들어 배울 것도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인도네시아에서는 남의 나라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외국인들이 참 많다. 무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만큼 배우고 익힐 문화와 유물이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를 바로 알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다른 곳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는 과거에 비해서 그리 자랑할 것이 많지 않다. 뭔가 배워서 우리 것으로 삼고 싶은 현재의 모습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참으로 열악한 처지와 생활 환경에 놓여 있고 여전히 힘든 경제 문제로 인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찬란한 고대 역사를 가진 나라가 오늘날에는 전혀 그러한 힘을 과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실제로 그러한 과거가 존재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정도이다. 이렇듯 부정적으로 인도네시아를 바라보던 나에게 어떤 기회가 주어졌다.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이하 헤리티지)가 바로 나에게 인도네시아를 바로 알게 해준 단체이다. 헤리티지에는 의외로 나이 많은 외국인들이 참 많다. 그들은 열심히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큰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다니면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체험하기를 즐긴다. 프랑스인들과 네덜란드인들은 특히 오지 탐험을 겁내지 않고 자처한다. 마치 그들의 선조들이 세계를 누비며 외딴 곳까지 탐색했던 것처럼 그들도 탐험을 꽤 좋아한다. 헤리티지의 여행 그룹은 대부분 그들이 이끌고 주도한다.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박물관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곳이 바로 헤리티지이다. 헤리티지는 박물관과 같이 문화 유산을 보전하는 단체를 지원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증진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헤리티지가 국립 박물관을 지원하고 가이드를 파견하는 일은 헤리티지가 생긴 초창기 때부터 해 온 것이다. 헤리티지에서 양성해낸 투어가이드들이 정기 영어 투어를 지금도 한 달에 12번 정도한다.
주위에 있는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한 기회에 접한 박물관 공부는 어떤 다른 공부보다 값지고 즐거운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박물관 공부란 다름아니라 “국립박물관 투어 가이드 영어 트레이닝 워크삽 3개월 과정”을 말한다. 헤리티지에서는1년에 한번 9월에 영어 트레이닝 코스를 마련해 놓고 박물관 자원봉사자를 양성한다. 대략 12~13명의 트레이닝 참가자를 미리 신청 받아 교육에 임하게 하는데, 워크삽이 진행되는 3개월 동안 두 번 이상 빠지게 되면 자동 탈락된다. 교육과정에 들어가 있는 기간 동안은 교육 자료가 워낙 방대하여 읽고 배울게 너무 많아 다른 데 한눈을 팔 시간이 없을 정도이다. 워크삽에 필요한 자료를 헤리티지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수정 보완해왔는데, 몇 년 전에 자원봉사자들의 피땀 어린 정성과 고생 끝에 만들어낸 교정본은 깔끔하게 사진과 함께 정리되어 있어 보기에도 참 좋다.
배우고 가르치는 데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이것만큼 국제적이고 헌신적인 면에서 독특한 곳은 없었던 것 같다. 국제적인 이유는 회원들의 국적이 다양해서 유럽, 중남미, 미국,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 모여있기 때문이고, 헌신적인 이유는 강사로 나서는 사람이나, 강의를 듣는 사람들 또는 트레이닝을 이끄는 리더 모두 자원봉사자들이라서 워크삽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하며 희생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매주 전시관을 소개하는 강의에는 엄선된 분들이 강사로 나오는데 모두들 상당히 수준 높고 멋진 분들이다. 하루에 2시간 동안 한 전시관을 돌면서 유물 설명을 하는데,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해오는지, 강의가 아주 열렬하고 흥미진진해서 겨우 13명의 훈련생이 듣기에 정말 아깝고 송구스러울 정도이다. 강사로 선임된 분들은 헤리티지 회원 중에서 몇 년 동안 스타디 그룹이나 투어 파트에서 문화와 역사를 익히고 공부해온 베테랑들이다. 그분들의 강의를 듣고 있다 보면, 대단하고 위대한 인류와 문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무궁무진한 역사의 진실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또한 헤리티지의 앞서간 선학들의 모든 역량이 축적된 알짜배기를 배운 것 같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국립박물관에서 영어로 자원 봉사 활동해 온 지 6년 차 정도 되었다. 헤리티지에서 국립박물관을 지원하고 매달 자원 봉사자를 파견해 온지 40여 년이 지났으니, 나의 경력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동안 국립 박물관은 엄청나게 환골 탈퇴를 해왔고, 구관 신관까지 다 합쳐서 전시관이 17개가 넘어서면서 얼마나 위풍당당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훌륭해졌다. 2007년에 신관을 새로 증축하여 4층 건물에 보물관과 도자기관, 선사 시대관 등을 추가로 보유하게 되었으니 박물관을 걸어서 다 돌아보는 데는 세 시간 이상이 걸린다. 현재는 한국어투어가 고정되어 있어서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행해진다. 물론 일본어로 진행되는 투어도 한 달에 네 번 있고, 프랑스어 투어도 한 번 있다.
그 동안 내가 단순히 국립박물관의 유물만을 공부한 것은 아니다. 박물관의 유물을 하나 하나 공부하면서 점차 유물 속에 담긴 의미와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국립 박물관에는 15만개 이상의 유물이 있는데, 지역뿐 만 아니라 시대별로 이들 유물을 꿰차고 연구하려면, 역사 전반에 대한 고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투어 경력 2년 만에 헤리티지의 스타디 그룹 ‘역사 팀’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인도네시아 역사를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헤리티지는 원래 문화와 역사를 배우고 익히며 심도 깊게 공부하는 곳이라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스타디 그룹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History of Indonesia”스타디 그룹은 당시 대략 10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국적이 다양한 남녀노소가 모여있었다. 시대별로 인도네시아 역사를 10부분으로 나누어 모두들 발표할 부분을 정해놓고 준비를 한 다음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발표회 겸 모임을 가졌다.
그때 내가 맡아서 발표한 시대는 “스리위자야”였다. 6세기에서 12세기 정도까지 수마트라 남부의 빨렘방을 중심으로 서부 자바와 칼리만탄 등 인도네시아뿐 만 아니라, 말레이지아 반도의 해안 지역 전체를 영토로 삼았고 베트남과 캄보디아까지 기지국을 세워 동남아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대제국이 바로 스리위자야이다. 그 나라는 동남아시아를 통틀어 당대에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다. 스리위자야라는 말 자체가 “영광스러운 승리”라는 뜻을 지녔다. 스리위자야 시대를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거대한 위용에 놀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에 영광스러운 빛나는 승리의 역사를 지닌 인도네시아가 오늘 날에는 빛을 못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또한 헤리티지 속해 있으면서 공부하는 나이 많은 외국인들을 보며 많이 놀라기도 하고 감탄을 하기도 했다. 나이가 거의 60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공부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남의 나라의 유물과 문화를 나의 것처럼 배우고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본받을 만하다. 이러한 작은 활동이 밑거름이 되어 나라 간의 신뢰와 우정이 쌓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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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공부.doc (45.5K)
9회 다운로드 | DATE : 2014-12-30 20: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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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좋은하루님의 댓글
좋은하루 작성일
인도네시아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글들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헤리티지님의 댓글의 댓글
헤리티지 작성일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제가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함 용기를 내서 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