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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25년 세월, 작품 두 점으로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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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813회 작성일 2017-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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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과 비교, 경매 이벤트, <한글서예의 어제와 오늘> 전
 
▲ <한글서예의 어제와 오늘>이 열린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5년, 누구에게나 짧은 세월이 아니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하나로 뭉뚱그리기 쉽지 않은 시공이다. 흥미롭게도 필묵을 길잡이 삼아 외길을 가는 서예가들의 25년 세월이 작품 두 점으로 대척점처럼 걸렸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한글서예의 어제와 오늘(10,12~11,2)>전이다. 어떨까? 작품 두 점으로 들추는 25년 변천사가.
 
이 전시는 한국서학회(회장 구자송)가 예술의 전당에 기증한 69점을 위한 특별전이다. 이 작품들은 1992, 1993년 <오늘의 한글서예작품 초대전>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그간 한국서학회가 소장해오다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 영구 기증함으로써 전시가 이루어졌다. 함께 전시된 작품이 43점, 이 작품은 43명 작가의 2017년 신작이다.
 
약 석 달여 전, 나는 예술의 전당과 한국서학회로부터 이 전시 출품 의뢰 공문을 받았다. 나는 공문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단순한 기증전이 아니었다. 25년의 시공을 압축하여 한 작가의 두 작품을 함께 전시 비교함으로써 한글서예 흐름을 파악하고 또 방향을 찾는다는 기획 의도가 선명했다. 참신했다. 비교란 참 불필요한 것일 때가 많다. 하지만, 비교를 이처럼 잘 활용하면 효율 또한 높지 않겠는가.
 
나는 쾌히 비교당하기로 했다. 어떤 식으로든 오늘이라는 내 나름의 점 하나 찍어 자신을 가늠해 보기로 했다. 아뿔사 정작 25년 전 내 출품작이 뭐였는지 기억이 없다.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을 당시의 도록도 찾을 수가 없다. 비교적 작품에 관한 기억은 또렷하다고 장담했었는데 허언이었음을 자신에게 증명하는 순간이다. 억지로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 작품을 다시 기억해서 무엇하랴. 바로 지금에 충실하자고 위안 삼을밖에.
   
▲ 25년 전인 1992년 <오늘의 한글서예 초대전>에 출품했던 작품
 
▲ 2017년 신작 <사람, 아침 햇살 같은 사람>
 
잰걸음으로 전시장을 찾았다. 인도네시아에 눌러 살며 활동한지 벌써 15년, 이런 대형 기획전에 목말라 있던 터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근 현대 한국서예를 이끈 작고작가와 현존 원로작가의 작품들이 내 호흡을 누른다. 찬찬히 작품을 감상했다. 먼 길 달려온 후생에 대한 위로가 크다. 그런데 신작이 없이 25년 전 작품 한 점만 걸린 곳이 생각보다 많다. 이미 운명을 달리했거나 또는 작품을 출품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작가가 16명, 4반세기란 세월이 참 길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비교를 위한 43점 신작들, 25년 시차를 지닌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렸다. 다감하다. 참 보기가 좋다. 한순간 코끝이 찡해 온다. 전통을 지킴도 흥미롭고 변화 또한 작가 나름의 당위, 그래 모두가 서여기인(書與其人)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 작가의 성정이 드러나 있다. 25년 전 작품들, 궁체가 다수인 중에도 각기 진정성이 듬뿍 담겨 있어 좋다. 장중하고 순정한 기도다. 역시 함부로 변화만을 외칠 일이 아니다.
 
▲ 원로 작가 산돌 조용선 선생의 작품
 
▲ 현 한국서학회 회장 들메 구자송 선생의 1992년 구작(왼쪽)과 2017년 신작(오른쪽) 
   
▲ 놀라운 장악력으로 다가왔던 작고 작가 서희환 선생의 작품
 
시대조류이리라. 신작들은 대부분 흥미롭다. 고뇌한 흔적들이 보기에 좋다. 서예의 현대적 과제를 해소하려는 의욕이 충만하다. 그러나 수줍게 고개를 숙인 작품도 더러 있다. 획의 부조화, 조형에 대한 성찰 부족 때문이리라. 변화만을 의식한 탓일까? 끝까지 자기의식을 견지하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변화는 지난하다. 전통과 오늘, 그리고 작가가 한데 어우러져 좋은 작품으로 창작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또 확인한다.
 
뜬금없는 생각도 스친다. 25년 시차를 둔 얼굴 사진 두 장 걸어놓으면 이처럼 감동을 자아낼까? 작품처럼 다정과 다감으로 다가갈까? 아쉬움도 있다. 운명처럼 필묵을 끌어안고 외길을 가는 이들의 25년 세월을 달랑 작품 두 점으로 느껴보려니 그렇다. 아무튼, 멋진 기획이다. 비교를 통해 변화를 살피고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멋진 발상 아닌가.
 
▲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전시장
 
그래서 떨칠 수 없었을 신작을 향한 작가들의 고뇌가 뇌리를 맴돈다. 문득 ‘만약’이 떠오른다. 실제가 아닌 만약, 가정뿐인 만약, 그러므로 나는 지금 쉽게 가정을 해본다. 만약에 25년 전 초대전을 할 때 오늘과 같은 전시가 열릴 것으로 예고했다면 어떤 유형의 작품들이 창작되었을까? 만약 십 년 후 그 날이 다시 오늘이란 가정하에 작품을 해야 한다면 나는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전시는 오늘의 한국서단이 관심을 가질 획기적인 이벤트 하나가 또 있다. 이제까지 어느 기획전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경매’다. 예술의 전당 전시가 끝남과 동시에 신작 43점을 강남구 신사동의 케이옥션 전시장으로 옮겨, 5일간 프리뷰를 한 다음 2017년 11월 8일 최종일에 경매한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서예 박물관 이동국 수석큐레이터는 기획 취지에서 경매를 “현역작가 작품이 옥션을 통해 공식 경매되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전시를 “지속 가능한 서예 시장 개척의 첫발”이라 했다. 그러므로 작가들은 시장 원리를 전제한 소비자를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광선과 같은 시심”이 드러난 작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출품된 43점 경매 대상 작품을 보며 어떤 가능성을 점쳤을까? 
 
▲ ▼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경매를 위해 프리뷰 중인 2017년 신작 43점
 
 
이 답을 해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다. 바로 작가들이다. 시작부터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온전히 자기를 투영했느냐는 작가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여 전시의 성공과 경매 결과 또한 모두 작가들의 몫이라 하겠다.
 
좋은 기획은 작가를 생동하게 한다. 작가의 창작 의욕을 북돋운다. 이번 전시는 좋은 기획과 더불어 작품과 소비자의 이상적인 만남 경매까지 이어진다. 참가 작가들에게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서학회의 공이 크다. 한국서학회가 기획한 1992년 <오늘의 한글서예 초대전>이 바로 오늘의 이벤트를 있게 한 시발점이 아닌가. 많은 수의 작품을 25년간 온전히 소장한 것에 경의를 표한다. <한국서학회>를 이끈 원로작가 오헌 이곤 선생께 깊이 감사드린다.
 
끝으로 이 전시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들메 구자송 회장께 동도로서 존경을 표하며, 귀한 시간을 할애해 함께 감상하며 의견을 나눴던 청랑, 소현 두 분께도 감사드린다. 오래전 서예로 맺은 인연을 서예박물관에서 이어갈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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