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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스티브 잡스'가 생을 다시 산다면

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일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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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손인식의 경영 탐문 27
 
 
'스티브 잡스'가 생을 다시 산다면
- 계획과 실천 그리고 변화, 우빈 양승식의 자기 경영 -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그의 나이 56세, 하던 일에서 깔끔히 손을 뗐다. ‘은퇴’하면 대부분 쓸쓸한 뒷모습을 떠올린다. 은퇴란 말 자체를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오래전부터 은퇴를 예정하고 준비했다. 대부분 우연처럼 맞닥뜨릴 은퇴를 그는 기다렸다. 지금까지 수고한 자신에게 은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차츰 펼쳐질 그의 인생 프로젝트에 관한 행복한 기대이리라.
 
그는 꼭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사람이다. 자세히 살펴야 진가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분수를 지킨다. 역할에 맞게 행동한다. 경영자로서 일군 성과도 탄탄하다. 자녀 교육 결과도 출중하다. 서예 골프 등 취미생활로 이룬 성과도 놀랍다.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그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자청해서 그의 직원이 된 사람도 있다. 그를 멘토 삼은 멘티도 여럿이다. 이 의미들이 뭔가? 과연 그는 어떤 세계를 지녔기에.
 
▲ 우빈 양승식 사단법인 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
 
“저는 은퇴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입에 올리기에 주제넘은 단어입니다. 제 나이에 창업하는 분들 많잖아요? 부지런히 일하는 분들 곳곳에 계시고요.”
 
그는 은퇴 이야기를 거듭 사양했다. 그래 맞다. 그의 물러남은 은퇴가 아니다. 은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변화’라 하자. 지인들은 바로 그의 변화에 놀라고 있으니. 그의 변화는 그가 정한 순서이므로. 매우 속 깊은 단행이요 놀라운 용기이므로. 아무나 범접할 수도 흉내 내기도 어려운 용기이므로. 궁금하다. 과연 앞으로 그의 명함에 어떤 직함이 등장할까? 앞으로 쓸 그의 직함은 얼마나 다양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것일까?
 
그간 그의 일상은 놀랍도록 체계적이었다.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은 반드시 실천했다. 그러므로 그의 변모란 때에 맞춘 실천이다. 한때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는 말 널리 회자했다. 준비한 이들의 이야기이리라. 계획을 실천한 용기를 가진 이들의 확신이리라. 곧 우빈의 변화도 그 범주라는 의미다. 나이 오십 대의 자력 변화에 관한 필자의 글 소문을 기대하셔도 좋으리라.
 
28년 전의 계획
 
양승식(이하 아호 우빈), 그는 전북 남원 출신이다. 중학교 때에야 전기 불빛 덕을 본 시골뜨기다. 대학까지 모두 지방에서 마쳤다. 이른바 지방 파다. 서울 거주는 취업 이후다. 우빈은 공업고 2학년을 마치고 뜻이 있어 다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 입대로 의무를 마쳤다. 복학 후 졸업을 앞두고 취직 시험에 합격했다. 건영그룹이다. 그 때 나이 28세, 그는 계획을 세웠다. 28세에 일을 시작했으니 28년간만 일 하겠다 였다. 다만 일할 기간을 정한만큼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였다.
 
“집과 회사가 교통편으로 1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입사 후 회사 앞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만 집엘 갔지요. 6개월을 그렇게 했습니다. 고시원 생활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복학 후 졸업 때까지 2년간 고시원 신세를 졌었거든요. 지방대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를 위해서는 자격증밖에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을 절약해야 했죠. 학교 근처 고시원 생활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졸업전까지 3개의 1급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취업에 결정적 무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앞에 사니 동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출근하면 5대 신문을 읽었습니다. 부서장의 관심사인 건설, 아파트분양, 유통 관련 기사에 빨간 줄을 쳐서 부서장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2년 정도 그렇게 했습니다. 퇴근도 대게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했습니다. 저 땜에 경비아저씨는 늘 울상이었죠.”
 
회사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일이 즐거웠다. 좋은 건물에 멋진 자리도 주고 새로운 일도 주니 감사했다. 대가까지 적지 않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을 즐기는 우빈에게 회사는 신규 사업 관련 일을 맡겼다. 좋은 경험의 연속이었다. 변화가 닥쳤다. IMF 때다. 건영 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주) 일신이다. 인도네시아에 설립한 법인 근무였다. 봉재회사 관리자가 되어 인도네시아로 진출했다.
 
