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인도네시아 한인들의 경영 이야기-6] 음식한류, 프로의 가치는 결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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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탐문, 경영이 예술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뭐 먹고 살아?”
필자의 인도네시아 이주 초기, 한국의 친구들에게 꽤 여러 번 받았던 질문이다. 어찌 먹을 것의 유무였으랴. 한국인이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과연 무슨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궁금했으리라. 필자의 대답은 늘 웃음이거나 간단했다. “응 ^~^~ 한국에서 먹는 거 다 먹고 살아.”
한국인들 외국에 산다 한들 한국 음식의 참 맛을 한시라도 어찌 잊겠는가. 어느 나라 국민이라고 다르랴. 몸에 배고 입에 길들여진 자국음식 사랑이야 인지상정일 것. 물론 외면 못할 것이 호기심이다. 문화체험도 음식부터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현지 음식도 두루 순례한다. 하여튼 한국인들의 우리 것 사랑이야 떨치지 못할 근본이니, 인도네시아에도 곳곳에 한국 음식점이 많을 수밖에.
자카르타 남부 지역에 일명 한국인 거리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 음식점들이 즐비한 세노파티다. 그러니까 한국인 거리란 이름 탄생 배경이 바로 음식점이라 해도 맞다. 소위 잘 된다는 음식점 대부분이 그렇듯, 이곳에 자리 잡은 한국 음식점들 모두 개성을 갖췄다. 여러 가지 면에서 탄탄하다. 우리 것을 내 세우는데 부족함이 없다. 재삼국인과 인도네시아 인들의 미각마저 훌륭히 이끈다. 그 중 하나, 나름의 색채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레스토랑이 있다. 숨은 듯 도드라지고 평범한 듯 두루 인정받는 음식점이다. 박배용 · 홍혜은 부부가 운영하는 <설악추어탕>!
▲ 자카르타 설약추어탕 박배용 · 홍혜은 부부
“<남가네설악추어탕>과 가맹을 맺고 자카르타에 자리 잡은 것이 2011년이에요. <남가네설악추어탕>은 1983년 남은옥 여사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대표 추어탕 전문 브랜드죠.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한 가맹사업거래 정보에 따르면 현재 78개 가맹점이 성업 중인데요. 해외 1호점인 <자카르타 설악추어탕>도 그 중 하나예요. 남가네설악추어탕은 (주)미라지 식품의 바탕입니다. 2002년 만수동, 2005년 서산 공장을 거쳐 2021년에 인천시 서구 금곡동에 설립한 대형 공장은 현대적인 생산 시설을 갖춘 원료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음식점은 음식이 전부다!
한류 중심에 한국 음식이 있음은 자타가 인정한다. 한국음식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영화, 음악 등 한류 콘텐츠와 당당히 어깨를 겨눈다. 맛이 깊고 넓기 때문이리라. 감칠맛을 지닌 독특한 종류가 많기 때문이리라. 비주얼은 또 얼마나
뛰어난가.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둔 요리 과정은 또 어떻고.
인도네시아 인들은 한국음식이 약성이 강하다고
엄지를 치킨다. 한국인들의 다이내믹이 음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추축하기도 한다. 쉽게 끌어낸 결론 같지 않다. 한마디로 관심이 깊고 체험도 충분히
해봤다는 증거 아닌가. 재밌다. 마음이 뿌듯하다.
“설악추어탕의 메뉴는 매우 서민적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요리과정이 쉽지 않은 음식들입니다.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지요. 하니 집에서는 쉽게 자주 만들어 먹기
어렵고요. 살악추어탕의 음식들은 프랜차이즈 가맹점답게 일관된 레시피에 의해 탄생합니다. 손님들께서 변함없는 맛을 믿고 즐길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고요.“
인도네시아 한국음식점 설악추어탕(이하 설추)의 첫 인상은 푸르름이다. 입구 계단 양쪽에 싱그러움이 수줍은 듯 반짝인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면 푸름이 더 활기를 띤다. 갖가지 나무와 식물들 윤기가 자르르 하다. 수수하면서도 한국적이고 정갈한 실내 장식과 궁합이 딱이다. 이거 다 박 대표께서 갖은 정성으로 손수 닦고 쓰다듬으며 가꾼 결과다.
