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하늘 위의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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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올라가면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추락할 것 같은 두려움에 이르는 상태를 고소공포증, 또는 고공공포증이라 하며, 밖에서 잠긴 방이나 비행기 등 자의로 탈출하기 어려운 경우 발생하는 폐소공포증은, 불안의 원인에 따라 비행기공포증, 엘리베이터공포증, 밀실공포증 등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오는 7월부터 또 다른 국적기인 아시아나항공이 인도네시아에 취항한다고 하여, 항공여행과 관련된 대화들이 한인사회에 자주 회자되고 있다. 얼마 전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도 승객과 승무원이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6월 3일 뉴욕 발 애틀랜타 행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여객기에 탑승한 뉴욕시 소재 한 고등학교 4학년생 101명과 인솔교사 8명이 이륙직전 집단적으로 퇴거조치를 당했다. 항공사 측에 의하면, 학생들이 이륙준비에 협조해달라는 기장과 승무원의 요청에 따르지 않아 여객기에서 내리게 했으며, 이로 인해 항공기 이륙이 45분간 지연됐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수학여행에 들뜬 몇몇 학생이 “휴대전화를 끄고 자리에 앉아 달라”는 여승무원의 말을 한번 경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들을 쫓아낸 것은 상식 밖의 처사라며 반발하였다. 학생들은 다른 여객기로 갈아타느라 공항에서 12시간을 허송하여야 하였으나, 항공사 측은 당시 승무원들에 의한 퇴거 조치는 안전수칙에 따른 것이라며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정이 뒤범벅된 그 수학여행이 학생들에게는 즐거움은 커녕 마음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분방해 보이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준법정신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하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저가항공사인 스리위자야 항공(Sriwijaya Air) 여승무원인 누르 페브리야니는 자카르타와 수마뜨라 동부 빵깔삐낭(Pangkalpinang) 사이를 운항하는 항공기가 이륙직전 ‘휴대폰을 꺼 달라’는 관례적인 기내방송을 지키지 않은 승객에게 주의를 주었다가, 이에 기분이 상한 승객이 도착지 항공기에서 내리면서 신문지를 말아 해당 여승무원의 얼굴을 가격한 사건이 지난 6월 5일 발생하였다. 여승무원은 즉시 인근 경찰서에 신고하였으며, 해당승객은 입건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구금되어 버렸다. 예기치 않게 영어의 몸이 된 이 승객은 바로 방까 벌리뚱(Bangka Belitung) 주 투자조정지청장인 자까리아 우마르씨로 밝혀졌다. 고문, 또는 위해행위에 관한 형법에 의하면, 그는 최대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사건이 확대되자, 해당 주 부지사는 지방정부를 대신해 항공사와 피해자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였으며, 물의를 빗은 당사자에 대한 처벌을 약속하였다.
지난 4월 미국 행 한국 국적기 내에서 일어난 소위‘라면상무’사건을 시작으로, 항공기라는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불상사가 뉴욕을 거쳐, 이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에까지 전염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건의 경우는 ‘갑’의 주체가 우쭐한 대기업 임원과 거들먹거리는 지방관리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평범한 학생들이었다는 것이 다른 점이긴 하다. 우리는 해외출장을 가거나, 고국을 다녀오는 장시간 비행을 하고 난 후 며칠 되지 않아 주말 골프라도 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스코어가 형편없는 결과로 나오는 현상을 경험하여 왔다. 그래서 장시간 비행은 사람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감정의 평정함도 흔들어 놓는다는 가설을 도출해 내곤 했다. 기내에서는 사소한 거슬림에도 스스로 신경과민이 되거나, 가벼운 음주도 쉽게 취기에 오른다는 사실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막연히 결론지어 왔다. 그리고 폐쇄된 작은 공간 내에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장 심도 있게 표현한 1982년도 아카데미 영화상 경합작품이었던 ‘U 보트(원제, Das Boot)’라는 독일영화를 연상하곤 했다. 지금 와서 보니, 이러한 현상들이 모두 서두에 말문을 꺼낸 ‘고공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의 가벼운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은 꼭 지상에서만 지켜져야 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바다나 하늘 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인권침해’는 심야시간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젊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세계의 조명을 받는 정상회담 무대 가까운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취약성을 안고 있음을 ‘엊그제 사건’을 통해 느껴왔던 터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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