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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8) 원시로 돌아가는 시간 –코모도Komodo 국립공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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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이 만난 매혹의 인도네시아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061회 작성일 2019-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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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인도네시아 8 - 누사뜽가라(Nusa Tenggara) >
 
 
원시로 돌아가는 시간 - 코모도Komodo 국립공원 1
 
글과 사진 / 채인숙 (시인)
 

2020년 코모도 섬이 일년 간의 휴식기에 들어간다는 인도네시아 환경산림부의 발표가 얼마 전에 있었다. 한 해 동안 모든 관광객의 출입을 금지하고, 지구에 남아있는 가장 크고 오래된 왕도마뱀인 코모도드래곤의 서식 환경을 정비할 것이라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겨우 일 년 가지고 얼마나 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5천여 마리에 달하던 코모도드래곤의 개체수가 최근 천 마리 이상 급격하게 줄어든 상황이라니, 늦게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의 조처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코모도는 소순다 열도의 한가운데 떠 있는 원시의 섬이다. 플로레스와 숨바와 사이,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있는 위치 덕분에 거대한 파충류 희귀종인 ‘코모도드래곤’이 아직 서식한다. 3미터에 달하는 몸 길이와 90킬로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가졌지만 시속 20킬로미터의 달리기 실력을 갖춘 이 왕도마뱀은, 침 속에 든 독으로 자신보다 덩치가 큰 짐승은 물론 가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코모도 국립공원은 코모도 보호구역이 있는 코모도 섬과 트레킹 코스로 더 유명한 파다르, 야생 코모도를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린짜 섬을 비롯해 30여 개의 섬들이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배경으로 늘어서 있고, 지구에 몇 없다는 핑크비치, 다이버들의 성지라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바다 속 경관을 자랑한다. 세계 7대 자연 경관에 속하는 원시의 자연을 날 것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1991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문 기사를 읽고, 나는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코모도 여행을 자연스레 떠올렸고 지난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네시아가 한 덩어리였던 시절부터 그 땅에서 살아온 거대한 원시의 생명체와 마주쳤던 시간. 대체 몇백만 년 전부터 머물러 있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천진하고 매혹적인 원시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던 그 곳.    
 

3년 전, 크리스마스 휴가를 코모도 섬에서 보내기로 한 우리 가족은 일찌감치 라부안바조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다. 마침 자카르타에서 떠나는 직항 노선이 생겨 발리나 롬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코모도로 갈 수가 있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야생의 코모도드래곤을 보고 싶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만타 레이Manta Ray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코모도 다이빙에 대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피니시Pinisi 목선(인도네시아 전통 선박)을 타고 코모도 국립공원을 여행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rd 트립을 신청할까 갈등하다가, 다이빙을 못하는 내가 5일 동안이나 배 안에서 생활하기는 너무 무리일 것 같아 섬을 오가며 호텔에서 지내는 좀 심심한 일정을 짰다. 코모드래곤을 만나고 남편과 아이들이 다이빙을 나가면 혼자 항구를 어슬렁거리며 맥주를 마시거나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라부안바조는 작고 평범한 항구였다. 다이버들이 많이 찾는 곳이니만큼 곳곳에 다이빙 숍들이 즐비하다는 것과 항구 앞쪽으로 웨스턴 식당이 몇 군데 있다는 걸 제외하면 인도네시아의 여느 시골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다. 코모도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우리는 작은 나무 보트 한 척을 빌렸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여행도 좋지만, 이번에는 그저 가족끼리 단촐하게 움직이면서 소박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항구를 떠난 배는 하늘과 바다 사이 수백만 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섬과 섬을 지나며 시원하게 나아갔다. 바다 빛깔은 깊고 맑은 원시의 밀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짙고 푸른 초록이 온통 치솟듯 뒤엉켜 있는 섬들이 간간이 곁을 지나갔다. 벅차게 아름다웠다. 설사 왕도마뱀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이 바다와 섬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겼다.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가장 큰 감동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대체로 그런 순간이었다. 인간의 손때가 닿지 않은 원시의 자연을 만날 때, 그 자연에서 짐작조차 가지 않는 오랜 시간의 흔적을 느낄 때, 그리고 그 시간 속을 살아가는 묵묵하고 경건한 어떤 삶의 궤적과 마주쳤을 때.           
 
 
코모도 섬에는 4천만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했다는 거대한 왕도마뱀이 해안가의 마른 수풀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길섶에 보이는 작은 동굴같은 곳이 녀석들의 집이라고 했다. 가끔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사라지는 코모도드래곤을 발견하면 저절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우리와 동행한 레인저는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면서, 언젠가 코모도드래곤의 등을 그만 나무둥치로 착각하고 걸터앉았던 사람이 맹렬한 공격을 받아 죽임을 당한 적이 있다고 겁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보호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녀석들을 발견하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짧은 신호를 보내주고, 코모도드래곤에 가까이 접근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카메라 위치를 잡아주면서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사실 레인저가 들고 다니는 무기라곤 가느다란 나무막대기가 전부여서 왕도마뱀이 진짜 우리를 공격해 온다면 저 막대기가 무슨 소용일까 싶은 의심이 들었지만 말이다. 
 

다행히 12월은 짝짓기를 하는 시기는 아니어서 녀석들은 그다지 난폭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축 늘어진 채 낮잠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탐험 끝엔 좀 더 많은 야생의 왕도마뱀과 마주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여러 마리의 코모도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보호소에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녀석들을 관찰할 수도 있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보던 코모도드래곤의 치열한 몸싸움이나 다른 짐승을 공격한 뒤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이빨을 드러내는 광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인간이 살지 않았던 아득한 저편의 시간들이 그리 낯설거나 거칠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도 자연은 자연의 일을 하고 있었으려니....  (2부에 계속)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격주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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