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잎과 질경이 장아찌, 그리고 천년초 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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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다섯 부부 <길동무> 고국 여행기 2
▲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으로 본 풍경
“이 금빛 하늘까지 닿을까? 외계인들이 황금 쓸어 담으러 오겠네.”
벼가 무르익는 한국의 가을 들판은 말 그대로 황금빛이었다. 아니 황금빛보다 더 선명했다. 첫 탐방지 정읍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단풍은 아직 이른데 들판은 그야말로 출렁이는 금빛 잔치다. 이미 금빛을 거둬들인 논도 더러 있다. 머지않아 텅 빈 황량한 들판, 삭풍이 내달리는 눈 덮인 하얀 대지가 되겠지. 옆 논에선 모를 내고 옆 논에선 탈곡하는 인도네시아 들판 모습이 뇌리에 겹친다. 참 달라도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 고속도로 이름이 뭐지?”
서울에서 얼마나 달렸을까? 충청도 지방을 지나는데 충청도 출신 복나눔 씨가 혼잣말처럼 묻는다. 급변하는 한국 도로 실상을 외국사는 교포들이 익히기엔 버거운 일이다. 쌩쌩 달리는 차창으로 산하가 끊임없이 스친다. 연이은 산봉우리와 흘러내린 능선, 골골이 자리 잡은 오순도순 마을들이 빠르게 뒤로 흐른다. 잘 정비된 들판에 흐르는 살진 가을 찬가, 역시 정겹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길동무의 고국이다.
근데 이리 좋은 나라에서 왜 더러, 아우성이 들릴까? 먼 타국까지 반갑잖은 소식들이 찾아올까? 멀리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는데 왜 미운 뉴스가 툭툭 불거질까? 눈으로 스칠 때면 고국은 이리 정감 덩어리인데, 가까이 어우러져서는 왜 서로 생체기를 낼까? 간간이 들리는 ‘헬조선’, 뭐가 문젤까?
원인도 많고 많으리라. 에라 공자를 빌어 딱 한 마디 하자. ‘정치’다. 정치 때문이다. 정치가 희망인지라 정치가 절망이다. 선거 때면 민본주의를 외치다가도 돌아서면 달라지고 마는 아 계륵 같은 정치, 정치가에게는 정치가 생명이겠는데 다수의 민초들에게는 답 없는 답, 그러니 이참에 내식으로 한소리 하자.
접자. 정치에 대해 기대를 접자. 극과 극을 서로 연마해서 조화해야 하는데, 밋밋한 것 마저 쇠꼬챙이처럼 만들지 않는가. 속담에 “바다는 메워도 사람 욕심은 못 메운다.” 했다. 정치인들이 마음을 비울 가능성을 어디서 찾으랴. 민초로서 그들에 대한 희망을 비우기가 더 쉬우리라. 다 밀쳐놓고 일상을 벗어놓고 떠나왔으니 다음 시간과 장소만 기대하며 지금을 즐기자. 황금 들판 바라보듯 사랑으로만 세상을 보자.
여행을 하다 보면 마냥 깊어지는 곳이 있고 부담 없이 흥겨운 곳이 있다. 물론 언짢은 곳도 없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는 길동무 고국 여행 첫 탐방지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토속적인 것 좋아하고 길게 묵은 시간, 역사가 꽃이 된 곳을 가장 즐기는 길동무들이기에.
▲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 앞 마당
▲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의 장독대들. 간장과 된장을 비롯한 갖은 음식 재료가 든 독들도 많았다.
우리누리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두월리가 소재다. 폐교된 두월초등학교를 곡절 끝에 한 서예가가 사들여 너르고 긴 안목으로 진즉부터 가꿔온 곳이다. 그가 서예가 중하(仲何) 김 선생이다. 폐교가 임자 제대로 만났고, 중하 선생 또한 생명력 꿈틀거리는 학교로 꾸며 복을 잘 짓고 있다.
“우리누리는 손님을 가려 받는데요.”
