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시작할 때 끝맺음을 설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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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끝맺음을 설계하라!
글: 산나루 서생
안녕하세요? 산나루 서생입니다. “밥은 먹고 사세요?” 약 15년 전에 들었던 말입니다. 제가 처음 자카르타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1년쯤 지났을 때 받았던 질문이죠. 붓 한 자루 달랑 들고 와서 전업 작가로 사는 것이 사업하시는 분들이 보기엔 아무래도 안쓰러웠던 가 봅니다. 국내에서는 국내대로 서예가가 타국에서 도대체 뭘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변함없이 제 일을 하면서 나름 잘 살아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TV 채널에서 찾아와 방송으로 공개하기도 했고, 라디오 방송 인터뷰도 몇 번 했습니다. 제가 서예가니 서예 전문 월간지와는 수차 인터뷰를 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또 한국의 서예 전문 월간지 한 곳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경영이 예술이다>와, <인물과 서예>전 때문입니다. 우선 서예가가 발간한 책 제목이 서예가와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던가 봅니다. 어쨌든 저는 인터뷰에 응했고 그때 이야기 중심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이 영상의 제목인 <시작할 때 끝맺음을 설계하라>입니다.
늘 그렇듯 2018년 프로젝트 <경영 탐문>을 시작하면서 저는 마무리 계획을 분명하게 세웠습니다. 일단 일 년을 관통할 프로젝트 제목을 정한 다음 평소와 같이 컴퓨터에 폴더 하나 만들었지요. 그리고 개요부터 실행 방법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나갔습니다. 물론 끝맺음의 형태를 심사숙고해서 정리했지요. 이런 과정은 더러 처음 정한 제목 바꾸게 합니다. 내용 또한 처음 생각한 것과 달라지기도 하지요. 대신 프로젝트가 잘 다듬어집니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도 속속 떠오르고요.
<경영 탐문>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은 지난주에 소개했었지요. 영상 <인도네시아 한인들 성공 키워드 찾기>를 통해 그 전말을 소개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획하고 전개했으며 어떤 형태로 마무리 지었는지 이해하셨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 영상은 당연히 오늘의 주제에 충실하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뭐였죠? 네 그렇습니다. <시작할 때 끝맺음을 설계하라>죠.
인터뷰할 때 불쑥 묻더군요. 그간 타국에서 활동한 결과물들이 만만찮은데 왕성한 활동의 바탕이 뭐냐는 거였습니다. 그 답 저로서는 너무 간단했죠. ‘자생’이었습니다. 스스로 살아내야 했거든요. 투자자도 아니고 주재원도 아닌 저 같은 예술가가 타국에서 살아내려면 군말 없이 자생해야 되겠더군요. 사실 저도 이주를 하고서야 참으로 아찔한 현실과 맞닥뜨렸습니다. 서예가가 타국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벽을 상대해야 하는 가를 그때서야 알았죠. 왜 그런 현실도 감안하지 않은 채 활동지를 옮겼느냐는 질문 바로 등장할 수 있죠. 저라고 왜 그걸 감안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그것에 관해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이 저겠죠. 제 성향이 좀 덤벙대기는 하지만 나름 상당히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고 당시 결론으로는 가능성도 있었어요.
ㅎ ㅎ~ 당시 상황 다 털어놓으면 상당히 드라마틱한데요 그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밝히겠습니다. 어쨌든 서예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주 드물다는 것, 같은 아젠다로 뭉칠 사람이 없다는 것, 이게 뭔가요. 참 재미없지요. 불모지를 의미할 수도 있지요. 암튼 전업 작가가 활동하기에는 매우 열악한 조건이죠.
그래서 저는 활동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보따리를 쌌던 겁니다. 그런데 보따리를 싸면서 살피니 돌아가는 것도 첩첩 산중인 거예요. 다 정리하고 떠나온 것이 불과 6개월 전인데 초라하게 돌아가려니 참 암담했어요. 시쳇말로 참 모냥빠지는 일이었지요. 이주한 뒤 진행된 일도 많았어요. 함께 이주한 중학교 3학년 딸은 이미 국제학교에 전학을 했고 집은 장기 렌트한 상황이었습니다. 자동차도 샀고 나름대로 상당부분 일을 진행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나는 나다’ 였습니다. ‘나는 예술가다’는 생각이었죠. 누구도 제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고, 누구도 제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앞에 놓인 것이 하얀 백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틈만 나면 펼쳐놓고 여기에 뭘 채우지 하고 생각하는 그 하얀 바탕이요. 그래 까짓 거 도전하자 맘먹었지요. 이루지 못하면 다 제 탓이란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제가 속한 이 사회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공인이 아닌데 스스로 공인이라고 다짐했지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데 한국에서 파견된 서예 대표선수라는 의식을 가진 거죠. 하려 드니 할 것이 제법 많았어요. 그래서 매년 일 년 프로젝트를 계획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훈민정음을 주제로 한 서예전 <사랑의 훈민정음>이었습니다. 그 다음 일 년은 가훈 좌우명, 사훈, 상호명 써주기 프로젝트 <아름다운 축제>가 일 년을 바쁘게 했습니다. 다섯 차례 전시와 작품 150점을 수록한 이 책 발간이 제 일 년을 꽁꽁 묶었지요.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반세기 문화를 기록하기 위해 혼신을 기울였던 <아름다운 한국인> 또한 벅찬 일 년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지금여기>를 출간했습니다. 타국살이 작가가 느낀 인도네시아 풍정과 애환을 담은 것이지요. 이 책 발간과 함께 저는 서울로 날아가 인사동에서 <지금여기> 란 제목의 개인전도 열었습니다. 그 해에는 평론집 <정상에 오르는 길을 찾아서>도 빛을 봤습니다. 국내 활동 당시 활발하게 전개했던 평론 원고와 활동 처를 옮긴 후에 있었던 몇 편의 원고를 망라한 제겐 아주 소중한 저서입니다.
제 계획과 끝맺음에 관한 설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54인의 교민과 함께 타국살이 이야기를 공동으로 저술한 <도처고향> 출간이 뒤를 이었지요. 이때도 출판기념회는 책에 수록된 전시를 겸하는 이벤트였습니다. 그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인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묶는 것이었습니다. 교민 44인 이야기가 함께 수록된 이 책 <도처교학>이 또 일 년을 장식했던 것이지요. 얼결에 보낸 첫 해를 재외하고 8년 동안 7권의 책이 이렇게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매년 거르지 않았던 것이 함께 공부하는 회원들의 정기 발표전이었습니다.
이처럼 계획한 것은 나름 끝을 잘 맺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성과가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 딱 하나 한 번 계획한 것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를 지었다는 사실이죠. 이것이 끝맺음의 형태를 처음부터 계획한 덕이 아닐까요? 그 후로도 저는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했고, 2015년 회갑 때는 서울로 날아가 회갑전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습니다(物有本末). 일에는 시작과 마침이 있습니다(事有終始). 그러니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깝다(知所先後 則近道矣)고 합니다. 사서삼경 중 大學에 나온 말입니다.
자 지금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먼저 할 바와 나중할 바를 정하셨나요? 끝마무리 형식도 설계하셨나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꼭 끝을 설계하십시오. 일의 순서 또한 선명해질 것입니다. 이상 산나루 서생이었습니다.
* 덧붙이는 말 : 이 글은 아래 https://youtu.be/9BFPeOSIRP8 영상 내용을 고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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