경영 십 년, 그리고 무상 증여
 
“김포공항 출국장을 나서면서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8년간 법인 책임자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 PT. PPF INDONESIA를 설립했지요. 그때 계획이 10년만 경영 하자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2년이 늦어졌지만요. 당시 건물을 좋은 조건에 매입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임대를 선택했습니다. 경영 계획이 한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사업가가 아니지요. 그냥 일과 경험을 즐기는 과에 속합니다.
 
노후 준비요? 노후 준비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것입니다. 저는 경제적인 노후 대비보다는 변화에 더 무게를 뒀습니다. 제가 세운 계획이니까요. 회사를 확장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바이어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2공장 증설을 요청한 적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무엇을 위하여?’가 제 화두였습니다. 회사를 확장했다면 제 때에 손을 떼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 PT. PPF INDONESIA 임원들과 미팅
 
우빈은 분명히 밝혔다. ‘손에 쥔 것이 많으면 놓기도 힘들다’는 것을. 그의 변신이 더욱 놀라운 것은 ‘무상 증여’다. 임원 두 사람에게 운영하던 회사 모든 권한과 소유권을 무상 증여(Hiba saham)했다. 창업부터 회사에 이바지하고 성과를 낸 두 임원이라고는 하지만 어디 쉬운 일이랴. 두 임원은 조금이라도 지분을 남겨두기를 권유했다. 그러나 우빈은 깔끔하게 주고 물러났다. 뭔가를 남기면 그것이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있게 될 간섭 또한 원하는 바가 아니니. 무엇보다 우빈 자신이 추구하는 균형 있는 삶의 방해요소라 생각했다. 함께 일군 1천여 명의 직원들 퇴직금을 문제없이 정리한 것은 마음으로 나누는 마지막 인사였다. 자진해서 세무감사까지 받은 것은 새로운 경영진에 대한 우정의 표시였다. 
 
“저는 평소 생각과 실천의 바탕을 4가지로 구분해왔습니다. 급하면서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도 있습니다.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과,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도 있습니다. 저는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은 바로 거기에 달려있으니까요. 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은 늘 준비해야 합니다. 더구나 실무에서는 절대죠. 실기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이 급한 일이 됩니다. 급하면 손실이 생기기 쉽습니다. 손실이 생기면 감수해야 합니다. 경영자가 준비하고 교육하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타임매트릭스 관리야말로 경영에 꼭 필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 사무실에서 가족과 함께  ▼ 부인 아정 박순금 여사와 함께
 
 
▲ 인도네시아 한인 서예동호회 <자필묵연> 정기전(2013).
축하 방문한 중국 작가(5명), 자필묵연 회원들과 함께.
 
우빈과 필자의 교류 벌써 10여 년이다. 서예 학습자와 안내자로 만났다. 얼핏 단조롭지만, 밀도가 강한 서예술을 공동 관심사로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공부했다. 그의 철저함은 오직 서예 창작과 지도가 평생 직업인 필자에게 채찍이었다. 그는 참으로 모범 학습자다. 서예학습 시간에도 메모장을 놓지 않는다. 그런 우빈이 대한민국서예대전과 서울서예대전의 초대작가가 된 것은 당연한 순서다. 우빈은 두 대회에서 똑같이 입선과 특선과 우수상이란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출품 기간 7년여 협회에서 정한 초대작가 자격에 필요한 점수를 거뜬히 취득했다. 이런 예는 한국 서단 전체를 살펴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우빈과 필자는 별 사정이 없는 한 매주 서예 학습시간 때 만난다. 5년여 전부터는 더 자주 만난다. 필자가 사는 산골 마을 인근 골프장 안에 그가 주말을 즐길 별저(虹峴齋)를 마련한 때문이다. 따라서 주말 골프 라운딩으로 자주 조우한다. 그는 필자의 골프 코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는 티칭프로 자격증을 가졌다. 우빈은 지금 레인보우 골프 클럽 챔피언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난관을 뚫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아마추어로서 최상급 실력자임을 입증했다. 서예나 골프 실력이 어디 그냥 얻어지는 것이랴. 이 또한 우빈의 치열한 면모를 대변한다.
 
