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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9.30사태’의 전말(顚末)

김문환의 주간포커스 작성일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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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교시(敎示)
 
결국 약속했던 10만 정의 무기공급은 보류되고, 모 주석은 8월 5일 베이징을 다시 찾은 아이딧에게 단지 우익장성들을 제거하는데 필요한 3만 정의 무기만을 제공하겠다는 수정안을 내놓게 된다. 이에 따라 수까르노는 선적방법에 대한 실무절차를 협의하고자, 심복인 오마르 다니(Omar Dani) 공군참모총장을 극비리에 베이징으로 파견하였으며, 육군장성들 제거에 사용할 일부 무기들은 허큘리스 수송기에 직접 싣고 돌아오게 된다. 할림 공항은 공군의 관할지역인지라, 육군이나 세관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사각지대였다. 오마르 다니 장군은 육군과는 달리, 수까르노의 정책에 순종하면서 아이딧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결국 오마르 다니 장군의 영역인 할림 지역은 보름 후 쿠데타 진영의 지휘본부로 사용되게 된다.
 
수까르노 대통령은 알제리 비동맹국회의 참석 차, 아이딧을 포함하여 80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1965년 6월 26일, 알제리의 문턱인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한다. 일주일 전인 6월 20일 알제리에 쿠데타가 일어나 아흐맛 벤 벨라(Achmad Ben Bella) 대통령이 하야하는 등 사태가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주변국에서 관망하고 있었다. 결국 비동맹국회의는 11월로 연기되었고,  수까르노의 병세도 재발되어 황급히 귀국하게 된다. 7월 말에 들어 병세가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자, 수까르노는 모스크바와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순방을 마치고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아이딧의 귀국을 재촉한다. 아이딧은 8월 3일, 3일 후에 귀국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보내왔으나, 바로 그 다음날, 수까르노는 지병인 신장병이 재발하여 네 차례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들었다. 주치의인 UI대학의 마르조노 박사가 침실에 들었을 때엔 중국에서 온 여덟 명의 의료진이 치료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7월 22일부터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대통령이 위급상태임에도 아이딧이 귀국을 미루는 것은, 모 주석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8월 5일 모 주석은 자금성 부근, 중국공산당 본부가 위치한 종난하이(中南海)에서 아이딧을 맞았다. 이 자리에서 아이딧은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현황을 설명하며 중국의 군사적 도움을 받아 제5군 설립에 관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제5군이라 함은 농민, 노동자로 구성될 민병대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육군이 제5군 창설에 극력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 혁명과업 완수에 큰 지장을 받는다는 고충을 털어 놓자, 이를 경청하던 모 주석은 아이딧에게 ‘극단의 조치’를 강조하는 교시를 내리게 된다.
 
모 주석과 밀담을 마치고 8월 7일 귀국한 아이딧은 중국에서부터 대동한 2명의 중국인 의사와 함께 곧장 대통령궁으로 들어가 귀국보고를 올렸다. 실제로 이 중국인들은 의사로 가장한 중국정부의 밀사였으며, 수까르노의 건강상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한 밀명을 받고 있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아이딧은 다음 날 보고르 대통령궁 침실에서 재차 수까르노와 독대하여 모 주석의 제안을 타진하였다. 이날 아이딧이 독대를 마치고 나간 직후, 대통령은 경호실 제1대대장인 운뚱(Untung) 중령과 경호실장인 사부르(Sabur) 준장을 침실로 불렀다. “운뚱, 자네는 지금 대통령에게 충성하지 않고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시비만 거는 육군장성들 누구라도 체포할 용의가 있는가?” 라고 묻자, 운뚱 중령은 항상 그래왔던 대로 서슴지 않고 하복하였다. “예,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아이딧이 종난하이에서 모 주석과 밀회를 가진지 10일이 지난 8월 15일, 인도네시아 독립기념일 행사에 참석 차 내방한 첸의 장관은 수반드리오 외무장관과 아이딧 당수를 차례로 만나, 중국은 수까르노가 은퇴한 후 칩거할 수 있는 휴양지로 ‘백조호(白鳥糊)’를 지정하였다는 내용을 은밀하게 흘렸다.    
 
9월 15일 아침 8시경, 수까르노는 사부르 경호실장을 입회시켜 수나르요(Sunarjo) 헌병 준장을 불러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게 된다. 9월 26일에는 헌병사령관 수디르고 준장이 재차 수까르노를 만나 항간에 떠돌고 있는 ‘장군위원회(Dewan Jenderal)’라는 비밀조직이 실제 존재한다고 보고하였다. 오마르 다니 공군참모총장과 수빠르조 장군도 수까르노를 찾아 장군위원회가 국군의 날인 10월 5일을 쿠데타 거사일로 잡았다는 내용까지 보고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공군은 대통령의 지시대로 육군 측의 어떠한 도발도 분쇄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충성을 재확인하였다.  9월 27일 대통령 부관인 수간디(Sugandhi) 준장은 아이딧과 정치국원인 수디스만으로부터 육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작전에 동참할 것을 제의 받았다. 3일 뒤인 9월 30일 아침 수간디는 대통령에게 아이딧과 수디스만의 말대로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였는지를 묻자, 대통령은 언성을 높이며 제발 ‘공산당 공포증’을 갖지 말도록 단호하게 꾸짖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가는 길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판단한 수간디는 대통령궁을 나와 곧장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향하여 야니 총장에게 아이딧, 수디스만, 수까르노 간에 오간 내용을 보고하며, 쿠데타 D-day가 임박하였음을 귀뜸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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