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바에서 시를 읽다 62 - 인도네시아 현대시 특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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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에서 시를 읽다 62 - 인도네시아 현대시 특집 2>
: 2018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을 자축하며 한 달 동안 인도네시아 현대시 특집을 게재한다.
랑데부
시 / 셀리 데스미아르티
번역 / 채인숙, 노정주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의 가슴에 내 시간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당신의 꿈으로 나를 데려 가요
당신은 아는가요,
나중에 물고기가 되어도 나는 좋아요
나에게 확신을 주세요, 우리가 헤엄치며 바다의 잔물결을 그릴 수 있다고
인어의 미소와 돌고래의 춤을 낳을 수 있다고
태양이 아침을 차려내고,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줄 것이라고
벌써 20년이 지나버렸어요
우리는 물고기가 되어, 서로 사랑하지요
해변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출처: 현대시학 2018 7,8월호)
* 시인 약력:
셀리 데스미아르티는 1984년 12월 19일 반둥에서 출생하였다.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인도네시아 문학을 전공했다. <태양의 아침_Pagi Matahari>외 9권의 시집과 동인시선집을 출간하였다. 인도네시아 여성작가협회(KPPI)에서 활동 중이며 뿌르와카르타 지역문학회 (Sanggar Sastra Purwakarta)를 설립하고 지역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뿌르와카르타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NOTE***************
인도네시아 현대시 특집의 두번째 시인은 뿌르와카르타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학 활동에 매진하며 9권의 시집을 낸 젊은 여성 시인이다. 셀리 데스미아르티 시인은 이슬람 사회에서 시를 쓰며 살아가는 여성 시인들은 어떤 사회적 시선과 직면하며 시를 쓸까 몹시 궁금해 하면서도, 분명히 남다른 편견과 억압을 받고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던 나의 의문을 시원하게 무너뜨려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문학에 눈 뜨고 문학과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지역 문학 운동을 하며 도서관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꼐 시를 쓰고 문학을 향유하도록 돕는다. 또한 그 시들을 모아 지역 시선집을 발간하는 등 당찬 문학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시의 물결과 시민들의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그녀의 수필 속에서,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자발적인 문학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 설레고 벅찬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인도네시아 서민들이 어떻게 문학을 향유하며 살아가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여긴다.
셀리 데스미아르티의 시 <랑데부>를 읽은 한국의 고형렬 시인은 첫 연에서부터 한국 시인들의 뇌리에 오래 남을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만 얻는다면 나는 물고기가 되어도 좋다고 말하는 이 아름다운 열정의 시인은, 그 사랑의 힘으로 함께 바다의 잔물결을 그리며 인어의 미소와 돌고래의 춤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강렬하고 초자연적인 상상력이다.
셀리는 무슬림 여성이니 수줍고 종교적이며 지극히 여성적인 시를 쓸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나는, 그녀가 보낸 시를 읽자마자 나도 모르게 긴 숨을 몰아 쉬었다. 자연과 인간의 삶을 연결 짓는 대담하고 밀도 있는 상상의 영역도 놀라울 뿐더러, 첫 연부터 마지막 연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이야기를 연결해 나가는 시적인 성취도가 높은 시였기 때문이다.
먼 이국 땅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시로 발견하는 기쁨과 더불어 우리 사이에 놓인 생각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준 매력적인 시였다.
*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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