▲자카르타 설악추어탕의 싱그러운 손님맞이
“어느 음식점이나 마찬가지겠지요? 저희도 ‘좋은 손님이 좋은 식당 만든다’는 말 존중합니다. 따라서 손님들의 진심어린 지적이나 견해 등을 적극 참고하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의 설추가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 크죠.”
“저는 설악추어탕에 오시는 모든 손님을 VIP라고 생각합니다. 정직하고 정성이 담긴 음식과 쾌적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모시려고 공을 들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가 있는 자리는 늘 주방입니다. ‘음식점은 음식이다’는 신조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데요. 직원들도 나름 잘 하지만, 한 순간에 일어나는 실수를 줄이려면 한 순간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손님 테이블에 가서 인사드리는 것이에요. 찾아주신 고마움을 정중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마음만 있지 실천이 잘 안 됩니다. 너무 가까이 가서 인사를 드리면 혹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 목례만 할 때가 많습니다. 근데 이게 간혹 건방지다는 오해를 부릅니다. 몇 년 동안 단골인 손님 중에 정말 자신을 모르느냐고 묻는 분도 있었어요. 부부 둘 다 숫기가 없는 탓으로 이해하시고 오해 없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해는 시간이 가면 해결된다. 시간이 지나 진실을 알게 되는 것도 괜찮다. 음식점이니 음식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것 그야말로 자부심 짱이지 않은가.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론 찾아주시는 모든 손님을 활짝 반긴다면 금상첨화지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알아주기
원하니까. 이참에 필자가 설추의 웃음도우미로 나설까 싶지만, 이런
주제 파악 참 가당찮으리라.
깐깐한 프로의식, 날마다 자신에게 왜?
목격자가 많다. 밤늦게 세노파티 거리를 지나다가 청소부 박 대표를 본 사람들이다. 설추의 외부 계단과 앞 보도를 물청소하는 모습, 그러니까 그는 항상
종업원들보다 가장 늦게 퇴근 한다. 그리고 퇴근하며 항상 사업장을 향해 큰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인사를 한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하루 일과를 마치는 루틴이라니 흥미롭다.
이런 그의 철저함은 배달 음식 포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회용 포장 용기까지 모두
한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서 튼튼하고 고급지고 깔끔하다. 매월 수익 비율이나 수판질하면 엄두 못 낼
투자다. 자칫 소홀할 수 있는 부분에서까지 발휘되는 박 대표의 깐깐한 프로의식, 그야말로 프로답다.
설추의 배달 음식 주문 양이 상당하다는 것은
외식업 협회 관계자의 귀띔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도 부침이 없이 거뜬했던 몇 곳 중 손꼽힌다고 했다. 설추는 한국 음식점이 없는 지방의 회사들에게도 인기다. 정기적으로
주문하는 진공포장 음식의 양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니랴.
“장사가 수익률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것을 최우선에 두면 그걸 손님이 먼저 느낍니다. 다수의 한국음식점들이 상당량의 식재료를 한국에 의존한다고 알고 있어요. 번거로움과
비용 부담을 무릅쓰는 것은 먹거리 생산자로서 사명감 때문일 것입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인데요. 그 때문에 부부가 교대로 한국엘 자주 갑니다. 돌아올 때면 중요
식자재와 기본 반찬에 사용할 재료까지 짐이 산더미지만, 맛나게 드실 손님들 생각하면 마음 넉넉해집니다.”
설추의 특징이 하나 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어느 때라도 항상 주인이 자리를 지킨다는 거다. 훤칠한 외모가 돋보이는 박 대표와 음전한 모습의 홍 여사의 성실함이 참 놀랍다. 외부 모임이나 여행, 골프와 같은 취미생활도 자재하며, 유동성의 손님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하루를 출발하고 마무리 한다고 했다. 변함없이 정갈한 상차림, 그에 더해지는 아름다운 꽃 장식이 그냥 덤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12년 전 오픈 첫날이었어요. 즐거운 그날 일과를 마치고 저와 아내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본사 회장님, 사장님이 계시는데도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어요. 기쁨도 컸지만, 오픈 일에 맞춰 다지고 준비한 것들이 발휘되지 못한 겁니다. 철저히 교육했지만, 경험 없는 종업원들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거듭했어요.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없어져야할 식당’이라는 댓글이 붙었더군요. 지금의 설악추어탕으로 면모를 갖추고 무난하게 다듬어지기까지 무려 2년여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인연, 사우디와 인도네시아
“제 개인사요? 돌아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게 아찔아찔하죠.
