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7) 생존부등식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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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속의 IT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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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경영 속의 IT 기술>
생존부등식의 딜레마
남영호 (국민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부등식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고객이 얻는 가치가 제품의 가격보다 커야 한다 (가치>가격). 이는 제품이 팔리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둘째, 제품의 가격은 원가보다 커야 한다 (가격>원가). 두번째 부등식은 단기적으로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조건을 합치면 “가치>가격>원가” 라는 생존 부등식이 나온다.
기업의 생존부등식은 매우 자명하다. 고객이 구매하는 이유이며, 기업이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오면서 이 생존부등식이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바로 IT산업, 즉 정보통신산업이다. 정보통신산업에서 취급하고 있는 제품과 서비스가 기존의 제품과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998년9월에 출시한 리니지 (Lineage)라는 유명한 온라인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서비스하고 있으며, 누적 매출 3조 2천억을 올렸다고 하니 정말로 대단한 게임이다. 더 대단한 사실은 20년 동안 월 29,700원의 정액 사용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객이 부담하는 리니지의 가격이 월 29,700원이라면 원가는 이보다 적어야 한다. 그렇다면 리니지의 원가는 과연 얼마인가? 계산이 쉽지 않다. 그리고 고객이 느끼는 리니지의 가치는 얼마나 되나? 필자에게 물어본다면 가치가 전혀 없을 것이고, 리니지 광팬에게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리니지에 어떻게 생존부등식을 적용할 수 있는가? 이번 칼럼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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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산업에서 취급하는 게임, 소프트웨어 등의 제품을 통칭하여서 디지털 재화라고 한다. 디지털 재화는 컴퓨터와 함께 탄생하였다. 디지털 재화는 0과 1로 표시되어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 모든 제품을 칭한다. 따라서 컴퓨터에 저장되고 통신망으로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 음성, 그림, 동영상으로 만들어진 재화가 모두 디지털 재화이다. 제품군으로는 전자책, 비디오, 게임, TV프로그램, 이러닝, 웹카툰, 홈쇼핑, 인터넷쇼핑 등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의식주 (衣食住) 그리고 행 (行)에 관련되는 전통적인 제품이 비(非) 디지털재화인 반면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 재화가 디지털재화이다.
이러한 디지털 재화는 경영의 틀을 바꾸어 놓고 있다. 앞의 예에서 언급한 것처럼 리니지의 가격은 얼마로 정해야 좋은가?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원가개념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더구나 리니지의 가치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경영자 입장에서 가치를 알아야 가격전략을 세울 수 있는데 가치가 천차만별이니 고민거리이다. 이처럼 가격 정책은 게임 등 모든 디지털 재화를 거래하는 기업인들의 고민 거리 중의 하나이다. 과거의 틀 속에서 가격 전략을 세운다면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 할 것이다. 어떻게 가격 전략을 세워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과정에서 변화를 좇아가지 못해서 실패한 사례를 살펴보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실패 사례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768년 영국에서 출간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권위있는 백과사전이다. 디지털 세상으로 바뀌기 전까지 최고의 권위를 누렸지만, 시대를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그 명성을 유지하지 못 하게 되었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컴퓨터판 백과사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초에는 마이크로소프트 (MS)가 함께 컴퓨터판 사업을 하자고 제안을 하였지만 거절하였다. 결국 MS는 중소 백과사전 업체를 사들여서 엔카르타 (Encarta)라는 CD 한 장짜리 백과사전을 만들었고, 엔카르타는 이 시장에서 선풍적인 히트를 쳤다. 브리태니커는 엔카르타에게 밀려서 매출이 반 토막이 나고 결국 도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필자도 1995년도에 엔카르타를 구매하였었다. 엔카르타를 구매할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1995년 당시는 북한에 관한 책자를 지니고 있으면 간첩으로 오해받던 시대이다. 그런데 지인으로부터 엔카르타에 북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있으며, 더구나 북한의 국가(國歌)를 합법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0만원 정도에 엔카르타를 구매한 적이 있다.
