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망기스 파티, 간단하지만 긴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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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기스 파티, 간단하지만 긴 여운
- 망기스, 열대 과일의 여왕 아니다 공주다
▲ ▼ ▼ 귀엽고 깜찍하게 달린 망기스 아기 열매들
망기스(Manggis-Mangosteen)가 풍년들 조짐이다. 작년에도 풍작이었는데 올해는 작년을 능가할 모드다. 주렁주렁~~ 쳐다만 봐도 흐뭇하다. 볼 때마다 아빠 미소를 짓게 하는 깜찍한 것들이라니. 나름 괜찮은 행복 메이커다. 꽃도 꽃이려니와 담장 안에서 익은 과일이 주는 풍요, 이거 정말 느낌 좋다.
망기스는 열대 과일 여왕으로 불린다. 그러나 내가 지은 별명은 과일의 공주다. 꽃이 피고 열매 맺어 자라고 익기까지 귀엽기가 딱 공주 이미지다. 맛은 또 어떤가. 근엄하고 농염한 왕비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다. 새하얀 속살, 귀여움, 달콤하고 상큼한 맛 이 모든 이미지가 영락없는 공주다.
지금 사는 산마을 인도네시아 보고르 찌자얀띠는 망기스 고장이다. 집 인접한 텃밭이나 울타리에 망기스 나무가 즐비하다. 물론 이 산마을에서 생산되는 과일은 망기스만이 아니다. 낭까나 두리안과 같은 거대한 크기의 과일부터 구슬보다 조금 큰 멘땡까지 무려 이십 수종의 열매가 연중 쉼 없이 생산된다. 넉넉한 햇빛과 비, 시원한 바람, 밤낮의 기온 차에 좋은 토질 등이 잘 어울렸기 때문이리라.
▲ ▼ 정원 한편에 우람하게 선 망기스 나무
▲ 옆뜰 담과 옥상으로 오르는 계단 사이에 우뚝 선 망기스 나무
우리 집 담 안쪽에도 과일나무가 제법 많다. 기회에 적어보니 망기스, 망고, 아보카도, 코코아, 빠빠야, 바나나, 노니, 람부딴, 잠부, 낭까, 커피, 오디, 실삭, 멘땡, 두리안, 마르끼사, 마꼬따데와(한약재용 열매)로 열일곱 종류다. 연중 쉼 없이 열리고 자라며 익는다. 이 외에도 뿌리 식품으로 씽콩(카사바), 고구마, 호박을 비롯하여 채소 몇 가지가 각기 제 몫을 한다.
많은 과일 나무 중 망기스 나무는 제법 큰 것이 여섯 그루다. 집을 짓기 전엔 더 많았다. 집을 지을 때 필요에 따라 30여 년 수령의 튼실한 망기스 나무 몇 그루를 밸 수밖에 없었다. 망기스, 참 놀라운 선물이다. 이 터에 처음 망기스 나무를 심은 이가 누굴까? 그는 훗날, 이 망기스를 따 먹는 누군가 복에 겨울 것을 생각하고 심은 걸까? 아 그래서 나도 집 곳곳 틈 있는 곳이면 과일나무를 심었다. 먼 훗날 모르는 누군가에게 기쁨이 될 수 있을 것이기에.
▲ 정자 좌우로 두 그루씩 무성한 망기스 나무
▲ ▼ 망기스 열매 배꼽엔 문양이 선명하다.
이 문양 잎 숫자와 마늘처럼 생긴 과육 숫자가 항상 같다.
홍시와 땡감 맛, 경험해 본 사람 많으리라. 익은 것과 익지 않은 것 차이가 이처럼 극명한 것 또 있으랴. 정도 차이일 뿐 모든 과일은 그렇다. 나무에서 익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엄연하다. 뭐니 뭐니 해도 나무에서 익은 제철 과일이야말로 최고 맛임은 삼척동자도 알 일. 그러나 판매하는 대다수 과일은 나무에서 익혀 딸 수가 없다. 유통 기간 때문이다.
