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10) 라마단, 나와 신과의 일대일 약속 -이스띠끄랄 이슬람 대사원 Mesjid Istiql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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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이 만난 매혹의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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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의 인도네시아 10>
라마단, 나와 신과의 일대일 약속
-이스띠끄랄 이슬람 대사원 Mesjid Istiqlal
-이스띠끄랄 이슬람 대사원 Mesjid Istiqlal
글과 사진/ 채인숙 시인
라마단 금식월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스띠끄랄 이슬람 대사원을 방문했다. 나는 카톨릭 신자이지만 평소에도 대사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우선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무조건 대사원으로 데려간다. 인도네시아를 보러 왔다면, 원시를 간직한 적도의 자연과 근원적인 오리지널리티가 살아있는 문화예술과 인도네시아인들의 삶을 보러왔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수박 겉을 핥고 가는 식이라도 한 번쯤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여긴다. 그러니 동남아 최대의 이슬람 대사원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인도네시아는 신분증에 반드시 종교를 기록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라고 해서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그저 열심히 믿을 뿐이고, 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당신이 하느님을 믿건, 부처님을 믿건, 공자를 믿건 상관없다는 뜻이다. 내 신분증에도 ‘Katholik’이라고 그들의 표기법으로 종교를 명시해 놓았다. 하지만 ‘무교’라는 건 없다. 무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대부분 선하고 유순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신과 함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악하고 거친 마음을 오래 품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거리에서 얼어 죽을 일이 없고 배를 곯을 이유가 없도록 지천에 과일나무가 널려 있으니, 이토록 풍성하고 다양한 오리지널 문화가 원래의 모습대로 지켜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 나라에도 종교를 앞세운 테러가 일어나거나 근본주의자들의 악법에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아직 자본이나 물질보다는 자신들의 전통과 영혼의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 애쓴다. 인도네시아 땅에서 오래전부터 지켜 온 토착 신앙과 힌두교, 불교 등의 종교가 자연스럽게 이슬람과 융합된 것도 인도네시아 사람들 특유의 부드러운 포용력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문화와 종교와 고유한 정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재단하며 미개하다고 여겨온 것은 언제나 치졸한 문명 쪽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띠끄랄은 ‘독립’이라는 뜻을 가졌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까떼드랄 카톨릭 대성당과 첨탑을 마주하며 서서 인도네시아가 타종교를 향해 가진 포용성과 조화를 보여줌과 동시에 멀리 인도네시아 인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모나스 광장의 탑이 보이도록 배치하였다. 1955년 수카르노 대통령이 처음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건축 디자인을 공모하였는데, 놀랍게도 실라반(Silaban)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독교 신자의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건축위원회의 어느 누구도 그의 종교를 문제 삼거나 거론하지 않았다. 대사원은 17년 여에 걸쳐 완공되었고, 특별한 종교일에는 한꺼번에 10만 여명의 신자들이 메카를 향해 기도를 올리는 동남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며 인도네시아 인들의 종교적 자부심으로 자리잡았다.
대사원의 구석구석은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문화와 종교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온갖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 사원을 찾는다면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잔Azan 소리가 들려오는 6666센티의 첨탑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꾸란이 6666 절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뜻한다. 중심부의 사원은 5층 구조여서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와 무슬림의 5대 의무를 나타내고, 지름 45미터의 천장은 1945년에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완전한 독립을 기념한다. 정면에는 ‘알라는 유일하다’라는 문장을 비롯해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아랍어로 써 놓았을 뿐, 어떤 경배물이나 상징물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내년부터 이 벽에 꾸란의 6666 절을 모두 새기는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얼마 전 대사원을 찾았을 때는 마침 금식이 풀리는 Buka Puasa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사원은 안과 바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벽과 통로가 격자 무늬 구조로 뚫려있어 바람이 오가는 길을 내주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어느 독지가가 기부했다는 종이 도시락에 담긴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분주함이나 어수선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가 공간을 분리해서 차분하게 앉아 있었고, 아이들에게 먼저 도시락이 건네졌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누구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으며 함께 찍는 것이 더 좋지 않냐고 되물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금식의 의미가 대체 무엇이냐고 다소 도발적으로 물었다. 해가 떠서 질 때까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다는 금식의 규율이 과연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지 의심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누군가 대답했다.
“누가 우리에게 꼭 금식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금식을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하지도 않습니다. 금식은 내가 알라를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 지키는 행복한 행위이고, 그저 나와 신과의 일대일 약속일 뿐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는 신과 나만이 압니다.”
“누가 우리에게 꼭 금식을 지켜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금식을 지키나 안 지키나 감시하지도 않습니다. 금식은 내가 알라를 더 가까이 만나기 위해 지키는 행복한 행위이고, 그저 나와 신과의 일대일 약속일 뿐입니다. 그 약속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는 신과 나만이 압니다.”
그러나 금식월 동안 꾸란을 읽으며 금식과 금욕을 통해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나누고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본래의 의미가 점점 잊혀지고, 일부에서는 금식 시간 외에는 오히려 더 떠들썩하게 먹고 즐기려는 문화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 그도 안타깝다고 고백했다. 날이 저물어가는 이스띠끄랄 대사원 마당에 서서 나는 그와 신이 나눈 일대일 약속이 기쁘게 지켜지기를 순진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했다.
*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격주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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