1990년대 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고, 인터넷 집단지성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Wikipedia)가 나온 후 대세는 결정되었다. 종국적으로 2012년에 브리태니커는 인쇄판 백과사전 사업을 접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함께 백과사전 사업을 하자고 제안할 때 이미 브리태니커도 대세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대세를 따르지 못하고 10여년 후에 망하는 악수를 두게 되었는가? 그 당시 최고경영자들의 말을 빌자면, 한 세트에 200만원짜리 최고 지성의 완결판인 제품을 팔던 영업대표들의 강력한 저항에 대세를 따르지 못했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디지털화 추세에 역행하던 기업이 한방에 가버린 좋은 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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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면 디지털화를 누구보다도 먼저 시행하였지만 재미를 못 본 사례도 있다. 국역판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는 25대 4백72년의 역사사실을 기록한 세계 최대의 단일 역사서이다. 민족문화추진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2백여억원을 들여서 26년간 국역사업을 벌였고, 이를 서울시스템이 4년동안 전문가 700여명의 손을 빌리고 50억원을 들여서 CD롬3장으로 옮겼다.
드디어 1995년 10월에 전자판 초판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초판 가격을 물경 6백만원으로 책정하였다. 1995년에 6 백만원이라는 돈이 얼마나 큰 돈인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그렇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생존부등식을 염두에 두고 가격 전략을 세운 것 같다. 생존부등식의 두 번째 조건에 따른다면 가격은 원가보다 커야 한다. 50억원의 총 제작비를 예상 판매부수, 예컨대 1,000부 정도로 나누어서 단위 원가를 계산하면, 조선왕조실록 한 세트의 원가는 5백만원 정도 이고, 결국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키는 가격은 최소 500만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에 따라 가격을 6백만원으로 잡지 않았나 라고 추측해 본다.
두 번째 생존부등식은 기업 내부의 문제이지만, 첫 번째 부등식은 문제가 다르다. 가치가 가격보다 커야만 고객이 해당 제품을 구매할 것이다. 과연 조선왕조실록의 가치가 6백만원을 초과한다고 느끼는 고객이 얼마나 있을까? 한 200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동아일보 1999년 4월23일자 기사를 인용하면, “서울시스템이 4년만에 다시 보급판을 내놓은 이유는 복사본 해적판이 너무 많이 돌기 때문. 출간 후 정품 판매량은 불과 2백 세트에 그쳤지만 불법 복제된 해적판은 10만 세트가 나돌았다는 게 출판사측 집계다.” 서울시스템은 4년만에 6백만원에서50만원으로 가격 인하를 단행하였다.
실록의 편찬에 깊이 관여하였던 인사가 필자 사무실을 찾아와서 환담을 나눈 적이 있다. 이분이 전자판 조선왕조실록을 선물로 주시면서, 이 세트가 시중에서 50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그런데 필자가 눈치도 없이 50만원씩이나 되는 비싼 것을 선물로 주시냐고 사양을 하였더니, 이 분이 그래도 책꽂이에 꽂아놓고 南씨 집안에 대해서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그냥 받아야 하는 것을 한마디 더 했다. ‘보시다시피 책꽂이에 꽂을 자리도 없으니 필요한 분 드리시지요.’ 결국 받으면서 필자와 주신 분, 둘 다 머쓱해진 기억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가치는 얼마일까? 불법복제가 10만 세트 정도라는 것은 적어도 10만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었다는 반론이다. 그러나 가치의 수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거의 가치가 없는 물건이다. 그 반면 역사를 공부하는 분에게는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를 가질 것이다.
만약 가격을 결정하는 첫 번째 생존부등식의 기본 전제인 가치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어떻게 가격을 정할 것인가? 이 질문은 모든 디지털 재화에 적용할 수 있다. 게임, 전자책, 영화 등 디지털 재화의 효용성은 사람마다 편차가 클 것이고 기꺼이 받아드릴 가격 범위가 다를 것이다.