망기스는 한국의 감과 닮은 데가 많다. 꽃몽우리처럼 맺히고 꽃피듯 몽우리를 연다. 뿔긋뿔긋 열린 받침은 웬만한 꽃보다 아름답다. 거기엔 신비롭고 귀여운 아기 망기스의 미소가 있다. 잎 모양을 대다수 한국인이 감나무잎으로 착각할 정도다. 나무가 곧은 것이나 타고 올라도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질긴 가지, 잎의 무성함이 조금 다르다. 특히 비슷한 것이 꼭지다. 감꼭지와 망기스 꼭지는 매우 흡사하다. 열매를 감싸는 역할도 똑같다.
반면 매우 다른 부분이 배꼽이다. 감은 배꼽이 아주 작은 돌기에 불과하지만 망기스는 배꼽이 마치 부조처럼 선명하다. 클로버나 코스모스의 디자인 같다. 배꼽에는 매우 흥미로운 비밀이 있다. 망기스 과육 숫자 암시다. 배꼽의 날개 숫자가 여섯인 것을 쪼개면 안쪽 흰색 과육도 여섯 조각이다. 다섯이면 다섯, 일곱이면 일곱이다. 변형이 있을지언정 그 쪽 수는 조금도 틀림이 없다. 따라서 망기스를 잘 모르는 손님이 올 때면 나는 마술사가 된다. 우선 배꼽의 쪽수를 재빨리 센다. 그리고 눈을 감고 수리수리 마수리로 쪽수를 알아 맞추는 거다.
▲ 껍질 속에서 드러난 과육은 순백색이다.
서릿발이 서린 느낌도 있다.
맛? 상상에 맡긴다. 묘사 능력 부족이다.
우리 집 망기스 나무는 대략 우기가 끝나고 건기 시작인 3~ 4월이면 새잎이 난다. 그리고 6~7월 즈음이면 작은 몽우리가 벌어지며 뿔긋뿔긋 꽃처럼 눈길을 끈다. 그 가운데엔 작고 귀여운 열매가 삐죽 수줍게 드러난다. 우기가 시작되면 눈에 띄게 자란다. 변절기를 알리는 천둥과 번개를 거뜬히 이겨내고 탐스럽게 큰다. 어느 순간부터 땅빛으로 익기 모드 돌입을 알리다 마침내 자줏빛을 띄면 알차게 익었다는 신호다.
상점에서 망기스를 살 때 주의할 것이 있다. 껍질이 단단한 것을 골라선 안 된다. 내용이 변질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물론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망기스를 바로 수확하면 껍질이 무르다. 그래서 꾹꾹 눌러 쪼개기도 쉽다. 껍질 속에서 드러난 과육은 순백색이다. 서릿발이 서린 느낌도 있다. 맛? 상상에 맡긴다. 솔직히 묘사 능력 부족이다. 망기스 수확기는 대략 40여 일이다. 우기의 절정인 12월 중순에서 1월 사이가 우리 집 망기스 수확기다. 물론 이는 지역마다 나무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옛 선인들은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나를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라고 노래했다. 망기스가 익을 때면 우리 집은 수시로 파티 분위기다. 이른바 망기스 파티다. 경험에서 확신하는 말이다. 이런 소탈하고 흥미로운 파티가 있을까 싶다. 한 소쿠리 수북이 쌓아놓으면 파티 준비 끝, 둘러앉으면 파티 시작이다. 대부분 말을 잊는다. 손톱 밑이 까맣게 되고 껍질이 두 소쿠리쯤 쌓이면 그제야 말문을 연다. “아 배불러~” 그러면서 손은 또 하나 망기스를 집는다. 이게 망기스 파티다.
한국에서 큰아들과 딸이 다니러 왔을 때다. 망기스 철에 왔으니 마땅히 망기스 파티를 열었다. 망기스 나무 밑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은 채. 집 도우미가 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뜨린 망기스를 주섬주섬 까먹는 참 별난 이벤트. 망기스 파티는 참 간단해서 좋다. 간단한 것이 여운이 길어 더욱 좋다. 망기스가 올해 다시 풍작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 준비해야 한다. 망기스 파티를.
▲ ▼ 한국에서 큰 아들과 딸 다니러 왔을 때다.
망기스 나무 밑에서 날 것 그대로 파티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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