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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흥미로운 예술 담론 10분 (2) 문방사우, 왜 인류의 히트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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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손인식 느낌과 새김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5,741회 작성일 201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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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예술 담론 10분 (2) >
 
문방사우, 왜 인류의 히트작인가?
화선지, 붓, 먹, 벼루(紙·筆·墨·硯)에 깃든 놀라운 철학
 
산나루 서생
 
 
지필묵연 문방사우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필기도구입니다. 무려 몇 천 년 간 한 시대를 떵떵거리고 이끈 석학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겁니다. 역사도 기록하고 척척 붓글도 쓰고 휙휙 그림도 그렸습니다. 아주 귀중한 도구였어요.
 
과학이 발달하고 시대가 변했어도 퇴출될 기미가 없습니다. 예상해보면 앞으로도 창창할 것 같고요. 왜 그럴까요? 현대의 시각에서 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겠죠. 때문에 문방사우의 철학적 배경에 관한 강의가 필요합니다. 문방사우에 관한 이해는 동양예술을 학습하는 분들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인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문방사우가 일상의 필기도구였습니다. 정신의 양식을 위한 수저 젓가락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각종 필기도구들이 등장하고 또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방사우는 여전히 아주 특수하게 잘 쓰입니다. 그러니까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그림이나 붓글씨 등 동양예술에서야 절대적인 도구와 재료입니다.
 
서예가 뭐죠? 이렇게 물으면 흔히 붓글씨라고 대답합니다. 맞는 답입니다. 그러나 이 답은 조금 아쉬운 정답이지요. 서예는 붓으로 표현한 사상이요 형상으로 드러난 의식입니다. 정치가나 철학자들의 큰 무기였으니까요. 땅이나 화분에 심어진 난초가 아니라 뿌리 뽑힌 난초를 그려 나라를 잃은 울분을 토로한 것이 한 예입니다. 생사를 걸고 싸우다가 적장에게 시 한수 척 써 보내서 휴전을 하기도 했잖아요. 동양의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자연과 하나 되기였습니다. 동양 예술의 바탕이 동양 사상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서예가 사상 즉 이즘을 드러내는 수단이고 표현 예술이었어요. 동양사상이 뭡니까? 우주 대자연을 경외하는 자연주의, 자연합일입니다. 그러니까 동양의 예술은 자연을 즐기고 표현하는 방식이었고 그 과정은 인격도야였던 것이지요.
 
동양의 예술은 사의(寫意), 즉 모양이 아니라 뜻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서예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인격수양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문방사우를 다루는 솜씨도 중요시 했지만 무엇보다 작품에 고매한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것을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조금도 변함이 없고요. 그러므로 도구나 재료가 어떤 것이어야 했겠습니까? 이게 바로 문방사우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재료나 도구 또한 수양의 한 방편이어야 했다는 거죠. 그래야만이 자연의 진리, 인간의 철학을 드러내려는 의도와 격식이 맞지 않겠어요? 따라서 문방사우는 역사가 흐르고 흘러 필기도구가 바뀌어도 퇴출이 되기는커녕 더욱 가치를 인정받는 것입니다. 오늘날 아니 앞으로도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킬 것이 붓과 벼루 먹과 화선지 즉 문방사우라는 의미입니다.
 
자 확실한 이해를 위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화선지부터 살펴볼 게요. 제가 늘 하는 강조, 화선지는 바탕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죠. 순정합니다. 화선지를 맘껏 활용하기 위해서는 왠지 화선지를 사용하는 작가 스스로 순수해져야 될 것 같은 생각 들지 않나요? 마음을 잘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깨끗한 종이를 매우는 것이니 솜씨가 숙련되어야 할 것 같고요?
 
먹도 재밌습니다. 먹은 정성을 들여 갈아야 합니다. 찍 짜서 쓰는 튜브의 물감이 아녜요. 편리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도 전문가들은 절대로 먹물을 사서 쓰지 않습니다. 먹을 갈 때는 단단한 벼루에 갑니다. 벼루는 조직이 아주 단단한 돌, 물이 스미지 않는 돌 벼루여야 합니다. 거기에 맑은 물을 붓고 천천히 정성을 들입니다. 곧 먹을 가는 일은 작품을 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가다듬는 일입니다. 옛 선인들은 이른 새벽 샘에서 정한수를 길어다 먹을 갈았다고 해요.
 
