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에서 시를 읽다 (21)
본문
국수
이 근 화
마지막 식사로는 국수가 좋다
영혼이라는 말을 반찬 삼을 수 있어 좋다
퉁퉁 부은 눈두덩 부르튼 입술
마른 손바닥으로 훔치며
젓가락을 고쳐 잡으며
국수 가락을 건져 올린다
국수는 뜨겁고 시원하다
바닥에 조금 흘리면
지나가던 개가 먹고
발 없는 비둘기가 먹고
국수가 좋다
빙빙 돌려가며 먹는다
마른 길 축축한 길 부드러운 길
국수를 고백한다
길 위에 자동차 꿈쩍도 하지 않고
길 위에 몇몇이 서로의 멱살을 잡고
오렌지색 휘장이 커튼처럼 출렁인다
빗물을 튕기며 논다
알 수 없는 때 소나기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소주를 곁들일까
뜨거운 것을 뜨거운 대로
찬 것을 찬 대로
출처: 차가운 잠 (문학과 지성 시인선)
NOTE********
순전히 국수가 먹고 싶어서 이근화의 시를 읽는다. 이토록 가볍고 순정한 이유가 있을까. 오렌지 색 휘장이 커튼처럼 펄럭이는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으면 ‘영혼’이라는 말을 밑반찬 삼을 수도 있어서 좋다는데, 나는 그냥 멸치 국물 우려서 신김치만 송송 썰어올리고 TV드라마 보면서 국수를 먹고 싶다.
영혼의 문제 같은 건 하나도 떠올리지 않고, 드라마 주인공들이 언제 다시 만나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지만 애를 태우고 싶다. 같이 만나서 국수를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들이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거들랑 국수에 소주를 곁들이라는 충고도 해 주고 싶다.
이때쯤 비가 솨아솨아 내리면 더 좋겠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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