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3) 아, 이토록 붉은 것들 -람부딴과 명옥이네 앵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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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인도네시아 3 -람부딴 >
아, 이토록 붉은 것들
-람부딴과 명옥이네 앵두나무
글과 사진 / 채인숙 시인
12월 우기에는 자바섬 곳곳에서 람부딴이 붉게 익는다. 연말과 연초로 이어지는 두어 달 남짓, 빨간 종이 매달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것처럼 람부딴 열매가 빼곡히 달린 나무들 사이로 저녁 산책을 나간다. 람부딴은 껍질에 마치 머리카락 같은 술이 달려있어 Rambutan(머리카락이란 뜻)이라는 단도직입적인 이름을 가졌는데,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과일 나무다. 우리 나라로 치면 감나무쯤 되겠다.
람부딴이 붉은 색을 띄기 시작하면 길다란 나무 채를 들고 열매를 따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나무 아래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람부딴 가지를 툭 꺾어서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건네준다.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고 쪼개듯 껍질을 벌리면, 하얀 열매의 속살이 뽀얗게 드러나고 촉촉한 물기가 자르르 비친다. 그 자리에서 알사탕 까먹듯이 람부딴을 쏙 빼먹는다. 하아, 입 안 가득 싱싱한 단내가 가득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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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보낸 남해안 바닷가의 소도시는 산과 들과 바다가 모두 있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노릇인지 사람들은 늘 가난에 시달렸고, 시장통 근처만 가도 험한 자연을 상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특유의 거친 입담이 사방에서 들렸다. 친구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집 마당에서 홍합을 까거나 쥐포 공장에서 쥐치 껍질을 벗기는 일을 했다. 봄에는 모내기를 하고 가을에는 추수를 돕거나 과일을 따느라 학교에 빠지는 아이들도 많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형제들은 세계명작 100권을 월부로 사들이고 그 책을 전부 읽는 것이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우리 집이라고 별다를 거 없이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을 텐데, 친할머니부터 외할머니, 그리고 어머니까지 시골에서 보기 드문 자존감을 가진 여성들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여자 형제가 셋이나 되었지만, 누구에게도 원치 않는 부엌 일을 강요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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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 집에 책을 빌리러 오는 친구들 중에 과수원집 명옥이가 있었다. 봄이 지나면서 날이 조금 후덥지근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뻔질나게 명옥이네 집으로 가는 산길을 올랐다. 집 앞 과수원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장독대 옆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앵두나무에 조랑조랑 매달린 빨간 열매를 톡톡 따먹는 재미는 어디 비할 바가 없었다. 물론 동네 욕쟁이로 소문 난 명옥이 할머니는 앵두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고 번번이 호통을 치셨지만, 우리는 앵두를 담는 종이 봉투를 열심히 접으면서 눈치껏 앵두 씨를 내뱉았다.
과수원 규모라고 해봤자 텃밭 수준이어서 그 집도 늘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명옥이는 5학년 때 대전에 사는 고모네로 입양 아닌 입양을 갔다. 그 후로 명옥이를 딱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집에 잠시 다니러 온 명옥이와 시장통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키가 훌쩍 컸고 서울 말(그때 내 귀엔 충청도 사투리가 서울 말로 들렸다)을 쓰는 명옥이가 무척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과수원 규모라고 해봤자 텃밭 수준이어서 그 집도 늘 형편이 어려웠다. 그래서 명옥이는 5학년 때 대전에 사는 고모네로 입양 아닌 입양을 갔다. 그 후로 명옥이를 딱 두 번 보았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집에 잠시 다니러 온 명옥이와 시장통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키가 훌쩍 컸고 서울 말(그때 내 귀엔 충청도 사투리가 서울 말로 들렸다)을 쓰는 명옥이가 무척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턴가 람부딴 나무를 볼 때마다 명옥이네 앵두나무가 생각나 울컥, 목이 메곤 한다. 겨울이면 빨갛게 얼었다가 봄이면 앵두 빛깔처럼 되살아나던 명옥이의 붉은 뺨도 떠오르고, 함께 읽었던 소공녀와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도 떠오른다. 나는 가버린 그 모든 시간들이 한없이 그립고, 문득 서럽다. 아... 이토록 붉은 것들. 영영 만날 길 없는 이름들이 람부딴 가지마다 방울방울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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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글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경제신문에 격주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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