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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서예 강좌] 붓글씨의 핵심 선긋기 2 -너무 빤한 익혀야 하는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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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053회 작성일 2019-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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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강좌] 붓글씨의 핵심 선긋기 2
 
너무 빤한 익혀야 하는 기초
 
산나루 작가
 
 
저는 늘 초학자가 처음 긋는 선이 창작이라 말합니다. 기초가 곧 완성이라고 강조하지요. 이론 공부를 강조하고요. 거기다가 처음부터 창작을 목적으로 두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기초 선 긋기가 끝나고 전서를 쓰기 시작하면 교본, 즉 법첩을 임서하는 것과 별도로 대뜸 소품 작품을 써주기도 합니다.
 
마음대로 써오도록 숙제를 냅니다. 이런 서예지도 방법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바로 기초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함입니다. 기초를 철저하게 닦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창작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니까 기초와 창작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론을 강조하는 것이고요.
 
그런데요 가끔 되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초를 배우는 사람이 무슨 이론 공부냐고요. 얼핏 타당한 말 같습니다. 그러나 선긋기가 기초이자 완성이듯 이론 또한 기초이자 완성입니다. 기초 론이든 창작 론이든 또는 작품 평론이든 다 학습자가 알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것이 학습 기간을 단축하는 방법입니다. 이론 공부는 학습 성취 속도를 놀라울 정도로 앞당겨 줍니다. 서예는 바로 공부하면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공부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부터 이론 공부를 꼭 병행해야 하는 이유가 그겁니다. 도제식 교육을 추종하는 경우 대부분 이론을 경시합니다.
 
저 역시 초학자 시절 쓰다보면 알게 된다는 식의 무책임한 말을 더러 들었습니다. 이런 떠도는 이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설마 그냥 즐기려고 하는데 부담스럽게 뭔 이론을 그렇게 강조하느냐고 하는 분 안계시죠?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묻겠습니다. 즐기는 게 뭐죠? 알아야 참답게 즐길 수 있습니다. 바로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혹 연습 부족으로 실수를 할지언정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아야 그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좋은 작품을 할 줄 알면서 일부러 수준 낮은 작품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얼핏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바보스러운 작품을 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야말로 바보스러움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작가일 것입니다. 누가 한 경지에 오른 것처럼 대가의 무르익은 작품을 흉내 낸다면 그건 안목을 갖춘 사람에게는 순간에 들통이 납니다. 이론을 머리 아픈 것으로 여긴다면 참다운 예술과 멀어집니다. 이론이 싫다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다른 것을 찾아봐야 합니다. 갈고 닦아서 알아지는 것이 참이니까요. 갈고 닦아야 천박함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품격을 갖출 수 있습니다.
 
서예는 획마다 입필 방향이 다르고 붓을 거두는 위치가 다릅니다. 수없이 꺾이고 굴려야 할 부분이 생깁니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붓을 세워야 하고 적절한 힘과 시간을 통해 순조롭게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내 붓질을 내가 봐도 명확해야 하고 남이 봐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꺾이고 굴린 곳을 셀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것이 위치에 따라 방향에 따라 또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강약이 다를 뿐입니다. 천천히 써도 알맞고 빨리 써도 격에 맞아야 합니다.
 
 
언제라도 삼각형과 네모, 그리고 둥근 점을 필법대로 정확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하지요. 드러내지 못할 모양이 없어야 합니다. 꺾임과 굴림을 통해서 명확히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처음 입필이 정확하고 마지막 수필이 분명해야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처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획을 만들고 꾸미는 습관이 들면 안 됩니다. 글자 겉모양에 치중하면 길을 크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학문에 왕도가 없다고 하지만 붓을 다루는 기능에는 분명 왕도가 있습니다. 바른 길을 가면 빠릅니다. 붓은 서예가가 자기의 생각을 형상으로 드러내는 절대적인 도구입니다.
 
