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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11) 길리 아이르의 이둘 피트리Idul Fit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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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이 만난 매혹의 인도네시아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6,394회 작성일 2019-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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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의 인도네시아 11 - 길리 아이르 Gili Air >

길리 아이르의 이둘 피트리Idul Fitri
 
글과 사진 / 채인숙(시인)
 

한 달여 간의 라마단 금식월이 끝나면 인도네시아에도 민족의 대이동이 벌어진다. 설날이면 선물꾸러미를 들고 고향을 찾고 멀리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모습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다. 다만 인도네시아는 워낙 큰 섬나라이다 보니 이동 거리와 이동 시간이 아주 멀고 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르바란Lebaran, 이둘피트리Idul Fitri 혹은 하리 라야Hari Raya라 불리우는 이슬람력 새해의 휴가 기간은 보통 열흘이 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직원부터 집안일을 거들어주는 도우미들까지 일찌감치 기차표나 버스표를 마련해 놓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르바란 휴가를 어디서 보낼지 고민한다. 
 
올해 르바란은 아이들의 여름 방학과 날짜가 겹치고 마침 큰아들도 자카르타에서 인턴쉽을 하게 되어서 우리 가족은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긴 휴가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두 아들에게 어디서 휴가를 보내면 좋겠냐고 먼저 의견을 물었는데, 둘 다 이구동성으로 길리 아이르에 가서 조용히 쉬고 오자고 입을 모았다. 너무 심심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더니, 그게 바로 길리 아이르에 가는 이유라고 대답했다. 좋다. 심심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 중의 하나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롬복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구하고 숙소를 예약했다. 아이들은 이미 길리 아이르에 두 차례씩 다이빙을 다녀 온 경험이 있었는데, 우리 가족이 몇 년 전 휴가를 보냈던 길리 트라왕안보다 훨씬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이라고 했다. 
 
 
롬복은 작년에 엄청나게 큰 지진을 겪은 후로 아직 완전한 복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섬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곳곳에 무너진 집과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는 작은 호텔과 리조트들이 눈에 띄었다. 길리 아이르는 롬복 앞바다에 떠있는 길리 3형제(길리 아이르, 길리 메노, 길리 트라왕안)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고 그만큼 눈에 띄는 피해도 컸다. 스피드보트를 타고 15분 쯤 달려서 도착한 섬에는 지진의 여파가 여전했지만, 다행히 다이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산소통을 메고 배에 오르거나 가까운 바다에서 스노쿨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서 예전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가는 듯했다. 길리 아이르는 사방 어디나 바닷물이 맑고 깨끗해서 스노쿨링을 즐기기에 특히 좋다. 자전거를 타고 가벼운 배낭을 멘 채 섬을 돌고 있는 연인들이 많아서인지 트라왕안에 비해 한적하고 로맨틱한 분위기였다. 

 
닷새 동안 섬에 머물면서 남편과 아들이 하루 두 차례 다이빙을 나가는 것을 제외하곤 아무 계획도 없고 정해진 일정도 없이 그저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해변의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책을 읽다가 바다 속을 들락거리며 잠시 수영을 하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시거나 컵라면을 먹는 일이 전부였다. 해가 한풀 꺾이면 섬 뒤쪽으로 가서 썰물이 나는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가 석양이 질 때쯤 숙소로 돌아왔다. 아들은 거의 맨발로 섬을 걸어다녔고 혼자 떨어져 글을 썼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지내다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가볍게 술을 마시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요없이 쌓아 두었던 많은 생각과 고민과 불안들이 천천히 씻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길리 아이르를 떠나기 전날은 라마단 금식월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밤이 되자 조용하던 섬에 갑자기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꾸란을 외우는 스피커 소리가 뒤범벅되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숙소 앞 큰길로 나가보았더니 이둘피트리를 맞아서 섬 주민들이 모두 나와 거리 행진을 펼치고 있었다. 커다란 낙타 모형 위에 사내아이가 앉아서 행렬의 맨 앞을 장식하고 횃불을 치켜 든 어른이 연신 춤을 추며 행렬을 이끌고 있었다. 이맘으로 보이는 어른이 “Allahu Akbar”(신은 위대하다)를 선창하면 섬 주민들이 뒤를 이어 부르며 퍼레이드를 펼치는 중이었다. 길리 아이르의 행정구역은 아마도 RT1~3으로 나뉘어진 모양이었다. 모두가 하얀 옷을 차려입고 동네마다 낙타나 머스짓 모양의 모형물을 앞세운 채 램프를 들고 줄을 이어 행진했다. 

 
우리 가족은 행렬의 뒤를 따라 걸으며 지난해 엄청난 지진을 겪고 이제 힘을 추스리며 다시 일어서는 길리 아이르 주민들에게 안녕과 평화가 함께 하길 빌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에 정착한 지 어느새 22년을 맞는 우리 가족이 이 땅에서 무사히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우리의 종교가 이슬람은 아니지만, 그 행렬을 따라 걸으며 드렸던 기도가 그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다. 우리 가족에게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고, 그 시간을 지나오는 내내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기도를 받으며 힘을 얻었다. 그때 나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준 모든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훨씬 외롭고 황폐했을 것이다. 나는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눈을 마주치는 모든 섬 주민들과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Selamat Idul Fitri” 밤에도 맑게 비치는 길리의 바다와 깊게 빛나는 하늘의 별과 잎이 커다란 해변의 나무와 사람들의 친절하고 흐뭇한 미소가 한꺼번에 빛나는 밤이었다.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매혹의 인도네시아”는 8월까지 휴재합니다. 9월 첫주에 좋은 글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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