만약 조선왕조실록을 고객에 따라 또는 내용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판매하였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어떤 고객에게는 천만원 정도로 팔고, 어떤 고객에게는 몇 십만원 정도에 팔면 어떠하였을까. 대형 도서관에게는 가치가 높은 도서일 것이다. 도서관이 해외 논문DB이용권을 몇 천만원에 구매하여 제공하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왕조실록도 구매하는데 주저할 리가 없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버전을 풀 버전 (full version), 학술 버전, 일반인 버전으로 구분하여서 판매하는 방법도 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가격 차별화를 하였다면 아마도 정품 판매량이 2백 세트보다는 더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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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프로 (Voice Pro)라는 소프트웨어 가격정책은 조선왕조실록의 가격결정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제품은 음성을 문자파일로 바꾸어주는 소프트웨어 패키지이다. 표에서 보듯이 기본 콘텐츠가 들어있는 ‘보이스 패드’는 79불인 반면, ‘Voice Ortho’는 8,000불이다. 기본 콘텐츠인 2만 단어를 바탕으로 오피스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집어넣어서 ‘Office Talk’이라는 제품을 만들고, 여기에 법률 용어를 더 집어넣어서 ‘Law Talk’, 의학 용어를 집어넣어서 ‘Voice Med’를 만들어서 가격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특히 수술용 용어가 들어가 있는 ‘Voice Ortho’은 의사들이 수술과정을 모두 기록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만들어 졌다. 수술 집도의는 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그 상황을 녹음할 것이다. 이 녹음은 수술이 끝난 후에 파일로 정리되어서 보관되어서 향후 닥칠지 모르는 의료 분쟁의 증거자료로 사용할 것이다. 값비싼 의사의 시간을 절약하고 의료 분쟁에 대비한 완전한 자료를 만들어 주는 ‘Voice Ortho’를 일반인 버전에 비하여 무려 100배나 비싼 가격에 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구매할 것이다.
전통적인 제품, 즉 非 디지털 제품에서는 제품의 내용을 차별화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비용이 많이든다. 예컨대 자동차의 차별화라는 것은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과 동일하다. 자동차를 차별화하는 데에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반면 디지털 재화에서는 제품의 콘텐츠의 차별화는 어렵지 않으며 비용도 거의 안 든다. 그 이유는 디지털 제품은 초기 풀 버전을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지만, 기본 버전을 가지고 제품의 콘텐츠를 차별화하는 데에는 비용이 거의 안 들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차별화가 가능하면 제품의 가격 차별화도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디지털 제품의 출시 전략은 기존 제품과는 다른 가격 전략을 가지고 고객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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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상상을 해 보았다. 만약 조선왕조실록의 출시 시점인 1995년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전략으로 출시하는 것이 좋았을까. 우선 조선왕조실록의 모든 내용이 들어가 있는 풀 버전을 완성한 후 보급판을 만들어보자. 보급판에는 국사학도나 학자들의 관심이 많은 부분을 집어넣고 많이 찾지 않는 내용은 빼었다. 그 대신 보급판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한다. 아니 보급판은 무료에 가깝게 가격을 정해도 된다. 왜냐하면 디지털 제품은 복제를 하고 운송을 하는 비용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가치>가격>원가 라는 생존부등식을 만족시킬 수 있다. 가치가 가격보다 크기 때문에 보급판은 날개 돋친 듯이 팔릴 것이다. 이 때 보급판에서 생략한 콘텐츠를 명기하고 이에 대해서는 풀 버전을 참조하도록 한다. 그리고 풀 버전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을 소개한다. 보급판 사용자들은 도서관에서 풀 버전을 찾을 것이고, 도서관은 얼른 풀 버전을 사서 제공을 할 것이다. 물론 국공립 도서관에는 매우 고가에 풀 버전을 판매한다. 우리나라 국공립, 대학 도서관에게 200 여 세트만 판매를 하였어도 아마 수지타산을 충분히 맞추었으리라고 즐거운 계산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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