1983년, 단돈 30만 원을 챙겨 작은 가방하나
달랑 들고 대구에서 상경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돌고 돌아 지금 여기까지 이르렀네요.”
“대학 졸업 무렵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어수선한 시국 때문에 데모도 빈번하고 결강도 잦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졸업의 의미가 희석되더군요. 병역도 마쳤고(해병대 422기), 교원 자격증도 취득한 상태로, 구미타자 컴퓨터 학원에서 기획과 강의를 겸하던 중 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습니다. 외국근무자 특별채용이라는 극동건설 모집 공고였지요. 대뜸 응모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합격했습니다.”
1984년
사우디 담맘 지역의 다란병원 신축 현장이 그의 첫 해외 근무지였다. 2년 후엔 사우디 리야드 외교단지
신축 현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열사의 사우디에서 무려 8년간이나
청춘을 불사르고 귀국한 것이 1991년, 그러나 1년여 만인 1992년 그는 다시 극동건설 인도네시아 매단 출장소로
발령을 받았다. 인도네시아와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994년 근무지를 자카르타로 옮겼다. 97년 수카르노하타
공항 고가도로 건설현장 노무 안전관리 담당 근무가 그의 마지막 직장생활이었다.
‘지금여기’ 그리고
왜?
“성실하게 음식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 음식점을 시작할 때 다짐이었습니다. 야채는 청정지역 가룻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질이 좋은 것, 소금은 한국산 천일염 사용 등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 활용에 관해 원칙을 정했지요. 상황이 어려워지면 자칫 소홀할 있는 부분이어서 못을 박고 시작한 것이지요. 청결유지 부분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직원들 손에 맡겨질 일이잖아요? 까다로운 교육과 점검 과정을 도입했어요. 물론 좋은 작업 환경과 복지, 보상수단 등 당근도 준비했지요.”
극동건설 입사부터 퇴사까지 박 대표의 업무가 총무였다고 했다. 건설 현장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예방과 점검, 보상의 중요성을 절감했다는 의미다. 이를 레스토랑 운영의 바탕으로 삼았으려니와, 아내 홍 여사의 전공도 ‘가정경영’이었다니 부부의 레스토랑 운영 자격은 한마디로 넘치고 남는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로 인해 만족한 식사를 즐길 손님들의 웃음을 상상하며 박수를 얹는다.
“우리 부부는 직책이 여럿입니다. 운영자요 책임자인가 하면 주방과 서빙의 보조예요. 쉬운 일 어려운 일 가릴 위치가 아닌 거죠. 무엇이던 피하거나 미룰 수도 없습니다. 이끄는 것 같지만 끌려가기도 해요. 좌우지간 함께 어울려서 가고 있습니다.^~^”
박 대표께 좌우명을 물었다. 뭔 좌우명이냐고 허허 웃었다. ‘철저함’ 혹은 ‘까칠함’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필자도 웃었다.
“‘지금여기’에요. 뒤에 ‘왜?’가 붙어 있고요. 뭐
거창하게 불교식의 즉금선(卽今禪)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여기는 누구에게나 바로 현실이잖아요. 삶 속 최선의 순간이요 세상의 중심이고요. 이걸 모르는 사람 없을
겁니다. 그런데 현실은 늘 이상과 다르지요. 제게도 늘 이게
문젭니다.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미래 따위로 현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거든요.”
그렇다면 박 대표께서 덧붙인 ‘왜?’의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왜?’의 이면을 그에게 묻지 않았다. 필자 혼자 추측하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다. ‘왜?’는 그를 그답게 하는 개성이지 싶다. 바로 그의 까다로운 삶의 방식.
그는 얼핏 허술한 듯하다. 무심한 듯도 하다. 그러나 한 겹 벗기는 순간 사려가 깊고 자신과 일에 관한 한 놀랍도록 깐깐함을 드러낸다. 그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도 그 범주다. 그러니까 그가 스스로 늘 되새기는 ‘왜?’로 인해 그의 행동과 일 모두가 비롯된다고 하겠다.
‘너는
누구냐?’
