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최악 순간 지났다” ... 실물경제도 내년 봄 바닥 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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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다시 그리스를 보듬었다. 27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재무장관들이 그리스에 구제금융 437억 유로(약 61조5000억원)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리스가 긴축 목표를 채우지 못해 올 3월 이후 8개월 넘게 지급이 미뤄진 구제금융이다.
그 사이 그리스는 국가 부도 위기에 몰려있었다. 단기 국채를 팔아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유럽 재무장관들은 437억 유로 가운데344억 유로(약 48조원)를 은행 자본 확충과 정부 예산 충당을 위해 다음 달 13일 지급하기로 했다. 나머지 93억 유로(약 13조원)는 그리스의 긴축재정 이행 여부를 고려해 내년 1분기 중 집행하기로 했다. 또 이자 삭감과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을 통해 그리스의 국가 부채도 2020년까지 400억 유로(약 56조원)를 줄여 주기로 합의했다.
합의안 도출까지는 진통이 극심했다. 재무장관들은 10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다.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의 반대가 거셌다. 결국 합의가 도출된 것은 열쇠를 쥐고 있는 독일이 다시 한 번 그리스 편에 서기로 한 덕분이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인 셈이다.
유럽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네빌 힐 이사를 인터뷰했다. 마침 그는 ‘글로벌 경제 최대변수’인 유로존 상황을 국내기관투자가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 중이었다.
●독일 등이 왜 다시 그리스를 지원했을까. (godik,tebal)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면 유럽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이 여전히 높다. 자본 이탈이 가장 두려운 사태다. 국채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리스에 추가 지원은 없다고 큰소리치는 독일정치인이 많았다. (godik,tebal)
“그리스의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봐야 한다. 유럽 지도를 펼쳐 그리스 주변 상황을 한 번 봐라. 그리스는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냉전시대엔 그리스가 방파제였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godik,tebal)
“지중해 지역의 지도를 보면 그리스는 시리아 등 아랍 지역과 아주 가깝다. 유럽연합(EU)의 전초기지인 셈이다. 키프로스도 비슷한 위치다. 이곳도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고 있다. 키프로스와 그리스는 서유럽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아주 중요한 위치다. EU와 미국이 쉽게 포
기할 수 없는 곳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한국을 지원한 배경에 군사적 이유도 있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북아요충지이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이 경제위기 때문에 붕괴하는 것을 미국이 좌시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리스 국민이 스스로 유로존 탈퇴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godik,tebal)
“현재 그리스 탈퇴(그렉시트) 가능성은 작다. 20% 정도다. 여전히 그리스인들은 유로존에 남아 있으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스인들은 이미 실질 임금이 대폭깎이는 고통을 감내했다. 여기에다 가치가 떨어질 게 뻔한 화폐(드라크마)가 부활한다면 재산조차 줄어든다.”
●그리스 경제를 위해선 탈퇴가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godik,tebal)
“그리스 정부와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이자 비용을 생각해 보라. 그리스가 유로화 대신 옛 화폐인 드라크마를 부활시킨다면 금리가 치솟을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그리스인들에게 치명적이다.”
●그리스 집권 연립정부가 붕괴하면 탈퇴가 현실화되지 않을까. (godik,tebal)
“현재 연립정부는 중도 우파인 신민당과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사회당, 민주좌파로 구성돼 있다. 유럽의 지원이 끊기면 연립정부는 즉시 붕괴할 수 있다. 곧바로 반(反)긴축 정당이 집권하며 유로존 붕괴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 지급이 결정된 바로 그날(27일) 또 다른 유로존 사태가 불거졌다. 실물경제의 위기다. 그날 오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유로존 실물경제 위기를 경고했다.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피에로 카를로 파도안은 “붕괴 압력에 시달리는 유로존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그러면 위기가 국경을 넘어 빠르게 전염되고 세계 소비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OECD는 경고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와 내년 유로존 경제성장률을 낮췄다. 올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1%에서 -0.4%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은 기존 0.9%에서 -0.1%로 조정했다. 파도안은 “유로존 침체 때문에 이머징 국가들이 선진국들보다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등에 좋지 않은 얘기다.
●유로존 경제가 정말 어려운가. (godik,tebal)
“두말할 것 없이 침체에 빠져 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인다.”
●무슨 말인가. (godik,tebal)
“내년 초에 유로존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년 봄께 침체 탈출이 시작된다. 금융시장 측면에서 보면 유로존 위기의 가장 파괴적인 국면은 지났다. 실물경제도 올해 말 최악의 순간을 지날 것으로 예상한다.”
●근거는 무엇인가. (godik,tebal)
“올여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마리오 드라기가 채택한 정책을 보라. 그는 회원국 국채를 무제한 사들일 수 있는 길을 열었다. ECB가 공격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나서게 됐다. 국채와 모기지 연계 채권을 마구 사들이는 미국과 영국의 중앙은행처럼 말이다.”
●ECB도 양적완화(QE)에 나선다는 얘기인가. (godik,tebal)
“ECB가 꼭 양적완화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버팀목으로 구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ECB의 최대 주주인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이 딴죽을 걸지 않을까. (godik,tebal)
“분데스방크가 ECB 드라기 총재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드라기는 정치적으로 잘 처신해 분데스방크 반대를 극복하고 회원국 국채 매입을 가능하게 했다.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도 드라기를 지지하고 있다.”
최근 브릭시트(영국의 EU 탈퇴) 가능성이 솔솔 제기되고 있다. EU의 중장기 예산안이 영국의 강력한 반대 등으로 합의되지 않아서다. 실제 브릭시트가 벌어질까. 영국출신인 힐은 “영국이 EU를 떠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왜 그런가. (godik,tebal)
“영국인들 가운데 EU를 지지하는 비율이 23% 정도다. 당장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EU 탈퇴가 결정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영국의 일반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EU 틀 안에서 얻는 이익이 만만찮다. 이를 포기하고 EU 탈퇴로 가는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2~3년 동안 탈퇴를 두고 영국 내에서 논쟁이 비등할 듯하다.”
●영국인들이 EU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godik,tebal)
“현재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수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재정이 좀 더 통합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 단일 금융감독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경제협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그런데 EU 회원국이면서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은 영국은 현재와 같은 느슨한 통합을 더 좋아한다.”
유로존의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맹주인 독일의 탈퇴다. 독일 내엔 여전히 반(反)유로 정서가 상당하다. 독일 국민 가운데 적잖은 사람이 여전히 독일 마르크화를 쓰고 있다. 마르크-유로의 공식 교환비율이 1대 1이고 여전히 시중은행에서 교환 가능하다. 여차하면 독일인들이 유로화를 버릴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독일이 유로존을 떠날 가능성은 없는가. (godik,tebal)
“독일 정치인들이나 일반 시민이 감정적으로 그런 주장을 할 순 있다. 하지만 스위스 프랑 가치가 최근 몇 년 사이 어떻게 됐는지를 보면 왜 독일이 유로화를 포기할 수 없는지를 알 수 있다.”
●부활한 독일 마르크화 가치가 급등한다는 얘긴가. (godik,tebal)
“그렇다. 스위스 프랑 가치가 급격히 올라가는 바람에 이 나라 수출 경제가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유로존 내 최대 수출국인 독일이 유로존을 탈퇴하고 옛 마르크화를 부활시킨다면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독일 수출품의 가격이 급등한다. 독일 기업인들, 특히 수출 기업인들이 유로화를 강
력히 지지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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