우리누리에 다다를 무렵 내가 아는 체를 했다. 2년 전 두 밤을 묵었을 때 안 사실이다. 특히 학생들에게는 그 조건을 분명하게 한다고 했다. 그 하나가 선비들의 예절, 생활 습관, 의식 등에 관한 강의 경청이다. 또 하나가 식사를 하기 전엔 앞에 놓인 밥상을 창작한 우리누리 안주인 도향(稻香) 여사로부터 밥상의 실체를 이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외에 외부로부터 초청된 강사로부터 판소리나 국선도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 선비문화체험 교육관에서 중하 김 선생의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들
▲ 학교를 떠나 선비문화체험학교에 온 학생들. 투호놀이와 굴렁쇠 굴리기 등 전통 놀이를 즐기고 있다
길동무들에게 그 조건을 충족할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체험하기에는 우리누리 체류 시간 배정이 너무 짧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근데 이게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 방문객들도 꼭 체험해볼 만한 거다. 하나 더 내가 느낀 것은 우리누리는 잠시 들렸다만 올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잠자리가 내 집 편안함만이야 할까만 밤을 지내는 것은 잠만 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숙박을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몇 가지가 그곳에 살포시 숨어 있다.
우리누리는 곳곳에 서예 맛이 물씬하다. 물론 즐비한 서예 작품 때문에 선비문화체험학교가 아니다. 선비문화란 게 어디 ‘이거다’하고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한구석에 놓인 돌덩이 하나에서도 조촐하게 소리 나지 않게 표시 나지 않게 스며있다. 수수하고 정갈한 곳이며 사람의 향기도 상긋한 곳 오직 내밀하게 느끼는 사람의 몫이 되리라.
▲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의 밥상
▲ 밥상에 대해 설명하는 도향 여사. 사진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 선비문화체험학교 우리누리의 후식
우리누리의 특징 중 특징이라면 역시 상차림이다. 음식에 깃든 정성이 밥상 앞에 앉는 길동무들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했다. 푸짐하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뭐 깔끔한 창작품 밥상을 받았다고 할까? 딱 선비 밥상이 이것이 거니 싶었다. 조촐하기로 치면 더 할 것이 없을 반찬들, 이름도 아름답고 새로웠다. 가죽 잎 부각, 뽕잎 장아찌, 단풍 깻잎 장아찌, 질경이 장아찌 등.
“음 이게 뭐예요? 저건 또 뭐고요?”
여성 길동무들의 연이은 질문으로 화장기 하나 없이도 아름답고 건강미 넘치던 안주인 도향 여사가 바빴다. 반주로 나온 가양주는 이름이 신선고본주(神仙固本酒)라 했다. 후식으로 제공된 소나무 꽃가루를 활용한 송화다식, 한약재 숙지황을 활용한 숙지황 다식, 천년초 다식, 땅두릅과 쑥을 활용한 다식 등 별종에 별미 바로 그거였다. 몇 차례나 리필이 가능했던 쌍화차 맛은 또 뭐랄까? 하여튼 이 모든 것들은 왜 공관들이 특별하고 귀한 행사 시 요리와 상차림 담당으로 도향 여사를 초청하는가를 여실히 증명했다.
▲ 중하 선생의 서재이자 다실에서 음악감상
은근함이 물씬한 곳은 전시장이었다. 중하 선생의 작품과 작고하신 그의 부모님의 특별한 유품들이 띄엄띄엄 배치된 별 꾸밈이 없는 작은 전시관이었기에 더 그윽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잠시지만 귀도 호강했다. 서재이자 다실로도 활용하는 장소에서 길동무들은 편하게 둘러앉아 보기 드문 진공관 앰프에서 튕겨나는 음표들에 잠시 취했다.
▲ 별식 후 별 시간 소비하지 않은 넘치는 힘으로 떡메도 휘둘렀다.
잘 찐 밥을 돌절구에 넣고 척 처억 척~ 너도나도 돌아가며 떡메를 내리쳤다.
▲ 떡메치기 포즈에 들어간 길동무 복 나눔 씨. 골프에 일가견이 있는 그, 영락없이 골프 아이언을 칠 때의 포즈로 떡메를 들었다
별식 후 별 시간 소비하지 않은 넘치는 힘으로 떡메도 휘둘렀다. 잘 찐 밥을 돌절구에 넣고 척 처억 척~ 너도나도 돌아가며 떡메를 내리쳤다. 그리고는 그 말랑말랑한 콩고물 향 가득한 인절미를 도우미 아주머니가 썰어놓기 바쁘게 연신 냠냠 입으로 밀어 넣었다. “아이고, 배불러~”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여행지로는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소박한 곳이 좋다. 자연과 사람 이야기가 역사가 된 곳이면 더욱 좋다. 고집이 작가 정신으로 드러났다면 불편함보다는 이 또한 방문자들의 삶 창작에 좋은 참고가 아니랴. 이에 별나고 맛깔난 음식이 더한다면 집 떠나 고생 아니다. 호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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