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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24)|이모, 그는 왜 만인의 이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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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의 경영 탐문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101회 작성일 2018-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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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손인식의 경영 탐문 24
 
이모, 그는 왜 만인의 이모인가?
- 긍정의 화신, 송말희 여사의 하숙집 경영 -
 
 
‘이모’, 참 정겨운 호칭이다. 부르는 이도 불리는 쪽도 느낌 따숩다. 음식점에서 아주머니 대신 이모라 부르면 서비스가 더 좋다는 거 경험자들은 안다. 호칭에 담긴 다정 때문 아니랴. 세상 수많은 이모, 어머니의 자매 이모 말고도 그 이름 각양각색 부지기수로 쓰일 수밖에.
 
이모란 호칭 세상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이모가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위성 도시 찌까랑에 산다. 그를 아는 참 많은 사람이 그냥 그를 이모라 부른다.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 모두 초월이다. 그는 누구나 어렵잖게 이모라 부를 정체성을 지녔다. 그는 다감하고 폭이 넓다. 베풀기 좋아한다. 한마디로 이모의 좋은 특성이란 다 가진 이모다.
 
그중 단연 도드라지는 바탕 하나 있다. 밝은 긍정이다. 그는 부정에 서툴다. 긍정의 화신이다. 사람이나 사물 뭣 하나 그르게 보질 않는다. 도대체 불평 두 글자를 모르는 사람 같다. 그런데 진짜 그른 것을 보면 참지 않는 성격이다. 옳지 않다면 상대도 가리지 않는다. 이래저래 화끈한 성품이다. 하니 그냥 이모가 아니다. 엄마처럼 다감한 이모다. 의리 좋은 친구 같고, 지혜로운 선생 같은 이모다.
 
만인의 이모 된 까닭
 
“1998년 인도네시아와 인연을 맺었어요. 어느덧 20년이 됐네요. 한국에서 잘 이끌던 식품업이 IMF를 맞아 어려워졌어요. 그때 평소 흘려듣던 지인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어요. 비즈니스로 인니를 자주 오가던 분이 들려준 이야기죠. 인니의 자원이나 인구, 기후 등도 그렇지만 특히 다종교를 포용하는 국가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슬람 국가로만 폭좁게 알고 있었거든요.”
 
송말희(59) 여사, 그가 만인의 이모가 된 데는 일 때문이다. <이모네 식품> 설립부터였다. 상호가 이모이니 이모네 고춧가루, 이모네 떡, 이모네 도시락, 이모네 김치 등 생산품 명칭이 다 이모 범주였다. 그러니까 가장 이모다운 여성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모표 열정과 정성을 생산품에 듬뿍 담아냈다. 마침내 <이모네 하숙>을 열어 운영하기까지.
 
“게스트하우스는 처음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자바베카 공단에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국인들이 뭉친 작은 비즈니스 센터가 있었어요. 점심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가 봐요. <이모네 식품>을 운영 중이던 제게 제안이 왔어요. 기꺼이 응했지요. 회사로 도시락을 배달하고 좁은 장소지만 점심상을 차렸어요. 점심때면 항상 손님이 줄을 섰어요. 때론 출장자들도 함께 드셨고요.
 
그 기간이 꼬박 5년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단의 특성상 장단기 출장자가 많습니다. 그 분들 고충이 숙소보다 세 끼 식사 해결입니다. 그래서 제게 하숙집 운영을 적극적으로 권했을 겁니다. 남편은 말렸어요. 너무 고생한다는 거죠. 근데 저는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녁 늦게까지 하는 일이 아니고, 제가 싫어하는 술을 파는 것이 아니니 마땅하다 싶었지요.”
 
▲ 이모네 하숙집 전경
 
그의 탁월한 긍정은 만인의 이모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겐 모든 것이 고마움의 대상이다. 기억에도 없는 전북 익산 본적지도 고맙고, 송씨 가문의 좋은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 것도 감사하다. 연하의 남편 만나 알콩달콩 사는 것도 기쁘고 그의 가문을 시댁으로 정한 것도 흐뭇하다고 했다.
 
