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 퍼붓기 추가에 코스피원화값 동시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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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 매달 450억 달러 더 풀기로
한은, 기준금리 연 2.75% 동결
글로벌 통화전쟁이 한층 더 가열됐다. 미국이 추가적인 돈 퍼붓기에 나선 탓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2일(현지시간) 시중에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추가 ‘양적 완화(QE) 정책’을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 9월부터 매달 400억 달러어치의 주택담보부채권(MBS)을 사들이는 3차 양적 완화를 하고 있다. 연준은 내년 1월부터 추가로 매달 450억 달러씩 장기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다. 내년 한해에만 채권대금으로 모두 1조200억 달러(약 1100조원)를 시중에 풀겠다는 얘기다.
연준이 내건 명분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operation twist)’의 종료다. OT는 지난 6월부터 매달 450억 달러씩 단기채권을 팔고 장기채권을 사들여 장기금리를 안정 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올해 말로 이 ‘작전’이 끝나면 장기채 금리가 뛰어 경기 발목을 잡을 우려가 크다. 이에 연준은 OT를 연장하는 대신 양적 완화 확대를 택했다. 단기채를 장기채로 바꾸는 OT는 통화량을 늘리지 않지만 돈을 더 찍어내는 양적 완화는 직접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다. 증권가에서 이번 조치를 ‘QE3 확대’가 아니라 ‘QE4’라고 평가하는 건 이 때문이다. 벤 버냉키 Fed의장은 이날 “만약 요술지팡이가 있어서 내일 당장 실업률을 5% 밑으로 낮출 수만 있다면 주저 없이 그렇게 할 것”이라며 경기 활성화 의지를 강조했다.
연준은 제로금리 기조도 2015년 중반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초저금리와 통화 증발로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울 것이란 지적이 일자 경기부양 조치에 ‘실업률 6.5% 혹은 물가상승률 2.5%’라는 ‘모자’를 씌우기로 했다. 실업률이 6.5%를 웃돌거나 물가상승률이 2.5%를 넘지 않는 한 경기부양 조치를 지속하겠다는 얘기다. 실업률이 6.5%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건 2015년 중반은 돼야 한다는게 연준의 추산이다.
그러나 버냉키의 도박에 벌써부터 공화당이 날을 세우고 있다. 공화당은 연준의 경기부양 조치가 버락 오바마 정부로 하여금 허리띠를 졸라매게 하기보다 계속 군살을 찌운 주범으로 보고 있다. 금리를 억지로 눌러 정부가 싼값에 돈을 빌려 쓸 수 있게 한 데다 연준이 직접 국채를 매입해줘 정부가 마음 놓고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도와줬다는 것이다.
연준의 이날 발표 후 주가가 급등하자 버냉키가 “연준이 경기부양에 발벗고 나선 건 아니다”며 한발 물러선 것도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버냉키가 실업률은 떨어뜨리지 못하고 물가불안만 자극한다면 ‘헬리콥터 벤(헬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할 사람이란 뜻)’이란 그의 별명도 퇴색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국내 증시는 반색했다. 코스피는 두 달 반만에 2000선을 회복했다. 외국인이 11거래일 연속 매수에 나서며 이날 하루에만 5000억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상승했다. 글로벌 경기가 회복되면 이 지역 수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됐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달러를 풀겠다는 연준의 결정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말끔히 없애줬다”며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로선 글로벌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늘어나는 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원화가치 상승은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원화가치는 이날 달러당 2원 내린 1073원에 거래를 마치며 지난 6일 이후 5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특히 일본 엔화와 비교한 가치가 치솟고 있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뮬레이션 결과 원-엔환율이 5% 하락하면 연간 수출액이 최고 3%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수출주력 품목인 자동차 등의 경우 일본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면 곧바로 가격 조정에 들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리정책을 펴기도 난감해졌다. 한국은행은 이날 12월 기준금리를 연 2.75%로 동결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당분간 원화 값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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