▲ ▼ ▼ 레인보우 골프 클럽 챔피언(2017, 2018)에 빛나는 우빈 양승식
 
 
 
 
▲   이웃들과 즐기는 주말 라운딩
 
우빈, 그는 스스로 단정한다. 비즈니스맨이 아니라고. 아무래도 좋다. 다만 놀랍다. 그는 세계적 명성의 스티브잡스가 죽음을 앞두고 가장 바라던 바로 그 삶을 살고 있다. 스티브잡스의 말을 새겨보자. “비즈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에 즐거움은 많지 않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한 번 잃어버리면 되찾을 수 없는 인생을 살지 말자.” 그때도 지금도 세상 사람 대부분은 스티브잡스의 그 유언을 공감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어떻게 그렇게 철저할 수가 있는가?” 우빈을 아는 많은 이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일정 부분 타고난 성정 왜 아니랴. 그러나 우빈은 철저한 노력 형에 더 가깝다.
 
“대학 시절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랭클린 코비의 저서죠.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이해가 쉽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30대 중반부터 제 삶을 온통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국리더십센터의 프랭클린 코비 플래너 교육을 이수한 이후부텁니다. 4박 5일간 교육 마지막 날 사명서를 작성할 때였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교육은 삶의 원칙과 역할을 수립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후 몇 달 동안 그 여운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영향은 제 아들과 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아이들 초등학교 때부터 플레너 프로그램을 나름 적용했거든요. 저는 한 번도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다만 스스로 목표를 정하게 하고 동기 부여에 힘썼죠.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루면 약속한 대로 상응한 보상을 했습니다. 또 하나 아들과 딸의 고등학교 졸업선물입니다. 프랭클린 코비의 플래너 프로그램을 응용한 <성공하는 대학생을 위한 7가지 습관>을 수강하게 했지요. 이 교육은 안성의 한 연수원에서 3박 4일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집중 시행합니다.”
 
▲ 아들 힘찬 군의 UC Berkeley 대학 졸업식(2016년)
 
자녀 교육에 관해서도 우빈은 빙그레 웃을 수 있다. 더하고 덜 필요 없이 아들과 딸의 현재가 그렇다. U.C 버클리 (Berkeley)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아들 양 힘찬 군은 약관 26세에 놀랄만한 대우를 받으며 세계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의 일원이 되었다. 딸 양 다솜 양 또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LG상사에 입사해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준비와 실천 그리고 경영
 
필자가 우빈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중소기업 경영 백서 발간이다. 기업의 크고 작음이 문제이랴. 업종이 문제이랴. 모두 사람의 삶 범주다. 지근거리에서 본 우빈은 분명 걸어 다니는 경영 교과서다. 우빈과 같이 오너가 자기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업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리라. 사람의 업이 아니리라.
 
“주재원 생활 8년은 제게 좋은 공부 시간이었습니다. 법인장으로서 각종 인허가, 조직관리, 세무회계 등 경영 전반에 걸친 학습이었죠. 꼭 필요한 현장 경험이 쌓였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돈을 버는 거잖아요? 법인의 이익을 위한 제 노력과 시행이 모두 제 자산이 된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모두가 제 창업의 훌륭한 디딤돌이었어요.
 
기업의 우수한 인력확보 중요성이 어제오늘 일이겠습니까? 크건 작건 어느 기업이나 핵심입니다. 저 또한 우수인력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역량이 있는 경험자라면 높은 급여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공장장 확보부터 심혈을 기울였죠. 또한 현지인 부서별 반장급 직원들 확보에 큰 공을 들였습니다. 현장에서 공장을 끌고 가는 주역들이니까요.”
 
그는 필요한 경우 직접 인재를 찾아다녔다. 확보한 명단의 인물을 만나기 위해 거리와 시간도 가리지 않았다. 함께 일하고자 할 때는 회사의 비전을 서슴없이 밝혔다. 현지인이라도 핵심인원은 직접 면접했다. 현지인 직원 검증이 필요하면 집까지 방문했다. 그리고 그들에겐 강력한 권한을 주었다. 부서별 인력 채용이다. 일할 때는 그들을 위축시키는 일방적 지시는 가급적 삼갔다. 관리자의 지원과 현지인 간부의 능동적 조화가 늘 그의 목표였다.
 
관공서 일 관련해서도 직접 나섰다. 회사를 설립하면서 외국인이 나서면 더 곤란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참고만 했다. 이민국, 세무서, 각종 관공서 방문을 즐겼다. 그들도 우빈의 솔선수범과 성실함을 인정했다. 창업 후에는 그들이 오히려 도움을 줬다. 곤란함을 피하기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즐긴 결과다.
 
