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마다 돌맞이 하는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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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보는 세상>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인재 손인식
집안 여인들이 다 모였다. 민족 대명절 추석날, 아침 상차림에 분주할 때다. 뜬금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있던 아이 울음소리가 아니다. 분명 새 생명이 터트리는 고고성이다. 그제야 돌아보니 부엌에 있어야 할 둘째 며느리가 없다. 조금 전까지 동분서주 하던 그가 제자리에 없다.
산고 낌새를 주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통증이 있는 척도 안 했다. 해산을 위해 홀로 방으로 들어간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곤 고고성으로 새 생명 탄생을 온 집안에 알렸다. 튼실한 사내아이 출산이었다. 오호 애재라! 그 시절 어머니들은 대부분 그랬다. 지금의 정서로야 이해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날 그렇게 고고성을 울린 아이가 자카르타에서 60돌을 맞았다. 만으로 59년을 살고 태어난 날을 자카르타 남부 한 음식점에서 다시 맞았다. 인생 유전이라더니 바람처럼 날고, 물처럼 시간처럼 흐르고 돌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난 그 날을 또 기념했다. 수명이 요즘 같지 않던 시절엔 나이 60이면 장수 축에 속했다. 드는 회갑이라고 잔치도 벌였다. 요즘엔 잊힌 말이다. 정식 회갑마저도 감추는 정서이니 회갑 운운은 곰팡이 덕지덕지 내려 앉은 이야기다.
사노라면 소위 껀 수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 있다. 이른 바 재밌는 세상살이 매치메이커다. 그런 이가 움직이는 곳엔 늘 사람들이 꼬인다. 다소 수선스럽다는 이도 있을 거다. 허나 살면서 왁자한 맛 없으면 뭔 재민가? 사람 사는 곳엔 사람 느낌 진해야 좋다. 혼술 혼밥 하더니 이번 추석엔 혼추족까지 많았다는 지금 세태로야 딱 필요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자카르타에서 5~6시간 걸리는 가룻에 산다. 그래서 그가 자카르타에 오는 날은 때마다 이벤트다.
그가 가까이 교제하는 이가 드는 회갑, 더구나 추석날과 겹쳤다. 그것을 안 이상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하긴 작년에도 그의 주동으로 떠들썩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년에도 같았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대가족이 모인 60년 전 경북 김천 지방 어느 집에 고고성이 터졌을 때보다 훨씬 더 떠들썩했다.
대놓고 누구 생일이니 모이자고 하지 않았다. 추석맞이 골프 라운딩을 하자고 했다. 속내 뻔히 아는데 누군들 피해 가랴. 아니 뭐가 계획되고 있나 싶어 은근히 기다렸다. 띄우는 분위기로 골프도 괜찮다. 두 팀이 모였다. 클럽하우스에서 만날 때부터 생일 축하 멘트가 오간다. 돌맞이가 골프장에 왔다고 놀림도 있다. 하늘도 도우셨을까? 모처럼 필드에 나온 돌맞이의 샷 감이 좋다. 좋은 성적이 뒤따랐다.
▲ ▼ ▼ 자카르타 남부 중심에 자리한 PONDOK INDAH C. C.
▲ 17번홀 파 쓰리에서 티샷을 준비하는 60돌 맞이 박대용 사장
한가위 달이 중천으로 잰걸음 하는 시간, 돌맞이 축하객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몇 개의 꽃다발이 연이어 돌 맞이에게 안긴다. 케이크도 겹쳤다. 떡도 몇 가지, 그리고 몇 종류의 술이 등장했다. 안주인께서 과용 좀 했을까? 맛난 요리가 연이어 상에 오른다. 타국살이들 추석날 저녁상이 이만하면 조선 시대 김천 고을 원님 추석 맞이 상보다 못할 것 없으리라.
축하의 말이 두툼하게 오간다. 건배도 겹겹으로 쌓인다. 그의 지인으로 사는 한, 그와 멀리 떨어져 살지 않는 한, 추석날이면 배 주릴 일 없겠다. 그렇다. 타국 살아도 이웃 잘 만나면 명절에도 외로울 일 절대 없다. 하여튼 원님 덕에 나팔 한 번 제대로 분다. 왁자지껄!
▲ ▼ 60돌 맞이 작은 잔치
▲ ▼ 떡과 케이크를 전달 받는 박대용 사장과 부인 홍혜은 여사
60돌 맞이 박대용 사장, 그는 자신을 속칭 날라리라 평가한다. 그래도 그렇지 새파란 젊은이도 아니고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그렇게 밝힌다.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일까? 춤을 잘 추기 때문일까? 웬만한 잡기는 두루 섭렵한 때문일까? 하여튼 그는 날라리와는 격이 다른 다방면 능력자다.