산후조리 차 와 있는 딸이 정말 고맙다고 했다. 갓 태어난 손자와 말썽부릴 5살 나이의 손자를 돌보는 것이 꿈만 같다고 했다. 손자 손녀가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말 다반사인 시류와 영판 다른 사고다. 산후에 힘들어하는 딸을 대신해 갓난아이를 돌보느라 잠을 못 자도 좋다고 했다. 살맛 난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다고 했다. 얼마 후 딸이 한국으로 돌아간 뒤 허전함을 견딜 일이 벌써 걱정이다.
 
과연 그가 허전할 틈이 있는 이모인가? 필자는 서예 지도 경력 37년째다. 참 다양한 학습자를 만났다. 이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단 이모 같은 학습자는 단연코 처음이다. 한 주간에 소모하는 화선지가 어느 전문가 못지 않다. 그만큼 바쁜 이가 서예 학습에까지 몰두하는 모습이 정말 놀랍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다루는 악기가 피아노, 기타, 드럼 세 가지다. 틈만 나면 튕기고 어루만지고 두들긴다. 허전함이나 한가함이 놀라 범접이나 하랴.
 
▲ ▼ 이모네 하숙집 내부 곳곳에 놓인 악기들. 주인 송여사의 놀이 기구이기도 하다.
 
 
▲ 익주 송말희 여사
 
규칙 어기면 야간에도 짐을 싸야 하는 하숙집
 
“한 때는 주택단지 가옥 7채를 빌려 하숙집을 운영했어요. 지금은 5년 전 신축한 객실 16개 규모 한 곳만 운영합니다. 우리 하숙집엔 규칙이 있어요. 첫째가 소량의 반주 외에 음주 금지입니다. 둘째, 갑작스런 외부 손님, 특히 이성 입실 절대 금지예요. 어기면 그 시각 즉시 퇴실입니다. 셋째, 비즈니스나 일 외에 골프 여행 손님 등은 가급적 사절입니다.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아요. 이야기 주제나 행동이 모두 이질적입니다.”
 
드물지만 여성의 경우엔 이유 불문 이모 부부의 옆방에 기거하도록 배정한다. 규칙을 어긴 손님도 있었다. 즉시 퇴실 조치했다. 야간에 짐을 싸야 했다. 입실 때부터 통지한 규칙이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규칙에 관한 한 이모는 매우 냉정하고 독하다. 상황에 따라 큰소리 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규칙을 어기고 그를 당해낼 사람이 없다.
 
“하숙, 하숙이라면 왠지 집 같은 느낌 들지 않나요?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집의 질을 떨어뜨리지 말자고 손님들께 읍소하죠. 다 동의합니다. 특히 직원이나 출장자를 장기 투숙시키는 기업주들은 대만족입니다. 일 때문에 집을 떠나온 분들도 가족적인 분위기 땜에 더 좋아합니다. 진짜 이모 집에서 사는 것보다 더 편하데요. 머물다 떠난 지 수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모라 부르며 안부를 전하는 분들도 더러 있습니다.”
 
▲ ▼ ▼ ▼ 이모네 하숙집 1층과 2층 내부
 
 
 
 
▲ ▼ 이모네 하숙집 객실 내부
 
 
고객에게만 지킬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부군 임무도 있다. 고객의 귀가 여부 확인이다. 마지막 문단속도 그의 책임이다. 이모가 지키는 규칙은 더 엄하다. 모든 식사 준비를 그녀가 직접 관장한다. 도우미들이 있지만, 그녀가 가장 조심하는 점이 음식에 정성과 국적이 없는 것이다.
 