“창업 초기 주) 한세실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를 믿고 일을 맡겨줬죠. 제가 경영에서 손을 뗄 때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보답은 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회사와 제가 있기까지 한세실업의 덕이 절대적입니다.
 
저는 항상 관계를 중시합니다. 무역회사에서 지정한 아웃소싱업체는 물론 동종 협력 업체들도 자주 방문했습니다. 원만한 관계유지는 만남이 최선이니까요. 이런 작은 노력이 문제 발생 시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봉제 산업은 크고 작은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환경입니다. 평소 대비해야 해요.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 의지가 강해야 합니다. 해소 방법은 반드시 있으니까요.”
 
그에겐 에피소드가 참 많다. 때론 전쟁을 치르듯 했다. 때론 퍼즐을 맞추듯 해야했다. 오더가 넘칠 때는 밤을 세워야했고, 불경기 때는 일감을 찾아 동분서주해야 했다. 항상 대비해야 했고 양질의 품질을 유지하는 가운데 납기 출고는 한 치의 어김도 없어야 했다. 겪고 해결해야 했던 그 많은 순간들 그는 지혜롭게 섭렵했다. 그것이 다 전선의 무용담 같은 느낌이었다. 싣지 못한 그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그의 백서로 다 드러나기를 바란다.
 
▲ 레인보우 골프장 안에 위치한 우빈의 별저 홍현재(虹峴齋)
 
▲ 홍현재(虹峴齋) 현판식 자필묵연 회원들과 함께
 
▲ ▼ 홍현재(虹峴齋) 내부. 아래 벽면 사진은 사진으로 기록한 홍현재 방문자들
 
 
▲ 한국서협 이사장 인도네시아 방문 시 자필묵연의 홍현재(虹峴齋) 파티
 
‘나중에’란 말 필요하지 않아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늘 변했습니다. 사원일 때와 경영, 자식 교육 등 때마다 변했지요. 지금 추구하는 가치는 제 삶입니다.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지요. 하나의 가치 추구는 또 다른 가치를 조금씩 포기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간 아들로서 부족했습니다. 남편, 아버지, 형제, 친구 역할 어느 것도 제가 만족할 만큼 하지 못했죠. 때를 놓친 부분도 있지만, 이제라도 겉으로 급하지 않지만 안으로 중요한 일을 하면서 살려 합니다.
 
제 플랜은 70살까지입니다. 약 15년 정도 남았습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는 신이 주는 보너스 기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의지보다 흐름에 맡기려 합니다. 저는 늘 ‘후회’에 관해 생각합니다. 한 학자가 분석하기를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에 관해 후회 유형이 다르다 했습니다. 한 일은 후회가 오래가지 않는 데 비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오래 남는다 했습니다.”
 
우빈(又彬), 서예에 입문한 이후 필자가 취한 그의 아호 두 글자다. ‘본바탕과 갈고 닦음이 조화롭게 또 빛나다’라는 의미를 담아 수호했다. 우주의 빛은 가장자리가 없다. 곧 헤아릴 수 없다. 땅속엔 거대한 에너지가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색이 감춰져 있다(無邊虛空無量光 有地內藏無量色). 우주의 빛과 색은 그 에너지를 섭취하고 드러내며 즐기는 자의 것 아니랴.
 
無邊虛空無量光 有地內藏無量色(무변허공무량광 유지내장무량색)
가장자리 없는 허공에 가득한 헤아릴 수 없는 광채와
땅속에 묻힌 거대한 에너지와 색채
무술년 입추 후 4일 산나루 주인 인재 손인식 작
 
우빈은 일을 멈췄다. 필자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않았다. 즐겨 기다리기로 했다. 일을 멈췄으니 계획 더 많으리라. 어찌 하고 싶은 일만 생기랴. 우빈의 능력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들 또한 유혹이 많을 것, 다만 무엇으로 어떻게 빛날지 기대가 크다. 우빈은 ‘나중에’라는 말을 가능한 잊겠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한 일이 항공권 예약이다. 얼마 전 형수를 잃은 하나뿐인 형과 둘만의 여행을 위해서다.
 
필자가 우빈에게 기대하는 것 중엔 부부 서예전도 있다. 부창부수, 서예학습에 열중인 그의 아내 아정(雅井)과 함께 풀어낼 부부 작품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이벤트일까? 즐거운 기대를 하면서 이만 대담의 정리를 마친다. 늘 스스로 행운을 쟁취하는 우빈의 행운을 믿으며.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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