물론 그를 아는 누구도 날라리란 말 인정 안 한다. 날마다 즐거운 얼굴로 바쁘게 사는 것을 부러워한다. 그의 카카오톡 대문에 적힌 한마디는 ‘닥치는 대로 살자’다. 지인들은 안다. 그가 절대로 닥치는 대로 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까 그는 자신이 절대 닥치는 대로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렇게 역설로 표한 거다. 날마다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카카오톡 문틀에 자신의 생활철학 하나 내 건 거다.
그는 대학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다. 해병대(422기)에서 복무했다. 교사로 사회 첫발을 내디딘 그는 얼마 아니 가서 천직이 아님을 깨달았다. 극동건설에 취업 관리업무를 맡은 그는 자청해서 열사의 나라 사우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가 1981년 한국 건설사들의 중동 진출이 붐을 이룰 때다. 거기서 그는 사막의 열기 더불어 청춘을 불살랐다. 무려 8년, 그리고 그는 다시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쌓인 돌맞이가 어언 26회.
그는 매우 세심하고 섬세한 성품의 소유자다. 훤칠한 키와 반듯한 용모는 물론 하는 일 모두 깔끔함의 대명사다. 그는 현재 자카르타 남부 일명 한국의 거리인 세노파티에서 중견 음식점을 경영한다. 정갈하고 깊은 맛으로 소문난 집이다. 광고가 아니라 입소문 자자한 집이다. 음식점 경영, 그에겐 참 낯선 일이었다. 처음엔 고난의 점철이었다. 사라져야 할 음식점 중 하나로 꼽힌 적도 있었다고 허허 웃는다.
그가 경영하는 음식점은 흔히 보는 기업형이 아니다. 그 집에 가면 한 끼 맛깔나게 때울 수 있다는 믿음이 도드라지는 소담한 음식점이다. 물론 비즈니스맨들이 상대를 접대하기 위해 예약하는 그런 사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정다운 사이들이 한 잔 술 정겹게 나누기 위해 모이는 그런 집이 아닐까 싶다. 가족들이 별 부담 없이 입맛을 살리기 위해 찾는 그런 음식점.
그의 음식점엔 이야기가 있다. 우선 입구 계단에 양쪽으로 죽 늘어선 수많은 화분이다. 갖가지 나무와 꽃과 식물들, 음식점 입구가 마치 식물원 입구 같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장소에 따라 알맞게 꽃과 식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있는 게 중요하지 않다. 모두 생기가 넘친다.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인다. 주인 사랑이 반지르르하다. 주인의 정이 뚝뚝 묻어 날 듯 하다.
음식점에 들어서는 순간 깔끔하고 정다운 분위기 누구라서 싫어하랴. 종업원들 역시 늘 표정이 좋다. 환경이 좋은 데 대하는 음식에서 정성이 드러나고 깊은 맛을 더하니 그야말로 기분 상쾌다. 이 음식점의 특징 하나 또 있다. 주방이 잘 들여다보이는 거다. 깔끔하다. 이 또한 주인의 깔끔함과 세심함을 닮았다. 그 성격 어디 가나 싶다.
꼭 짚고 넘길 것이 있다. 이 음식점 화장실이다. 대부분 음식점은 화장실 관리에 신경 쓴다. 화장실이 청결의 척도기 때문이다. 이 음식점은 딱 2%가 다르다. 화려해서 고급지다는 것 아니다. 봐야 안다. 그냥 조금 다르다. 손님 기분 좋으리만큼.
타국살이 추석날 이야기 몇 마디 하려던 것이 자꾸 꼬리를 문다. 추석이면 항상 돌을 맞는 사내 이야기 좀 하려던 것이 하려 들면 끝이 없겠다. 사실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다. 흥미롭다. 교훈적 요소도 많다. 그러나 그는 손사래다. 그쳐야겠다. 뚝 잘라야겠다.
사람 누구나 사연 많고 그 중엔 고난도 많다. 들추면 행복한 시간 감사한 시간 산과 같다. 다가올 내일은 또 겹겹이어서 희망도 많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고 오늘이 참 소중하다.
매년 추석마다 달맞이가 아니라 돌맞이 하는 사내의 60돌을 다시 축하한다. 더욱 건강하시고 하는 일 모두 여의하시기를 빈다. 아울러 그날 함께한 여러 인연들 날마다 행복이 넘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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