그 도구를 바르게 다룰 줄 아는 것이 왕도죠. 바로 익히면 그것을 통해 드러내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훌륭한 목수는 연장탓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붓을 바로 다룰 줄 알면 큰 붓, 작은 붓, 부드럽고 뻣뻣한 붓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큰 붓으로도 작은 붓 느낌을 낼 수 있고 작은 붓으로 썼는데도 큰 붓으로 쓴 것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붓은 둥급니다. 그래서 둥근 느낌의 선은 물론이고 다양한 각도의 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붓은 많은 털이 뭉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많은 숫자의 털, 이것은 다양한 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암시입니다. 많은 숫자의 털이 뭉친 붓은 아교 성분이 섞인 먹물에 의해 뭉칩니다. 그러나 먹물이 적어지면 갈라집니다. 더러 무리한 힘을 가하거나 붓 크기에 비해 큰 글씨를 쓰거나 잘 못 다뤄서 갈라지기도 합니다. 어쨌든 때에 따라 붓이 갈라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그러니 붓이 갈라지면 기회로 활용하십시오. 갈라진 붓을 잘 활용하면 정상적인 붓으로는 구사하지 못할 선과 형상이 드러납니다. 즉 개성을 발휘할 기회인 것입니다.
 
종교가 자기 구원 즉 자유를 추구하듯 예술 또한 자유를 추구합니다.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것은 나중이 아니라 처음부터 갖춰야 할 자세입니다. 그것을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많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이 연습하고 실험해야 합니다.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자기의 노력이되 수고 없이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진정한 창작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밌습니다. 창작을 통해 생기는 스트레스는 병보다 약이 될 것입니다. 완성을 통해 열배 백배 보상이 돌아옵니다.
 
자 아까 그은 기초선이 중첩된 사진을 다시 감상해보실까요? 이게 바로 작품이란 생각 안 드시나요? ‘울림’이란 제목 쯤 붙여서 전시장에 걸어놓으면 멋져 보이지 않을까요? 실제 이런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연작을 하는 유명 한국화 작가가 있습니다. 서예초학자가 그것을 보고는 놀래죠. “어~ 이거 나도 할 수 있는데” 하고 말하죠. 그 유명 작가는 발견을 한 겁니다. 초학자가 무심으로 그은 선을 통해 또는 남은 먹물을 소비할 겸 무심히 그어본 선에서. 그리고 그 선의 나열이 어쩌면 가장 순정한 작품일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죠. 그래서 거기에 그 작가가 지닌 구성 능력을 더 보태 독자적 창작을 한 것입니다.
 
 
서예학습을 시작했다가 붓 선에 반하기를 바랍니다. 먹의 흐름에 홀딱 빠지기를 기대합니다. 붓이 드러내는 자연미에 사로잡혀 평생 그 선과 씨름한 작품을 연작으로 발표할 작가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는 분명 그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 서예에서 선긋기는 시작이자 완성입니다. 이에 관한 논리와 강조가 무궁무진할 수밖에요. 기초에 관한 강좌가 너무 진지한 것 아니냐고 할 혹자 있을까요? 가벼움이 난무하는 시대에 너무 무겁다고 느끼실 분 있을 겁니다.
 
한없이 진지한 것이 예술입니다. 흥미롭고 가벼운 것도 예술입니다. 심지어 백남은 ‘예술은 사기꾼들의 속임수다’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말입니다. 작품은 작품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기초인 선긋기를 잘 닦아야 하고요. 중언부언 갈팡질팡 설명이 긴 이유입니다. 이 영상은 선긋기 두 번째였습니다. 선긋기에 관해 충분한 이해가 되셨더라도 능숙하게 붓을 다루거나 구사하는 것은 많은 연습을 거쳐야 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선긋기 기초를 잘 터득했다면 구사하지 못할 서체는 없습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자신 있게 자신이 의도한 바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연습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 이 글은 아래 https://youtu.be/RcbhJPyvFjk영상 내용을 고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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