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곳은 누구의 정원일까 -스타벅스와 사라스와띠(Saraswati) 연꽃 정원 >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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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1) 그곳은 누구의 정원일까 -스타벅스와 사라스와띠(Saraswati) 연꽃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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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 시인이 만난 매혹의 인도네시아
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7,701회 작성일 2019-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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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혹의 인도네시아 1-  Bali >
 
 
그곳은 누구의 정원일까
-스타벅스와 사라스와띠(Saraswati) 연꽃 정원
 
글과 사진 / 채인숙 시인
 
 
발리를 몇 번이나 갔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아마도 사는 곳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드나든 여행지일 것이다. 갈 때마다 소소한 여행의 목적을 만든다. 갤러리를 돌며 그림을 보고 무명작가의 그림 몇 점을 들고 온 적도 있었고, 바다 앞에서 종일 책만 읽었던 날도 있다. 발리 공예품들을 구경하는 데만 며칠을 쏟은 적도 있었고, 언젠가는 힌두교와 발리 토착 신앙의 접합점을 찾는 TV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발리의 농촌 마을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어쨌거나 발리에서의 추억은 그때마다 색깔이 다른 행복으로 저장되어 있다.
 
최근의 발리 여행에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았던 곳은 뜻밖에도 우붓(Ubud) 거리의 스타벅스 커피숍이었다. 커피 벨트에 걸쳐져 있는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고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커피숍들이 꽤 있지만, 넘칠 듯이 끼얹어 나오는 하얀 크림과 온갖 재료들로 뒤섞인 커피 음료들을 파는 스타벅스가 도시 곳곳을 점령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모비딕에 나오는 일등항해사의 이름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사이렌의 모습에서 가져왔다는 초록 간판의 여인을 볼 때마다, 인도네시아 곳곳에 나름의 역사를 품고 건재했던 오래된 카페의 로스터스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현장을 확인하는 듯한 씁쓸함을 함께 느끼곤 했다.
 
 
우붓 거리의 스타벅스는 긴 나무판에 아무런 색깔도 없고 어떤 치장도 없이 그저 커피숍의 이름을 길게 조각한 간판과 작은 원형의 초록 사이렌 간판이 길가 쪽으로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사라스와띠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편에 위치해 있는 커피숍 계단 위에는 스타벅스의 상징인 사이렌이 초록색을 벗어던지고 맨얼굴을 드러내듯 나무결 그대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 소박한 나무 간판이 우붓에 위치한 이 커피숍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더운 몸을 식히러 안으로 들어가자 왼편 창문으로 그림처럼 놓여진 사라스와띠 사원의 연꽃 정원이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쩌면 영리한 커피숍의 주인은 사원의 아름다운 연꽃 정원 앞에서 스타벅스의 초록 간판이 얼마나 부조화스럽고 우스꽝스럽게 비칠지 미리 짐작하고 있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 조그만 창문 앞에 서서 사원의 정원을 오래 바라보았다. 커피 맛은 다른 곳보다 특별히 나을 것이 없었고 직원들은 대형 커피숍의 메뉴얼대로 친절하고 발랄했다. 그런데 사암으로 만들어진 발리의 사원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배치를 보여주는 사라스와띠 사원이 연꽃 정원을 건너 멀리 주황빛을 발하며 서 있는 모습을 작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면서, 순간 교묘한 황홀에 빠져들었다. 그 창문은, 저 성스러운 사원과 분홍 로터스가 가득 핀 정원의 주인이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이 아니라 지혜와 예술의 여신이라 불리우는 사라스와띠 여신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커피숍을 나와 사라스와띠 사원의 연꽃 정원을 천천히 가로질러 걸었다. 그 정원 한가운데서 되돌아 서 스타벅스의 창문을 도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대형 커피체인점의 감추어 둔 장삿속이라 해도, 자신의 색깔을 비워내고 이곳이 성스러운 여신의 자리였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다행스러웠다. 사원(Pura)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나 입구(Candi Bentar)는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으로 채워져 있었고, 정원에는 부드러운 분홍 연꽃이 연못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마시며 연꽃과 사원을 배경으로 연신 셔터를 누르는 젊은이들을 흐뭇하게 지켜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것을 신에게 바치려 했던 인간의 마음이 가상하고 눈물겨운 저녁이었다.
 
 
* 채인숙: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예술에 관한 시와 산문을 쓰며, 인도네시아 인문창작클럽에서 활동한다.
 
* 채인숙 시인이 만난 ‘매혹의 인도네시아’를 시작합니다. 가능한 가볍고 가능한 아름다운 글을 적으려 합니다. 그동안 ‘자바에서 시를 읽다’를 사랑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데일리 인도네시아와 자카르타 경제신문에 격주로 동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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