박 대표와 대담 중 필자의 가슴을 파고든 단어다. 박 대표가 내민 ‘지금여기’와 ‘왜?’ 때문이다. 대담을 끝내고 돌아와 필자는 먹을 갈고 필을 들었다. 천년 불변의 먹을 막춤 붓질로 질긴 한지에 펼쳤다. 너는 누구냐?를 스스로에게 묻는 퍼포먼스, 필자의 행복 창작 순간이다.
‘너는 누구냐?/ 둘러보면 많은 기운/ 나를
향해 묻는다/ 너는 누구냐!/ 지금여기,/ 내가 생명을 지니고 있음이/ 가장 큰 행복임을 가르쳐 주는/ 소리 없는 아우성/ 너는 누구냐?/
반드시 가고 온다. 일방은 없다.
년 전의 일이다. 주문한 음식을 찾기 위해 설추를 찾았다. 만성적인 자카르타 도로 사정으로 인해 도착 시간이 많이 늦었다. 일과를 끝낸 레스토랑 설추에서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매월 급여일이면 어김없이 반복하는 이벤트란다. 흥미로운 광경, 필자는 반사적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날 설추의 이벤트 내용은 대강 이랬다.
▲ 매월 급여일 이벤트
첫째, 그달 생일인 직원들을 위한 생일잔치다.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준비한 작은 선물을 전달한다. 선물 내용은 근무 연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했다.
둘째, 가족의 경조사에 관한 비용보조였다.
셋째는 포상이었다. 계약된 근무일수보다 더 근무한 직원이나 솔선수범하여 타 직원의 귀감에 된 부분에 관해 포상하는 것이었다.
넷째, 생활비
특별 보조였다. 신입이라 수령 급여가 적은 시기, 연령까지
많은 경우 부양가족이 많을 것은 당연한 일, 이런 경우 일정 금액을 호봉이 높아질 때까지 보조한다고
했다.
“이보다 조금 큰 이벤트가 1년에 한 번 있습니다. 식당
오픈기념일이죠. 이 날은 크고 작은 선물을 고루 준비합니다. 오토바이나
가전제품과 같은 상품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추첨도 하지요. 이런 행사들은 50여 종업원들과 마음 털어놓고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것입니다. 투철한
주인의식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그들의 주인의식을
키워야 합니다. 먹는 음식을 다루니까요.”
“한국에서도
이런 음식점 드물걸요?”
불과 몇 백 미터 지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모씨의 감탄이다. 음식점 안에 바퀴벌레 한 마리도 얼씬하지 못하게 한다는 설추 박 대표의 말이 사실로 확인된 후다. 음식점에 바퀴벌레 한 마리도 없게 한다는 말 누구라도 쉽게 믿기겠는가. 반신반의로 밤중에 불시에 불을 키고 주방과 음식점 내부를 살폈다 했다. 박 대표의 철저함이 확인되었다. 순간 모씨로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으리라.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맛을 아는 것 같아요. 우리 설추의 종업원들만 해도 부모가 없거나 사정이 어려운 친척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 많거든요. 인도네시아엔 다문화 가정도 편견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정부의 부양 정책 없이도 자연의 흐름처럼 잘 어울려 살거든요. 이런 국민성 때문에 한국 기업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펼치는 것은 아닌지…“
설추의 음식 한류 선도 공로를 이야기 하자
박 대표께서는 손사래로 말을 막았다. 그러나 손사래로 현실이 증명하는 바를 막을 수는 없다. 때때로 레스토랑 손님의 반이 외국인이라는 것은 한국인 손님들로부터 나온 말이다. 처음에는 한 두 테이블이던 외국인들이 점점 많아졌다고 고백했다. 현지인들에게
<Bumbu satu>로 유명세를 타고 있으니 음식을 통한 한류 전파 맞다. 한류 가꾸고 심기 틀림없으리라. 설추 박 대표의 강조다.
“일방통행은 없다고 봅니다. 비결도 없고요. 토속적이면서도
특별한 한국의 맛을 잘 지키려는 노력을 비결로 삼겠습니다. 한국의 맛,
이것이야말로 한국인에게도 현지인들에게도 통하는 무기라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한국 식당에
한국인들 왕래가 많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현지인들 방문도 따라서 많아질 테니까요.”
존경이 우러나는 자리
매년 오월엔 설추만의 이벤트가 있다. 5월 8일
어버이날부터 시작하여 말일까지, 설추에서는 나이 65세 이상이면
누구에게라도 한 끼 식사를 무료로 대접한다. 행여 다른 의미로 해석될까 싶어 광고를 하지 않는다. 벌써 9년째. 다만 오시는
분들이 점점 줄어들어 안타깝다는 것이 박 대표의 말이다.