서예의 붓은 다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붓의 털이 길고 부드러우며 많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조금만 잘못 다루면 꼬이고 갈라집니다. 천천히 쓰면 탄력을 잃고 빨리 쓰면 균형이 무너집니다. 물론 다루기 쉬운 짧은 붓도 있지요. 그렇지만 그런 붓은 그만큼 표현 영역이 좁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활용을 안 합니다. 이처럼 살피면 살필수록 매우 경이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문방사우입니다.
 
 
혹 이런 의문을 가져보신 적 있나요? 서양화는 왜 대체로 화려할까? 왜 물감을 끈적끈적한 오일에 비벼서 쓸까? 그렇다면 동양화는 왜 주로 엷은 색의 담채일까? 물감 또한 왜 물에 풀어서 쓸까? 그러니까 동양화와 서양화는 아주 다른 물과 기름이네?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가 사상에 있습니다. 동 · 서양화 모두 사상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하게 발전한 것입니다. 자연 합일주의인 동양사상은 과정을 중시합니다. 서양의 결과론적 사상과 정 반대죠. 따라서 서양이 완성형인 면을 추구한다면 동양은 완성으로 가는 과정인 선을 중요시합니다. 면의 테두리를 구분 짓거나 면을 구성해가는 선을 중심에 둡니다. 곧 동양 예술 표현 도구 붓은 선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다루기가 매우 어려운 붓은 인격도야가 배경인 것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서양화는 물감을 끈적끈적한 오일에 비벼 쓰므로 붓털이 짧고 강해야 합니다. 바탕도 튼튼한 캔버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표현 형식이나 기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양예술은 원천적으로 태양광선에 의한 음영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진하고 엷음으로 멀고 가까움, 깊고 얕음을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관념에 의존하죠. 서양 예술은 그 반대죠. 그래서 동양의 그림을 생각에 의한 그림이라 하여 사의(寫意)화라 합니다. 서양화는 그 반대인 사실화라고 하고요. 동양의 사상이 관념을 중시하니 예술은 먹이란 한 가지색을 풀어 우주만물을 다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히 보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관점이 도드라지지요. 반면 서양의 사상은 인간주의, 자연 정복주의, 사실주의이니 자연의 다양한 색, 채색이 발달 수밖에요. 그러므로 서양화에는 빛에 의한 시간성이 드러나고요.
 
자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영상 내용은 서양화와 동양화 무엇이 표현 방법으로서 더 낫고 모자라다는 비교가 아니에요. 다루기 쉽고 어려움의 문제도 아닙니다. 도구나 재료가 어떤 것이 우수하다는 비교는 더욱 아닌 것입니다. 서양에서 발생한 사상을 표현하려는 방법과 도구가 그것이었고 동양은 동양다웠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씀 드려 표현 예술이란 동양이나 서양이나 사상, 즉 시대 이즘을 따른 결과였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바탕 위에 얹히는 것이 있습니다. 변화요 융합현상이죠. 현대 사회의 특성이기도 한데요. 예술이 국경과 민족의 문화차이를 허문지 이미 오랩니다. 그러니까 동양화로 통칭되던 동양의 그림이 한국화요 일본화 중국화로 구분 되었습니다. 동양화 장르에서 서양화처럼 화려한 채색화 계열도 왕성합니다. 마티엘 효과를 차용하고 오브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붓글씨는 한국에서는 서예, 중국에서는 서법, 일본에서는 서도로 칭합니다. 내용은 같아도 명칭이 다릅니다. 서예의 색채 사용은 이제 새로움도 아닙니다. 또 언제 어떻게 변천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느 장르건 이제 퓨전예술이 상식인 시대인 것이죠.
 
*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아래 https://youtu.be/S0CWwrOiu6U영상 내용을 고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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