“초기부터 한국타이어 관련 손님이 주 고객입니다. 물론 지금은 분포가 다양합니다. 손님 중엔 다국적 손님도 더러 있어요. 한국 기업들이 도입하는 기계나 설비 설치나 관리를 위해 오는 손님들을 기업에서 저희 하숙집을 추천한 경웁니다. 그동안 영국, 독일, 캐나다,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적자들이 묵었어요. 연령대도 다양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그들의 입맛을 헤아립니다. 그들 나라 풍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거죠. 그냥 최선을 다합니다. 좋다고 맛있다고 엄지 척을 할 때 기분 좋지요. 물론 맛깔나고 푸짐한 한국 음식 제공이 최우선입니다.”
 
많을 땐 하루 40여 명을 치렀다. 분위기가 호텔과 다르니 손님들끼리 쉬 친숙해진다. 손님 중에는 다시 오는 분들도 많다. 더러 자국에서 정성스레 선물을 가져와 이모에게 감동을 주기도 한다. 열정과 정성으로 산 때문일까? 20년이 2년 지난 것 같다고 말한다. 熱誠与樂(열성여락), 그는 오직 열정과 정성 더불어 20년 세월을 즐겁게 살아 온 것이다.  
 
熱誠与樂(열성여락)/ 열정과 정성으로 더불어 즐기다.
무술년 소서 후 오일 인재 손인식 작
 
“이렇게 장사해서 뭐 남는 게 있어요?”
 
깔끔하고 너른 방, 다양하고 푸짐하면서 맛난 음식 때문에 손님들이 하는 말이다. 이익이 덜할 뿐 밑지는 거 아니다. 편히 쉬고 맘껏 드시라고 권한다. “돈을 갈퀴로 긁는 다면서요?” 손님이 붐비는 것을 들어 주변에서 하는 말이다. 이 대답 또한 간결하다. “하숙집 주인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고 부자로 알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다 덕분입니다.”하고 웃는다.
 
아내의 역할, 남편 기 살려 주기
 
“엄마가 간호사였어요. 아빠는 순사(경찰)이셨고요. 외가에서 순사가 맘에 안 든다고 결혼 결사반대였데요. 그래서 두 분이 그냥 물 떠놓고 작수성례했답니다. 8남매를 두셨어요. 제가 일곱째입니다. 딸로는 셋째 딸이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 초등학교 2학년 때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 뒤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는 상상할 수 없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어떻게든 공부는 해야 한다고 자식들 진학을 우선순위에 두셨어요.
 
저는 학교 급사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대학도 야간을 다녔고요. 엄마 생각해서 제가 자청한 것입니다. 급사 일을 하는 저를 향해 급우들 수군거림이 많았지요. 근데 전 부끄럽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어요. 오히려 선생님들께서 칭찬해주시니 힘이 났죠. 선생님 모두 자청해서 제 과외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늘 시험점수가 좋았어요^~^ 저는 일을 좋아해요. 그것도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즐기는 것이 제 특성입니다. 딸 낳고 7개월 만에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이모와 대화는 참 즐겁다. 이모가 이야기하는 모습은 마치 동화구연을 보는 것 같다. 슬픈 이야기를 더 슬프게 표현해서 웃게 한다. 즐거운 이야기는 더욱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의 생활신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일단 몸으로 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 계획이 서면 일단 몸으로 부딪친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시작하면 10년은 해보자다. 하여 그는 부군이 전개한 사업과는 별개로 20여 년을 변함없이 이모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엄마는 본래 크리스천이셨어요. 불자인 아버지와 결혼한 관계로 그냥 아버지를 따르셨죠.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제 손을 잡고 결혼 후 처음 교회에 가셨어요. 저도 그때 처음 교회에 갔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어머니는 87세 수를 누리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저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며 즐겁게 교회에 갑니다.”
 
이모에게도 매우 어려운 대상이 있다. 연하의 남편이다. 이모는 지금껏 남편에게 반말한 적이 없다. 꼭 존댓말을 쓴다. 남편의 사업 성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태생적인 것이 아니다. 이모의 사회 경험 때문이다. “
 
저는 기업 현장에서 혼신을 다하는 분들을 쭉 봐왔어요. 그들은 누군가의 남편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정의 기둥이기도 하지만 사회 유지의 큰 축이잖아요. 더러 힘들어하는 모습도 많이 봅니다. 표정이나 숟가락 드는 모습만 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차리게 돼요. 제 소탈한 성격 때문인지 때론 그 어려움을 털어놓는 분들도 있어요.”
 