“주말마다 오시던 한 할머니로 인해 우연히 시작된 이벤트예요. 그 할머니는 오실 때마다 제 손을 꼭 움켜쥐셨어요. 일찍 세상을 뜨신 제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하는 분이셨는데요. 어느 순간 안 오시는 거예요. 운명을 달리 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요. 불현 듯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 따끈한 추어탕 한 그릇 그냥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한동안 마음이 아렸어요. 다음해 5월부터 이 소소한 이벤트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음식이라면 라면이나 끓일 줄 아는 젬병이었지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하니 음식점 경영하며 생긴 이야깃거리가 더 많은 가 봅니다. 특히 잘 못한 일들이 잊히지 않는데요. 죄송한 마음 크고 갚아야 할 빚이 많아요. 그런데 그 분들을 개인적으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직 음식으로만 승부하겠다는 외곬수였던 탓이지요. 제 감사의 마음만이라도 꼭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 대표,
까칠하지만 떨쳐내지 못한 인정의 언덕은 까칠함보다 훨씬 더 두툼하다. 인정에 얽혀 겪은
곤란한 일들도 부지기수, 그러나 기왕이면 마음 따뜻한 이야기 몇 가지만 꺼내보자고 졸랐다.
“극동건설에 근무할 땝니다. 학교 갈 시간에 외진 곳에서 노는 현지 초등학생을 발견했어요. 자초지종을 듣고 돕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제가
직접 학비를 납부해줬습니다.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삽니다.”
이 아니 해피엔딩이랴. 예전 사업장에서 만난 전기 기술자도 소환되었다. 그 현지인이 암으로 생사를 오갈 때 수술비를 지원했으니 오간 촉촉한 마음들 짐작이 간다. 가족이 유언으로 전한 감사인사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설추 오픈
때부터 가족처럼 함께 했던 직원의 심장병사로 그 자녀를 지금까지 지원하는 이야기도 새나왔다. 큰 복
아름답게 지은 박 대표의 이어진 이야기들 술잔처럼 비우기로 한 약속 땜에 이만 줄일 수밖에 없다.
대담 끝에 부인 홍 여사를 채근했다. 입술에 침 바르지 말고 부군을 평가해보라고 종주먹을 댔다. 의외의 답이 나왔다. 부군을 향해 군자라 했다. 근데 그 이유가 좀 얄궂다. “한 성깔하는 자신과 사는 것이 군자”인 증거란다. 웃어넘겼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의 평가, 이거야말로 진짜지 싶다. 박 대표께서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는 것과 충실한 실행을 늘 옆에서 보았으니 어찌 존중하지 않으랴.
“이래저래 자카르타는 우리 부부에게 정감을 선물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한가운데서 낙엽 타는 냄새 나는 것도 싫지가 않아요. 어릴 적 시골 냄새 같기도 해서 추억을 부르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는 촌놈 감성인가요?^~^”
설악추어탕 박 대표 부부와 대담한 글을 맺으며
다시 밝힌다. 이 경영탐문 프로젝트는 분명 필자에게 행운이다. 삶의
필드를 무한 넓히기에 이보다 더 좋고 감사한 기회가 어디 있으랴. 프로젝트에 응해주신 귀한 분들 덕이다. 거듭 사양했지만 종래에 기꺼이 응해주신 설추의 두 분께 감사한 마음 다시 밝힌다. 변함없이 맛나고 가치 높은 한식으로 교민의 건강과 음식 한류에 크게 기여하실 것을 믿는다. 아울러 더욱 번창하심도 확신한다.
※ 이 글은 <인니 한인 사회가 보유한 소중한 자산 기록하기> 여섯 번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재인니한인회가 주최하고, 재인니 한인상공회 KOCHAM이 주관하며 자카르타 경제신문이 후원합니다. 예술가의 시각으로 탐문하고 기록하는 경영 현장과 경영인들의 창의력과 실천 능력, 다음 편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경영탐문 내용은 영상으로 제작되어 You Tube 채널 <손작가 TV> 경영탐문 섹션에 업로드 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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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Uedo1fmf1ko
1026회 연결 -
https://youtu.be/RSh1UZeCF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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