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에서 시를 읽다 45
본문
눈물의 중력
신철규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붙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출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NOTE*******************
“나의 상처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상처가 지워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증오해야 할 대상은 상처받은 사람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타인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들이다.”
2011년 시인이 조선일보 신문문예 당선소감에 쓴 글의 일부분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의 울음이 아직도 그치지 않았기에, 그의 첫 시집에는 그들과 함께 울고 있는 시인의 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한 사람이 엎드려 울고 있다.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허리가 펴지지 않도록 엎드려서 우는 자가 이 땅에는 아직도 많다. 세월호의 엄마들이, 4.3학살의 가족들이, 내전을 겪는 시리아의 아이들이 흘린 눈물들이 돌처럼 굳어가고 있다. 아무런 죄 없이 시대의 십자가에 못 박힌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오래 같이 울어줄 수 있을 것인가.
시인은 시를 통해 그들과 울고 있다. 당신의 울음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다.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는 처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집 곳곳에서 함께 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눈물로 가득한 신철규 시인의 첫 시집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시인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를 정의 내렸다. 시인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우는 자여야 한다. 그 슬픔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울면서 지켜보는 자여야 한다.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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