이모는 남성들이 사업 일선에서 경쟁을 헤쳐가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남편을 공손하게 대하게 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기회가 있으면 교회나 사회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남편 잘 대접하라고 강조한다. 집에서 아내가 남편 기를 세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서 활개를 칠 수 있다고 힘주어 주장한다.
 
자녀가 둘 뿐인 것이 가장 큰 아쉬움
 
“처음 인도네시아에 올 때 딸과 아들을 한국에 떼놓고 왔어요. 할머니와 형제들에게 맡겼죠. 타국에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국제학교 학비도 너무 비쌌어요. 일단 자리를 잡고 데려오려는 계획이었죠. 그때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어요.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것도 공부이니 잘 견디자고요. 둘 다 별 문제없이 성장했어요, 이모가 살고 있는 멕시코에서 유학했고요
 
교사와 결혼한 딸은 이미 두 아이의 엄마랍니다. 아들 또한 학업을 마치고 군 전역을 한 뒤 취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대견스러운 것이 부모에게 의지하려 하지 않아요. 스스로 단계를 밟아가고 있지요. 딸과 아들도 모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참 감사하고 뿌듯함이죠.”
 
이모는 과거를 돌이켜볼 때 특별히 실패한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후회할 일도 크게 없다고 했다. 열심히 살아온 것을 자타가 인정하니 더 바랄 바 없다고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고 했다. 자녀다. 한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가 야속하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손자와 이야기도 즐겁다. 산후 조리차 온 딸과는 미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저는 지금의 일을 딱 접는다면 교육시설을 세우고 싶어요. 평소 제 꿈입니다. 땅은 이미 충분히 확보해 두었습니다. 지금은 채소와 몇 가지 곡물을 기르고 있는 땅입니다. 딸과 함께 그 땅을 둘러보며 당부했습니다. 10년 후쯤 이쪽으로 와서 활동할 것을 대비하라고요. 사위가 교직자고 딸도 자격이 있으니 기도하면 잘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 악기를 익히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고 춤추며 놀고 싶어서입니다. 서예를 하는 것도 더불어 즐기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은 모두 인도네시아에 와서 배우고 익히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제게는 인도네시아가 무한 감사한 땅이죠. 많이 되돌려주어야 할 나라고요. 올 12월 고창에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과 일가친척 열두 분을 초청했습니다. 이번에 오셔서 잘 둘러보시고 시부모님이 이곳에서 사시겠다고 하면 참 좋겠어요. 남편이 큰아들이거든요.”
 
▲ 익주 송 여사가 교육 시설을 세우기 위해 마련해 놓은 넓은 대지
 
필자가 그를 위해 취한 아호 두 글자가 익주(益周)다. 益은 그의 고향 익산의 익이다. 더하다, 이롭다, 돕다, 많다, 풍부해지다, 향상되다, 더욱, 한결, 넘치다 등의 뜻이다. 周의 뜻은 두루, 골고루, 널리, 둘레, 진실, 온전히, 친하다, 구하다, 베풀어 주다, 합당하다, 삼가다 등이다. 음양과 획수를 참작해 취한 글자지만 두 자의 합은 송 여사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어감이 다소 투박해서 좋고, 나름 개성 만점이어서 더 어울린다.
 
‘인생’은 영화가 아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기 배역이 있다. 익주 송 여사가 맡은 배역, 그가 선택한 역할은 만인의 이모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배역, 참 그답게 그리고 아름답게 소화하고 있다. 그의 역할을 보는 이들 모두 아울러 즐겁고 행복하리라. 그의 배역에 신의 가호가 넘치기를 빈다.
 
 
※ 이 프로젝트는 <자카르타 경제신문>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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